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미얀마1(양곤1) - 모모

張萬玉 2009. 3. 2. 22:29

우리가 그를 만난 것은 양곤 국제공항에서였다.

미얀마에 배당한 여행기일 자체가 너무 짧은 데다 미얀마 입국 8일째인 12월 26일에는 양곤 인근 파안이라는 도시에서 현지인과 약속을 잡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는 일주일 안에 버강과 만달레이를 돌아보겠다는 다소 황당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양곤 시내로 들어가는 건 파안에 다녀온 뒤로 미뤄놓고 버강행 국내선으로 바로 갈아타보려고 국제선 청사 근처에 있다는 국내선 청사를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그때 시내 들어가는 택시를 찾느냐고 우리를 부르는 40대 초반의 까무잡잡한 아저씨.... 택시 기사인 줄 알고 손사래를 치며 걸음을 재촉하는 우리를 따라 걸으며 그는 솜씨 좋게(점잖고도 끈질기게) 말을 붙였다. 

무엇이 필요하냐, 내가 도와줄 일이 있을 것 같다....

하긴 우리도 도움이 필요한 상태이긴 했다. 우선 국내선 청사까지 걸을 만한 거린지부터 알아야 했으니까.

 

우리의 얘기를 들은 그는 버강 가는 항공편이 여럿 있으니 잘하면 오늘 비행기를 탈 수도 있겠다면서 서둘러서 국내선 청사에 있는 항공사로 가보라고, 만일 못 구하게 되면 어차피 시내로 들어가야 할 테니 그때는 자기 차를 타라고 했다. 자기 차를 택시로만 이용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티켓구매 등 다른 서비스가 필요하면 자기 회사를 이용해보라는 것이다. 그는 택시 기사가 아니라 여행사 직원이었다.

 

양곤 국제공항. 미얀마에는 촬영금지 지역이 꽤 많은데 공항도 그런 지역 중 하나이다.

 

도착 시간이 너무 일러서 국내선 청사에 있는 항공사들은 아직 문도 안 열었다. 비공식적으로 문을 열어둔 버강항공사에 들어가 알아보니 오늘은 물론 내일 표조차 없단다. 국내선을 운항하는 항공사는 버강 항공사 말고도 두 개가 더 있는데 아마 사정은 비슷할 꺼라고... 여행사를 통해 알아보는 게 더 빠를 거라고 한다.

어쩌겠나, 일정은 바쁜 데다 사전 준비조차 없었으니 도와주겠다는 사람의 제안을 따르기로 한다.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의 회사 차량은 필요할 때 노란 모자를 쓰고 택시로 변신한다.  ^^

일제 중고차라서 운전석은 오른쪽이다. 그럼 당연히 왼쪽길로 주행하겠지?

헌데 오른쪽 길로 달리더라고. 왜냐, 미얀마에는 운전석이 왼쪽인 차들 역시 많기 때문이다.   

 

한 시라도 빨리 버강으로 가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던 우리는 우선 그가 일하는 여행사로 갔다.

여행사는 양곤 번화가 15층 건물에 있었다. 그는 자기가 표를 수배하는 동안 양곤시내 전망이라도 구경하라고 사무실 옆 베란다 문을 열어준다. 관광객 다루는 솜씨가 보통은 넘는군.

베란다로 나가니 영국 식민지 시절에 지은 고풍한 건물들을 비롯하여 부글부글 끓어넘치는 시장골목, 양곤 시를 끼고 흘러가는 강까지.... 대단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베란다 바로 앞에 영국 식민지 시절 정부 시설로 쓰이던 고풍한 건물이 넓은 녹지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좀 손을 보아 박물관 등으로 이용해도 좋겠는데.... 그냥 비어 있다고 한다. 

 

사진 중앙 붉은 지붕의 건물 너머로 뾰죽한 황금색 탑이 보이시는지.

그것이 양곤, 아니 미얀마의 대표사원 쉐다공 퍼야(사원)다. 

 

양곤 시내의 또다른 랜드마크 술레 퍼야(사진 왼쪽의 황금 탑). 부근에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항공권 수배는 쉽지 않았다. 전산망이 없으니 계속 전화를 돌려대고 연락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

양공 시내 전경을 둘러보는 우리의 감탄사가 사그러들 즈음 그는 환전을 해야 하지 않느냐며 우리를 보족시장으로 태우고 갔다.(공항이나 은행 등의 공식 환전소와 암달러 시장간에는 무시할 수 없는 환율 차이가 난다. 공식 환율은 1달러당 400짯이지만 비공식 환율은 1000짯 이상이다).

