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야 가는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옆 벤치에서 함께 기차를 기다리던 아가들.
두 돌이 안 됐다는 큰녀석을 안아보니 돌덩이 같다. 뭘 그리 잘 먹이셨나?
작은녀석은 태어난 지 석 달 됐단다. 천하가 제 것인양 만족한 저 배냇웃음.
저 웃음이 원초적인 표정이라면 평생을 저렇게 웃고 살아야 할 텐데.....
기차에서 팔 도시락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아줌마
기차를 탄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닐텐데, 아마도 늘 다니는 길인 듯 차림새도 태도도 그저 심상하다.
멍멍아, 제발 안전선 밖으로 나가 있거라. 곧 기차가 들어온다잖니...
어느 나라든지 기차는 군것질을 위한 장소인 듯.
거짓말 조금 보태서 승객들의 10%는 군것질 장사가 아닐까 싶다.
팔뚝 문신이 돋보이는 구아바 장사
좌석이 넉넉하니 침대차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소품으로 shabby한 기타까지 있으니 그럴 듯해보이긴 한데.... 기타 무늬가 좀.. ㅋ
내 앞자리에 앉았던 남자.
말도 전혀 안 통하면서 계속 소통을 시도한다. 자기가 싸온 과일도 먹어보라고 권하고....
그의 손짓발짓 어릿광댓짓을 통해 알아낸 것은 그가 전직 무에타이 선수였다는 사실이다. ^^
완행열차이다 보니 역마다 일일이 다 선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3시간 동안 30군데쯤 선 것 같다.
바람도 시원하고 경치도 멋지고....처음 타는 기차라 즐거웠지만 너무 자주 서니까...
슬슬 지겨워질 무렵에 아유타야에 도착했다.
아유타야 역에서 500미터 정도 걸으니 금세 보트 선착장이 나온다.
아유타아 시내 중심부는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여행자 숙소가 몰려있는 곳으로 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
강이라고 해봐야 다리로 건너갈 수 있을 만큼 폭이 좁지만 기차역에서 다리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고 뱃삯도 싸니 대개 배를 타고 건너다닌다.
유적도시답게 툭툭도 멋을 부렸다.
자동차를 개조해서 뒷칸에 좌석을 만들었다고 다 툭툭이 아니다.
태국에서 툭툭은 택시 개념이다. 삼륜차나 오토바이 뒤에 네 명 정도 앉을 만한 좌석을 만든 것. 반면 썽테우는 픽업트럭을 개조해서 열 명 정도 타게 만든 것으로 정해진 노선이 있기 때문에 자기 목적지와 맞아야 탈 수 있다. 따라서 대도시에서는 툭툭 가격이 당연히 비싼데 아유타야처럼 작은 도시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강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시내 중심에서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시내 쪽보다 싸다.
내가 배낭을 내려놓은 곳은 버스 스테이션(여기 사람들은 버스 터미널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Pu Inn. 200밧 이하짜리 싱글베드 룸이 있다길래(동남아 쪽은 남미처럼 싱글베드룸이나 도미토리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간 곳인데 공용욕실이 1층에 있다. 좀 불편하겠지만 2층에 배정된 방이 깔끔하고 아늑해서(일본인이 운영하는 집이라 그런지 매트를 바닥에 깔아놓았는데, 오랜만에 바닥 가까이에 눕는 기분이 신선해서) 그냥 체크인 했다. (그날 밤 결정적인 흠을 발견했다. 모기장이 없다!)
아유타야 유적지들 - Off Island
아직 해떨어지기 전이고.... 내일 하루는 On Island1를 돌아볼 예정이니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Off Island를 돌자 싶어 막 출발한다는 boat trip 팀에 끼었다. 2시간 동안 세 군데 돌고 night market에 내려주는데 200밧이다. 좀 비싸다 싶지만 아유타야에서 놀 시간을 하루 반 밖에 배정 안 했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혹 물패라 하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숙소에서 뒹굴면 뭐하나..^^
처음 들른 왓 파난 청.
엑, 중국절이잖아.... 왕 실망!
알록달록 코끼리도, 진주목걸이를 걸친 달마대사도 맘에 안 들었지만 곳곳에 황금부처님이 가격표를 달고 앉아있는 것도, 아직 빈 곳이 많으니 빠짐없이 금박 붙여달라는 듯 보이는 벌거숭이 부처님도, 오만한 황금빛을 발하며 중생들을 굽어보는 자이언트 부처님도.... 한마디로 돈 때 덕지덕지 묻은 절 분위기 전체가 심정을 상하게 했다.
이 절에도 옛 쩨디(불탑)들이 있긴 하지만 번잡한 법당 쪽과는 뚝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게 웬지 뒷방신세 같다. 여기는 유적지라기보다는 이 동네에서 가장 잘나가는 절이라서 들른 것 아닐까 싶다. 저 16미터짜리 저 대불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유적들로 탄 유명세 덕분에 명물을 만들게 되고 그 명물로 인해 나날이 부유해지고.... 뭐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에휴, 이 삐딱한 시선은 부처님도 못 고칠 꺼다.)
입구에 잔뜩 쌓아놓은 천들이 뭔가 했더니....
