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야에 도착하면 우선은 피마이행 버스가 연결되는 나콘 랏차시마까지 가서 잠자리를 구할 생각이었다. 피마이 사원에 한 발짝이라도 더 접근해서 자고 이튿날 피마이 사원을 둘러본 뒤에 팍총으로 돌아와 묵고
그 다음날 카오야이 국립공원에서 종일 놀고... 그리고 아유타야로 돌아오면 일정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아유타야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8시, 나콘 랏차시마까지 세 시간 넘게 걸린다는데 자정 가까운 시간에 배낭 지고 숙소 잡으러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심란하다.
아서라, 일단 팍총까지만 가야겠다.
나콘 랏차시마도 그렇지만 팍총에 대해서는 더더욱 정보가 없으니 무조건 숙소 많은 동네에서 하차.
교통경찰에게 "hotel, cheap hotel!"을 외치니 멀지 않은 곳에서 호텔을 하나 찾아주더군.
190밧짜리는 다 찼고, 다행히도 TV 있다고 220밧 받는 방은 몇 개 비어 있다.
찬물 샤워에 쪼그리고 앉는 변기, 창고처럼 휑뎅그레한 방이지만 밤 열 시가 넘은 시각엔 이 한 몸 뉠 공간만 내준다면 황공할 따름이지. 일단 하룻밤 넘기기로 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저녁도 못 먹었지만 배고픔보다 고단함을 내려놓는 게 더 급했기에....
아침 일찍 피마이 갈 채비를 갖추고 1층으로 내려가니 프런트에 영어 되는 아가씨가 앉아 있다.
카오야이 국립공원 투어가 있는지 물어보니 1300밧 달란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400밧, 썽테우 왕복이 80밧, 점심을 100밧 잡는다고 해도 너무 비싼 거 아닌가? 그냥 내가 썽테우 타고 가면 안 되나?
아가씨는 2년째 이메일을 주고 받는 한국 친구가 있어서 작년 11월에 그 친구 초청을 받아 한국에 다녀왔다고 한다. 부산과 남해를 돌아봤다는데 다랭이논이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중국 가면 흰죽에 왕만두나 콩국에 요우탸오 적셔먹는 재미로 아침을 기다리는데, 태국에선 길가에서 파는 이 죽 한그릇 먹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연다. 흰 죽에 날계란, 실파, 생강채, 참기름, 간장을 조금씩 넣은 평범한 음식인데 왜 그렇게 맛난지.... 아마도 귀양 간 임금님을 현혹시켰던 '도루 묵'의 비밀이 숨어있겠지. ^^
이 흡족한 아침 한끼가 단돈 15밧.
나콘 랏차시마. 한국에 있을 땐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낯선 도시지만 사실은 방콕 다음으로 큰 태국 제2의 도시. 태국 사람들은 이 긴 이름 대신 코랏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른다.
팍총에서는 코랏이 금방일 줄 알았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 터미널조차 번화한 시내에서 벗어나 인적 드문 허허벌판에 있으니.... 어젯밤 팍총에서 멈추길 잘했지, 내처 코랏까지 왔더라면 숙소 찾느라고 겁좀 먹었겠다.
터미널에서 바로 피마이로 연결되는 버스로 갈아타고는 한 시간 반을 더 달렸다.
2시간 + 1.5시간.... 오가는 데만 7시간을 쓰다니.....
난 대체 왜 피마이에 가는 거지? 그야말로 '가러' 가는 거잖아.
한 태국 아줌마가 서투르게 말을 걸어온다. 올해 5월에 한국에 일하러 가게 되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단다.
남편이 돈 많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후에 아들 학비랑 생활비 벌어대느라고 줄곧 방콕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사연을 털어놓는다. 지금은 한국사람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데 한국에 갈 때 필요한 서류 만드느라고 고향집에 돌아왔다고... 한국 가는데 13만 밧이나 냈다네.
주변에서 한국말을 못알아듣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토막진 단어와 신체언어밖에 구사 못하는 짧은 실력으로 자신의 굴곡진 인생사를 읊어대는데... 감당이 잘 안 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소연이라니... 그만큼 외로운 처지라는 얘긴데 어쩌겠나, 괴로워도 들어줘야지.