 

여기가 보족시장. 귀국선물을 사러도 많이 오지만 환전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다시 사무실로 왔지만 티켓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하다. 오늘 티켓은 이미 물 건너 갔고 내일 것도 조금 기다려봐야 한다고 한다. 워낙 도로 사정, 차량 사정이 좋지 않은데 항공권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미얀마에서는 대부분 관광객들이 국내선 항공을 이용한다. 항공 노선이 양곤 - 버강 - 만달레이 - 헤호(인레 호수 부근) - 양곤으로 되어 있어 마치 순환버스처럼 돌아다니기 때문에, 중간 구간에 단체손님들이라도 타게 되면 표 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오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우리를 같은 층에 있는 식당으로 안내해준다.

고객의 시간을 이렇게 빈틈없이 관리해주다니....대단한 센스다. 덕분에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삽질 한번 하지 않고 괜찮은 가격에 예상외로 근사하게 미얀마에서의 첫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15배줌을 자랑하는 J의 카메라가 잡은 15층 아래의 거리식당 내지 까페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는 버강행 항공권은 포기하고 그냥 오늘 밤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그에게 이 결정을 알리자 그럼 만달레이에서 양곤으로 돌아오는 티켓이라도 미리 예매해두면 어떻겠냐고 한다. 어차피 26일까지 양곤으로 돌아와야 한다면 만달레이에서 양곤으로 돌아오는 열여섯 시간 이상의 시간을 줄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그의 제안에 동의했더니 직원들에게 당장 그 티켓을 수배하도록 지시해놓고, 버스 역시 예매를 해두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테니 만달레이행 항공권을 수배하는 동안 버스표부터 예매하러 가잔다. 정말 부지런한 친구다. 미얀마에 와서 한국의 대기업 직원처럼 자율적/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친구를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졸지에 문맹이 된 나. 그래도 걱정 없다. 그가 다 알아서 해준다. ㅎㅎ  

 

그의 말대로 서둘렀기 망정이지 그날 저녁 버스 좌석도 놓칠 뻔했다.

우리가 버스표를 사는 동안 그가 잠깐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부근 공중전화에서 회사로 전화를 걸어 우리의 표가 확보됐는지를 확인하고 온 것이다. 휴대폰 없느냐고 했더니 개통비가 너무 비싸단다.(우리 돈으로 200만 원 정도) 아니, 세상은 핑핑 돌아가는데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이 어떻게 영업을 하느냐고요....(외부세계와의 접촉이나 국민들 간의 활발한 소통을 꺼리는 정부 정책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봤다).  

 

사진은 버강에서 구입한 버강 - 만달레이 간 국내선 항공권. 고무도장으로 날짜와 편명만 찍어줬다.

좌석번호가 없으니 맘대로 앉아도 된다. 

 

우여곡절 끝에 구한 만달레이 - 양곤 구간 티켓을 받아들고 우리는 다시 그의 차를 타고 장거리버스터미널로 갔다. 공항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야 제한되어 있으니 시내에서 떨어져 있는 게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어찌된 게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장거리버스 터미널이 공항보다 더 머냐... 게다가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도 하루에 몇 대 없다니 가난한 인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장거리버스 터미널까지 들고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장거리버스 터미널. 매우 넓고 복잡하다. 미얀마 말도 글도 모르면 타는 곳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쨌든 공항에서도 20분 이상 더 달리는 멀고 먼 장거리버스 터미널까지 풀 서비스 해준 그에게 우리는 25$를 지불했다. 공항에서 시내, 시내에서 버스터미널을 각각 10$ 정도로 잡고(보통은 6$ 정도 한다) 시내에서 보족시장과 버스티켓 예매소까지 왕복한 것, 돌아와서 묵을 숙소까지 미리 안내해준 서비스까지 포함시켜 5$.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와 깎듯이 계산하는 관계였다. 터미널에서 헤어지며 그는 우리가 만달레이에서 도착하는 시간을 알고 있으니 그때 다시 만나자며 씩 웃는다. 낯선 양곤에서 믿을 만한 친구를 하나 얻은 기분이 썩 괜찮아서 우리도 기꺼운 마음으로 씩 웃어주었다.

버강과 만달레이를 여행하는 동안 그는 가끔 우리의 화제에 올랐다. 그에겐 확실히 단순한 여행심부름꾼으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카리스마(!) 같은 것이 있었다. 과연 그가 마중을 나올까?

 

 

만달레이에서 돌아오던 날 정말 양곤 공항으로 마중나온 그는 다시 우리가 제시한 까다로운 일정을 실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그날 그에겐 독일에서 오는 손님이 있었는데 (휴대폰이 없다 보니) 연락이 두절되어 우리를 맞으러 나올 수 있었다며 오히려 자기는 내심 반가웠다고 했다.(립서비스일 뿐이라고 해도 이런 립서비스는 흔쾌한 팁을 부르게 마련이다. ^^)

그날도 우리는 도착했던 첫날처럼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파안으로 떠나기를 원했다. 파안에서 돌아와 방콕으로 돌아갈 때까지 사나흘 여유가 있어, 양공을 돌아보는 일은 그리 급할 게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파안행 새벽버스는 이미 떠났고 그 다음 버스는 저녁 6시경에나 있다니 우리는 8시간 동안 어딘가에서 소일을 해야 했다. 무거운 배낭과 한낮의 땡볕 때문에 어디 돌아다닐 엄두는 일찌감치 접었고, 우리는 남 눈치 안 보고 퍼질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이틀간 만달레이에서 해 뜨고 별 질 때까지의 강행군으로 많이 지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오늘 밤도 야간버스에서 흔들려야 하는 신세.

