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베트남9(하노이1) - 하롱베이 수다 투어

張萬玉 2009. 6. 15. 12:06

소문만 무성하게 들어온 관광지라 적잖이 기대를 하고 떠났는데 지금 내 기억 속엔 하롱베이 풍경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몇 장 찍지도 않은 사진을 들춰봐야만 '그래, 거기 진짜 근새했는데....' 하고 기억할 정도니까.

하롱베이가 멋지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투어에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수다에 팔려서 그 멋진 풍광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그 돈 들여 그 먼 데까지 가서 뭘 봤는지도 모를 정도로 수다나 떨고 왔다고 생각하면 좀 아쉽기도 하지만 그때 만난 친구들과의 시간 역시 하롱베이의 멋진 풍경과 맞바꿔도 좋을 만큼 소중했다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래 투어 일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게 보통인데 당일투어, 1박2일, 2박3일 투어 신청자들을 함께 엮었는지 투어 멤버가 몇 차례 바뀌었다. 하노이 시에서 배 선착장까지 미니버스를 타고가는 세 시간 동안 베트남 3인가족팀과 5인가족팀, 말레이시아인 3인가족팀이 함께였는데, 선착장에 도착해서 베트남 가족 두 팀은 다른 당일투어 팀으로 빠지고 신혼여행중인 새내기 부부와 개별여행중인 서양아이들 네 명이 그 자리를 메꾸어, 20인승 배에 11명이 타고 투어를 시작했다.   

 

싱가폴에서 살고 있는 딸과 사위가 아버지(사진 가운데)를 모시고 효도관광 나왔다.

아버지가 아니라 오빠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젊어 보이는 아버지가 입고 있는 점퍼는 현대엔지니어링 작업복.

현대에 근무한 지 꽤 오래 됐고, 덕분에 간단한 한국말은 할 줄 안다고 했다.

  

헌데 고정멤버인 줄 알았던 팀이 이후 두 번이나 바뀌었다. 하루 관광을 마치고 도착한 섬에서 개별여행자들이 내리더니 호주에서 온 다섯 아해들이 합류한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또다시 홍콩에서 온 총각과 어제 내렸던 프랑스 아가씨가 합류.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그것도 세월아 네월아 흔들리며 광합성과 사교활동밖에 할 게 없는 한가한 배 위에서 1박2일을 함께 지내게 되었으니 새로운 견문에 목마른 장여사, 드디어 물 만난 고기가 되었겄다.

 

첫날 배에서 함께 지낸 러시아 아가씨. 러시아 부호의 따님인 모양이다.

젊고 예쁘고 자유로운 자기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눈치... ^^ 옷도 수시로 갈아입고 사진 찍히기 좋아하고 자기과시성 발언도 서슴지 않는 등 발랄함이 쵸큼 지나치지만, 열여덟이라는 꽃다운 나이니 용서가 된다.

에궁, 용서라니! 난 그저 부러울 뿐이고.... ^^     

 

공주임을 감출 수 없었던 여인이 한 명 더 있었다. 미국 아가씨 로라. 

세계의 종주국에서 왔다는 점을 의식해서 그러는지 입만 열면 뭐든지 가르치려 든다.

사람들과 잘 지내보려고 나름 노력하는 것 같은데 상대방의 눈치는 살필 줄 모르나보다. 내게도 필독서를 하나 권해주던데 (Say, pray, Love), 오프라 윈프리 추천도서 냄새가 폴폴 나는 그 책 소개를 어찌나 늘어지게 하는지 괴로워서 혼났다. 

내 코드 아니면 건성인 내 뻣뻣한 귀도 문제겠지만 그녀의 설교를 건성으로 대하는 건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남들이 자기 얘길 안 들어주자 남 얘기 듣는 건 흥미가 없는지 차라리 왕따가 되기로 결심한 듯 일행을 떠나 음악을 벗삼던 그녀. 그래, 공주는 외루운 법이지.. ^^      

 

둘째날 아침에 합류한 호주 아이들 네 명 중 좀 튀는 아가씨만 살짝 몰카. ^^ 

지들끼리만 노는 얘들과는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눈 사이여서....

 

 

 

홍콩에서 온 43세 총각.  간만에 정다운 보통화로 수다 실컷 떨었다.

Mechanic Designer로 전자제품 케이스를 주로 디자인하는데 싱가폴에서 7년 일하다 돌아와보니 광동성의 수많은 전자회사들이 문을 닫아서 일자리 못 구하고 1년 넘게 놀고 있다고.... 대책없이 여행이나 다니고 있지만 갑갑하다고 했다. 홍콩에 일자리가 없으면 대륙에서라도 일자리를 구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너 같으면 6천원 받고 일하겠느냐, 한국사람들 못받아도 3만원은 받아야 일하지 않느냐. 자기도 마찬가지" 라고 열을 낸다. 