광명시를 아느냐고 묻길래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다고 하니까 그럼 광명실업이라는 회사도 알겠네? 하며 반색을 한다. 불안한 모양이지.... 안쓰러웠다. 하지만 아줌마는 혼자 배낭 지고 다니는 내가 불안해 보이는지, 깐차나부리에 자기와 자매나 다름없이 지내는 아주 친한 친구집이 있으니 숙소 찾기 힘들면 그리로 가라고 전화번호까지 챙겨준다. 나도 한국에서 힘든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줬는데 아직까지 전화가 없으니 잘 지내는 모양이군. (아니, 혹시 못왔는지도 모르겠다. )
피마이에 도착해서는, 근처에 오토바이 세워뒀다고... 뒤에 타고 자기 집에 가잔다. 30킬로 떨어진 곳이니 잠깐 들러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참았다. 지나치게 적극적인 아줌마의 태도가 살짝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초면에 너무 나가면 상대방이 위축되기 마련이다. (내 태도에도 그런 점이 없지 않은지...)
그저 한국에서 무탈하게 돈 많이 벌고 억울한 일 안 당하고... 좋은 마음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며 빠이빠이.
일찌감치 출발했건만 도착하니 벌써 11시다.
버스터미널에서 손짓발짓해서 찾아간 피마이 사원(정식으로는 피마이 역사공원이라고 불린다).
앙코르 제국의 전성기를 말해주는 대단한 유적이 그냥 동네 한가운데... 얕은 울타리 너머에서 너와 나의 일상처럼 심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54년부터 수차례의 복원공사를 거쳐 '피마이 역사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이 사원이 정식으로 개장된 것은 1989년.
피마이 사원이 의미 있는 이유는 태국 영토에 남아 있는 앙코르 제국의 유적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피마이 사원은 앙코르 제국이 태국 남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던 10세기 후반~11세기 초반에 앙코르 왕조에 의해 세워진 왕실 사원이다. 그래서 건축 양식은 물론 건축물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도 당시 앙코르 제국의 수도쪽이며 이곳으로부터 앙코르까지 225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 놓였다.
앙코르 왓과 닮아 있는 세 개의 사원 건물로 들어가려면 사자상이 지키고 있는 다리로 올라가야 한다. 이 다리는 인간의 세계에서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다.
모든 문들의 윗부분은 압살라춤을 추는 무희들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무너져가는 건물을 받치기 위해 새로 만들어 끼워놓은 것이란다.
(원래의 벽돌들은 붉은색, 새로 보수한 벽돌들은 흰색).
첫번째 문을 통과하면 앙코르 왓 사원과 형제간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세 개의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원은 두 개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각각의 담장은 통로가 있는 복도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이 복도 안에 들어오면 사통팔달 거침없이 오가는 시원한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동남아 여행을 할 때 대낮엔 사원으로 가라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門外門
대부분 앙코르 시대의 사원이 힌두사원이지만 피마이 사원은 불교사원인 듯하다.
담장(혹은 복도)의 지붕이 모두 사라지고 벽체만 남은 것처럼, 사원 건물들 역시 세월의 피로를 이기지 못해 서로 기대고 있다. 아무리 정성껏 보살피고 보수한다 해도 옛것들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지.
피마이는 도시 전체가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유적지. 역사공원으로 지정된 이 사원은 도시 중심부에 있다.
피마이 사원 남문은 복원공사중.
동네 곳곳이 유적지. 그러나 간신히 흔적만 남은 유적지들은 뒷방 노인네처럼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는 듯...
큰 길만 벗어나면 정말 고요한 동네..
국왕 시계탑이 지키는 로터리가 피마이의 중심가
마침 하교시간.... 초중생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이 조용한 마을에 사랑스러움을 더해준다.
태국아이들은... 아니 태국사람들은 유쾌하고 장난기가 많은 것 같다.
삶을 즐기는 데 올인하는 멕시코 사람들과 닮아 보인다.
갔던 순서대로 되짚어 돌아오니 7시 반.
야시장 구경을 나갔다. 먹을 거 천지다.
아마도 복권?
재밌어서 찍어두긴 했는데 지금 보니 뭔지 모르겠넹~
새우, 조개, 오징어, 숙주가 듬뿍 들어간 해물부침(30밧). 골고루 챙겨놓은 샐러드(25밧), 밥 10밧에 아침으로 먹을 빵까지 사가지고 들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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