부처님의 옷자락을 상징하는가보다. 긴 천을 줄줄이 덮어쓰고 있는 장면....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종교에서 祈福적인 요소를 빼면 과연 신자들이 얼마나 남을까.
그러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라 현자들의 고상한 취미생활이 되겠지.
기복적인 요소가 신앙생활의 동력이 되기는 할 테지만 네가 구하는 복과 내가 구하는 복이 부딛친다면?
지혜로운 신께는 나름의 솔루션이 있겠지만 그 뜻을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라서 말이지...
현세의 복이 아니라 내세의 복을 빈다고 해도 내세의 복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이미 다른 차원으로 변해버린 육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물질적인 행복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정말 무엇을 위해 비는 걸까.
다음에 들른 왓 푸타이 싸완은 옛 쩨디들도 제 자리를 잡고 있어 분위기가 훨씬 그윽하다.
특히 아유타야 왕조를 세운 우통 왕의 기념관이 있어서 아유타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간 왓 차이 왓타나람에서야 비로소 아유타야 유적지의 제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우는 석양빛을 받아 붉은 벽돌들은 더 붉게 빛났고, 검은 이끼들은 세월 속으로 더 검게 침잠해들어갔다.
이곳은 오백년 시암 왕국의 도읍지.... 시대적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영화 '왕과 나'에서 보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절대권력자의 영화가 펼쳐졌던 곳이겠지. 그러나 꽃처럼 화려했던 시대는 꽃만큼이나 허무하게 목을 떨구어 그 후손들로 하여금 諸行無常의 도리를 깨우치게 만든다.
그러나 가여운 중생들은 오늘도 쌓고 싸우고 허물기를 그치지 않고 있으니...
그 불심 깊다는 미얀마 사람들이 어째 불상들을 훼손했을까.
자기네 부처님과 시암왕국의 부처님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걸까?
석양에 물들고 강바람에 젖어 돌아오던 뱃길이 어찌나 좋던지 처음에 괜히 왔나 싶던 생각이 싹 가셔버렸다.
아유타야에 도착했을 때 마주쳤던 분들이 있었다. 그때는 서로 바빠서 일단 헤어지면서 저녁 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약속장소를 헷갈려 한참을 서로 찾아 헤맸다(여행지에는 휴대폰이 없다. ㅜ.ㅜ).
나보다 약간 연배이신 부부인데, 직장 다니는 며느리가 곧 손자를 안겨줄 것 같아 그 전에 움직여보자고 배낭을 매셨단다. 태국과 베트남을 돌기로 하고 길을 떠났는데 처음엔 모든 게 낯설어 적잖이 힘드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패키지보다는 훨씬 흥미진진하고 둘이 오붓하게 다닐 수 있어 좋다고, 이제 적응이 되가니 더 재미있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고 즐거워하신다..
하나뿐인 아들이 계속 졸업을 늦추고 생전 결혼 같은 건 안 할 것처럼 굴어서 앞으로 어찌 살려나 걱정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여자친구가 생기더니 결혼하겠다고 서두르더란다. 옛날 같으면 흉이 될 수도 있는 손자 혼수지만 어찌나 고맙고 대견하던지 당장 날짜를 잡았다네. 그러고 나서는 일이 잘 풀리려는지 취업도 되어 올해 여름에 미뤄뒀던 졸업도 할 거란다. 우리 아들 또래의... 내게도 조만간 닥칠 얘기라 유심히 들었다. ^^
다음 행선지가 베트남이라고 해서 내가 다녀온 루트를 소개해드렸더니 도움 많이 됐다고 밥 사주시네. ^^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피씨방에 들러 이메일을 열어보니 다니던 대학 때려치우고 부모 속을 태우던 4수생 조카가 드디어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과 두 해째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또다른 조카가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다. 작년 이맘때 멕시코에서 아들넘으로부터 편입시험에 붙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는데...ㅎㅎ
요즘 젊은이들에게 어른으로 가는 길은 왜 그리 굴곡지고 힘든지.....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한 부모세대로서는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울 따름이다.
아유타야 유적지들 - on Island
새아침이 밝긴 했는데 땡볕이다.
간밤에 예쁘게 불 밝히던 가로등(윗 사진)이 낮에 봐도 예쁘다.
나무뿌리에 파묻힌 부처님 머리로 유명한 왓 마하탓을 비롯, 세 군데인가를 돌았는데 일일이 기억 못한다.
어제 본 왓 차이 왓타나람과 비슷한 분위기의.... 무너져가는 쩨디, 목 잘린 불상들의 숲을 누비고 다녔다.
가이드는 물론이고 관광객조차 없는 이른 시간인 데다가 뭔가에 홀린 듯 거닐다 보니 정작 유명하다는 그 부처님 머리는 보지 못했다. 못 봤다는 사실조차도 이날 저녁 일기를 쓰다가서야 깨달았다. ㅎㅎ
이름 있는 절들 외에도 쩨디들이 무수하게 산재해 있는 지역이 '역사공원'이라는 구획으로 묶여 있다.
대로에 코끼리가!!