 

 

르네는 한국으로 여행 왔다가 8개월간 눌러앉아 한국말도 배우고 정신장애아 학교에서 자원봉사도 하면서 한국생활을 제대로 즐겼던 한국 매니아다. 올 12월로 어학연수가 끝나 중국을 거쳐 베트남까지 왔는데 여행중에도 한국이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녹두거리의 고시원, 떡볶기, 찜질방, 설악산..... 한국에서의 추억이 끝도 없이 흘러나온다. 프랑스로 돌아가 학위 마치고 나면 한국에서 일할 기회를 꼭 잡을 거라고 했다.

한국의 뭐가 그리 매력적이었는지 너무 궁금해서 캐물어봤지만 딱 떨어지는 답은 안 준다. 전생에 자기는 한국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애매모호한 대답만 돌아오니 누구나 맞는 땅이 있는가보다.... 라고 믿을 수밖에.

고등학교를 2년 만에 패스했고 스물 다섯도 안 된 나이에 박사 논문을 쓰고 있고 한참 멋부릴 나이에 아무거나 걸치고 다니는 모양새를 보면 공부벌레구나 싶기도 하지만, 다양하고 폭넓은 관심과 활달한 행동반경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고... 프랑스 지식인 스타일이 이런 걸까? 아무튼 상당히 흥미로운 아가씨였다.

어찌나 얘기에 열중했는지 동굴을 보러 갔다가 일행을 놓쳐 하롱베이의 하이라이트라는 동굴 위 산 정상에도 못 올라갔지만 나도 르네도 그리 아쉬워하지 않았다. 

 

우리 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베트남 신혼커플.

남편은 호치민 공항 출입국관리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이고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란다. 결혼한 지 두 달 됐는데 신혼여행을 못 갔기 때문에 설 명절을 맞아 하노이에 있는 시댁에 다니러 온 길에 하롱베이 투어에 나섰단다.

신혼부부 놀려먹기보다 더한 재밋거리가 어디 있으랴. 그래도 남편은 아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꾿꾿하게, 때로는 우리의 흥을 더 돋구려는 듯 정성껏 게살을 발라 먹여주는 오버까지 해가며 신혼부부만의 특권을 과시한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아내를 위해 일일이 통역을 해주며 같이 느끼고 같이 웃으려는 그 열성!

아~ 옛날이여,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나? 

 

호주 시드니에 15년째 살고 있는 인도계 말레이지아인 부부 산타와 클레멘티.

남편은 금융감독원 감사이고 부인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강의한다고 했다.

 

말레이지아에서 야자유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클레멘티의 형. 요즘 말로 '포스가 장난 아니다.'

 

직업으로 미루어 분명히 상위계층 5%에 들고도 남을 인사들일 텐데 어찌나 겸손하고 소탈한지.... 게다가 활달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하여 난생 처음 만난 말레이지아 사람(게다가 내게는 완전 생소한 인도계!)들이지만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주로 내가 먼저 말을 거는 편인데 이들은 우리가 하노이에서 미니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큰 웃음으로 먼저 우리를 맞아주었다. "We are open minded people!" 

 

사실 말레이시아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따라서 관심도 거의 없었다. 인도계, 중국계, 말레이시아계가 함께 살아가는 나라, 싱가폴보다는 못살고 인도네시아보다는 잘 사는 나라란다... 정도? 그러나 그들의 일상에 관한 화제 사이사이로 내비치는 말레이시아 사회의 모습은 말레이시아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바짝 자극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가봐야지, 마음 먹게 할 정도로.  

 

산타와 클레멘티가 만나게 된 댄스파티 얘길 듣고 있자니 마치 인도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속에는 말레이시아 내 인도계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진하게 녹아 있었다. 중국에서 어학연수할 때 만난 말레이시아 화교 학생들을 보며 말레이시아에선 화교사회가 제일 막강한가보다 했는데 인도계 커뮤니티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말레이계가 말레이시아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자기들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소수파라니, 다민족국가에서 민족감정 문제는 우리나라의 지역감정보다 더 뿌리 깊은 갈등인 듯하다.

 

클레멘티는 1979년에 한국에 와봤다고 한다. 일본 출장길이었는데 한국이 궁금해서 없는 짬을 냈단다. DMZ에 갔었고  딱 하룻밤 잤지만 인상 깊었다고, 언제고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라고 했다. 386세대를 알고 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고 당연히 질문도 많았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특히 대학에서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는 아내 산타는 1970~80년대 대기업의 성장과정과 현황에 관해 퍽 세부적인 질문들을 했고 한국의 조세제도에 대해서도 묻더군. (읔, 갑작스런 질문들에 무식한 나 급당황!) 