어디로 데려다 달라고 할까, 조용하고 시원한 까페? 한국 음식점?

 

그는 공항에서 멀지 않은 호텔로 우리를 안내했다. 원래 외국인이 묵을 수 없는 현지인 호텔인데 호텔 지배인을 알고 있으니 절반 가격에 반나절 쉬어갈 수 있도록 해보겠다는 것이다. 쉬어가실래요, 묵어가실래요... 아하, 이럴 때를 위해 그런 질문이 필요한 거로구나.

우리가 환전과 간단한 점심을 원했더니 가는 길에 대형 쇼핑몰 지하에 들러 ‘간단한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고 좋은 환율에 환전하는 것도 도와주었다.

그의 덕분에 우리는 5$에 샤워와 긴 낮잠을 샀다. 반나절의 휴식은 다음 여정에 필요한 체력을 충분히 보충해주었다. 그가 약속한 시간에 호텔로 데리러 와서 다시 장거리버스 터미널까지 배웅해주었음은 물론이다.

  

 

왜 내가 미얀마에 대한 이야기를 그저 여행가이드일 뿐인 그의 얘기로부터 시작하는가 하면.... 그로부터 받은 인상이 내게는 미얀마의 인상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미얀마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은 ‘그저 선하고 잘 웃어주는 사람들’.... 그것이었다.  

 

 

그러나 미얀마 땅을 밟자마자 만난 그는 부글부글 끓어넘치는 미얀마의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처음 마주한 미얀마의 얼굴은 운명에 드리운 불운을 걷어내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혈기방장한 청년의 얼굴이었다. 2007년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대한 상념이 내게 어떤 연상작용을 일으켰던 걸까? 

 

Photo by J

 

그의 이름은 maumoe.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몽(몬)족이라 姓도 없다.

(미얀마가 모계사회라서 성이 없다고들 알고 있지만 출신이 좋은 버마족들은 모두 성을 갖고 있다.)  

사십 초반쯤으로 보았는데 1962년생이라 했다. 두 딸의 아버지이고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월수입은 30만짯 정도로 초등학교 교사 월급이 3만짯 정도 된다니 꽤 버는 축에 속한다. 

국민의 85%가 불교신자라는 미얀마에서 보기 드물게 그는 종교가 없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전직은 권투선수였다고 했다. 미얀마에서 한때 날렸던 프로복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보이지 않는 앞날을 헤쳐나가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고 했다(그의 단단해 보이는 갈색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보니 뜬금없이 ‘미얀마 전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문신은 미얀마 남자들의 상징? (Photo by J)

      

권투를 그만두고 여행업에 종사한 지는 15년째. 여행사 소속이긴 하지만 입소문으로 직접 그를 찾는 고객을 상당히 확보하고 있는 이 베테랑 가이드에게서는 전문가다운 자신감이 넘쳐난다. 그 자신감이 나같은 깍쟁이 고객조차도 ‘모든 걸 믿고 맡길 테니 알아서 해주시오..’라고 말하게끔 만드는 거다. 일단 고객의 그런 요구를 접수하면 그는 정말 최선을 다한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방편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섬세하게 고객의 상태를 배려한다. 생색도 안 내고 말이다.

 

자기가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외국 친구를 사귈 수 있고 그들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배울 수 있어서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 가이드한 고객 중에는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그들 중엔 자기에게 투자 자문을 받아 미얀마에서 자리잡은 사람도 있는데, 그 프랑스인은 작년에 자기 집이 싸이클론에 휩쓸려갔을 때 3000달러를 들여 집을 새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내가 만난 모모씨는 전형적인 미얀마인에 속하지 않는 인물일까?

모모씨는 미얀마에 대한 나의 무지에 가까운 선입견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았다. 

  

뒷담화지만 이 양반, 어리숙하거나 되먹지 못한 고객을 만나면 제대로 빼먹을른지도 모르겠다. 수완이 상당히 좋아 보이걸랑. ^^  우리가 지불한 두 번의 보수 역시 나쁘진 않았을 게다. 그러나 그 가격은 우리가 결정한 것이고 그는 보수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알아서 주게 만드는 것이다. 흔쾌한 마음으로 돈을 내게 만드니 사람 마음을 읽는 재간이 정말 보통은 넘는다. 어쨌거나 그렇게 당당한 가이드는 진짜 처음 봤다.

모모씨 이후로도 내게 다가온 미얀마의 모습은 대부분 모모씨와 닮은, 자신감과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