영업 하는 코끼리인 모양인데..... 며칠 전 팍총 가는 버스를 타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구걸하는 코끼리가 다가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태국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겠다.
이건 무슨 이벤트인고?
아마 어떤 기업에서 주최하는 판촉행사인 듯한데 진짜배기 서민잔치였다.
노래자랑도 하고 경품도 주고...
그러더니 여자보다 예쁜 남자들이 나와서 공연을 한다.
무대에 올라가도 될 만한 이 예쁜 소녀는 거리에서 공연을 펼치고....
게스트하우스와의 악연
이것으로 아유타야 story는 끝인가?
떠나는 마당인데 흉좀 보고 가련다.
첫날 묵었던 Pu Inn 건너편에 허름한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도착하던 날엔 눈에 띄지도 않았는데 이튿날 아침 일찍 나가는 길에 눈에 띄길래 그냥 한번 물어봤더니 100밧이고 빈 방 있단다.
모기장 있냐고 물어보니 있다고 해서 당장 옮겼다. 공동욕실을 사용하기 위해 1층으로 오르내리는 것 빼고는 완벽해 보였던 Pu Inn이었는데.... 어제 밤새 모기에 뜯기느라 불면의 밤을 보냈던 것이다. 단 하룻밤인데 옮기기도 번거롭고.... 오늘밤은 또 어떻게 견뎌야 하나, 더우니 문도 못 닫겠고, 모깃불을 피워야 하나 갈등 때리고 있던 중이라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시설은 창고 수준이지만 볕이 잘 드니 물것은 없겠고, 욕실도 같은 층 한갓진 데 있고....됐네, 여기서 또 하룻밤 묵어가세.
헌데 오후에 들어와보니 함석지붕집 2층방이라 찜통이 따로 없다. 선풍기에서도 뜨거운 바람만 쏟아진다.
그래도 오전에 왓 2개 돌고 역사공원까지 돌고 난 뒤라 더운지 어떤지 가릴 틈도 없이 그대로 뻗었다.
햇볕과 땀에 절어 네 시간을 내리 자다가 깨어난 혼곤한 오후.... 땀 범벅이 되어 일어나 찬물로 샤워를 하고는 겨우 정신차렸다. 낮 시간에 이렇게 오래 침대에서 기절해본 건.. 해피피자 이후 처음이다.
도마뱀아, 안녕? 우리 과테말라 어딘가에서도 만났었지?
저녁 8시에 시작된 옆 골목 레스토랑의 라이브 공연이 10시쯤 끝나려나 했는데 11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태국 민요라면서 굉음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는데 처음엔 들어줄 만하더니 조금 지나니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다. 크래쉬의 안흥찬이 태국에 온 줄 알았다. ^^ 이 동네 사람들은 불평도 안 하나봐?
끝났나 했더니 이번엔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동네 청년들이 모여들어 술 마시며 떠들어대는데 어찌나 목청들이 큰지.... 좀 마시다가 파장하겠지 했는데 12시가 넘고 1시가 넘고 2시가 가까워도 끝날 줄 모른다.
중간에 몇몇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길래 이제 끝이구나 좋아했더니 그것이 제2라운드의 시작이었다. 뭘 해먹는지 음식냄새 피우고 병 따는 소리까지 들린다. 천장에선 쥐들이 축구를 하는지 탭댄스를 추는지 함석판 밟고 우르르 우르르 뛰어다니는 소리..... 뿐만 아니라 낮에 달궈진 함석지붕의 열기마저 짜증을 돋군다.
옆방에서도 화가 났는지 음악을 이빠이 틀었다. 아, 전쟁터가 따로 없네.
태국 사람들이 늦게 잔다는 건 알고 있기 때문에 2시까지만 참고 그때까지 안 끝나면 내려가보자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데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조용해..... 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잠시, 게스트하우스 주인총각 둘이서 계속 두런두런 하는 거다. 뭐라고 불평하기도 마땅찮은 어중간한 톤으로.... 내가 미쵸!!!
친구들이 와서 떠들어도 말려야 할 사람들이.... 어째 그리들 개념이 없나.
새벽녘에 간신히 잠들었다 깨보니 7시가 넘었다. 아침 8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놀라서 부지런히 씻고 나오다 보니 옆방 문이 열려 있다. 날 새자마자 가버린 모양이다.
체크아웃 하면서 현관에 써붙인 가격표를 보니 실소가 나온다. 에어컨과 욕실을 갖춘 방은 300밧이란다.
내가 아는 한 이 집엔 그런 방 없다. 선풍기에 공용욕실, 창고같은 100밧짜리 방만 다섯 개다. 그 가격표는 완전 장식용이란 얘기지.
얘들아, 제발 밤엔 자고 낮엔 열심히 일해서 300밧짜리 방 진짜로 지으려무나.
- 수코타이에 도읍했던 태국 최초의 왕조를 무너뜨린 아유타야 왕조의 도읍지였던 곳이라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 할 정도로 무수한 불탑과 사원들이 남아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강을 기준으로 해서 강 안쪽에 있는 유적지를 on Island, 강 바깥쪽에 흩어져 있는 유적지들을 Off Island라고 지칭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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