 

 

인도계 사람들은 정말 포토제닉하다.

JM이 찍은 사진에 'Secret Agent Man'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보여주니 웃느라고 뒤로 넘어간다.

외모와는 달리 나만큼이나 수다스럽고 장난 좋아하는 이 유쾌한 사나이는 신기하게도 내 남편의 가장 절친한 친구와 상당히 닮았다. 그 얘길 하니 올해 4월 28일이 자기 환갑잔치인데 우리 부부와 자길 닮았다는 그 친구까지 초청하겠다고, 꼭 와주길 바란다네. ㅎㅎ 그냥 하는 얘기려니 했는데 농담 아니라면서 이메일과 전화번호 집 주소까지 꼼꼼히 챙겨주는데, 언제 한번 놀러갈 기회가 있긴 하려나?

(에구, 지난 생일날 축하메일이라도 보냈어야 하는 건데....)

 

 

남편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카레를 만드는 여인'이라고 불리는 산타.

활짝 웃는 모습 하나에도 씩씩하고 상냥하고 현명한 그녀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맥주 한 잔 앞에 놓고,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지는 해를 배경으로, 뜨는 해를 기다리며....

수다라는 것이 대충 두 시간 정도 떨고 나면 지치고 지겨워지기 마련인데 이 친구들과의 화제꺼리는 끝도 없이 솟아난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문화도 인종도 다른 사람들끼리 어떻게 그리도 죽이 잘 맞았는지... 혹시 전생에 옆집 살던 내 소꿉동무들은 아니었나?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내가 어디 자리 잡고 앉아 있으면 클레멘티가 어김없이 다가와  능청맞은 정중함으로 던지던 말, "Would you give me the pleasure of being your company?"

 

 

  

친구들과 노느라고 사진은 좀 션찮게 찍었지만.... 그래도 구색으로 몇 장 올려봐야지.

 

우리가 타고 나간 배.

1층은 트윈베드와 샤워실이 갖춰진 객실이고 2층은 식당, 3층은 갑판으로 되어 있다.

배 뒤쪽으로 보면 마치 드라마 장보고에 나오는 장면들처럼 배들이 굉장하게 도열해 있다. 모두 85척이란다.

 

 

동굴에 가기 위해 정박했던 곳인 갑다. 

  

첩첩이 나타나는 봉우리들을 보면 중국의 계림과도 비교할 수 잇겠지만 바다 위에 떠 있으니 또 다른 맛이다.

 

 

병풍처럼 봉우리들이 아늑하게 둘러쳐진 지점에는 작은 마을도 있다.

깃발을 내건 곳은 학교란다.  

 

 이강에서 보는 계림이 그림 앞을 지나치는 기분이라면 여기는 그림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랄까.

 

번진 산수화 속으로....

   

중국 같았으면 이 바위에 필시 노인봉 어쩌구... 하는 이름을 붙였을게다.

베트남 가이드는 말이 없다. 그냥 마음이 보여주는 대로 보라는 거지.. 

 

날이 흐리면 흐린 대로.... 부우연 맛에.... ^^ 

 

해가 기우는 방향에 따라 바다는 녹색으로 빛났다 연한 핑크빛을 머금고 하얗게 빛났다.....

 

따뜻하고 가벼운 명주솜 이불이 반겨주는 객실.   

 

 

바다에 어둠이 내리니 불빛을 머금은 물결이 퍽 근사하다.

 

 

배에서 하룻밤을 굳이 자자는 뜻은 일출과 일몰을 보기 위함인데 날이 흐려 아무것도 못 봤다.

일찌감치 불이 나가버리니 아홉시부터 취침모드였던지라 새벽 네 시에 잠이 깼지만 사방이 칠흑이라 꼼짝없이 갇혀 있는데 어느 한순간 창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뛰어나가 보니 해 뜨는 기미도 없이 아침이 됐다.

 

 

서둘러 갑판으로 올라가니 맑은 빛살이 어느새 바다에 넓게 드리워 있다.  

은빛 물결 사이로 벌써 부지런한 배들이 떠다닌다. 학교 가는 아이, 장사 나가는 엄마.....

 

 

오늘도 여전히 하늘은 흐릴 모양이지만 아침 빛을 받아 그런지 바다물빛이 더 신선한 느낌이다..   

 

어제 왔던 바닷길을 되짚어 점심때쯤 어제 우리가 배를 탄 선착장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