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태국10(칸짜나부리)-지옥불 속에 놓인 철교

張萬玉 2009. 8. 11. 16:28

아유타야에서 칸짜나부리까지 직접 가는 버스는 없고 수판부리에서 갈아타야 한다. 

물론 칸짜나부리까지 직접 가는 미니버스가 Pu Inn에서 9시에 출발한다는데 세 시간 걸린다고 하니, 수판부리까지 1시간 반, 거기서 411번 버스로 갈아타고 2시간 걸리는 로컬버스보다 겨우 30분 빨리 가는 셈이다. 그러니 가격은 1/4 밖에 안 되고 동네골목 누비며 태국의 구석구석까지 보여주는 로컬버스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운전 차암 편하게 하시네... ^^

 

'아침 일찍 어딜 그리 서둘러 가시우?' 

 

태국 농촌의 버스 정류장.

 

칸짜나부리 버스 터미널에서 내리니 여자 릭샤꾼이 호객을 한다. (강가에 있는 숙소거리까지는 5킬로 정도)

아유타야에서 만났던 부부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뱀부 하우스 간다고 했더니 거기 비싸다고 jolly frog와 Suan sugar를 소개한다. 하긴 저녁에 들러서 메모 남기면 나는 약속을 지킨 셈이니 굳이 비싼 집에 가야 할 이유가 없지. 릭샤아줌마가 소개하는 대로 따라갔지만 빈 방이 없어서 조금 헤매다가 150밧에 욕실 딸리고 선풍기 돌리는 방을 하나 구해 간신히 체크인 했다. 리셥센이 친절하고 소박하지만 깨끗한 방도 마음에 든다.

 

 

아름다운 정원은 보너스..

사진엔 안 나왔지만 오른쪽 화분 뒤에 멋진 대나무 의자가 놓여 있어서 투숙객들과 잡담하기 딱이다.   

 

 강 쪽으로 내려가면 이런 방갈로들도 있다.

 

약속을 지키려고 뱀부하우스를 찾아가보니 투숙객 중 한국인 부부는 없다. 나보다 하루 먼저 이곳으로 왔는데.... 무슨 사정이 생긴 걸까? 설마 여행길에서 한 약속은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건 아니시겠지?

우쨌든 2킬로 길을 걸어왔으니, 온 김에 칸짜나부리 배낭여행자 숙소 중 최고로 꼽힌다는 뱀부 하우스 한바퀴 돌아주시고....

 

이쁘다. 과연 이름값을 하는군.

 

 

 

고양이가 가로막고 있는 길을 따라 가면 강과 강가에 지어진 방갈로들이 나온다.

이 거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들은 거의 그렇게 지었다. 앞쪽은 여행자 거리와, 뒤쪽은 강과 맞닿아 있다.

 

 

그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가 바로 옆이라길래 그 쪽으로 걸어가봤다.

 

 마침 철교 너머로 해가 기울어 강물로 떨어지고 있었다.

 

  

곧 기차가 들어오니 피하시오!!

 

 

 

 

 

방콕으로 돌아갈 날까지 겨우 이틀 밤밖에 안 남았으니 칸짜나부리가 마지막 일정이 되겠다.

마음으로는 암파와의 반딧불 빛나는 밤을 오래도록 그려왔지만 정말 거기까지 뻗치려고 했다면 피마이나 카오야이 국립공원을 생략해야 했다. 이제와선 헬리콥터로 날아간다 해도 안 되지.

칸짜나부리에 내줄 수 있는 시간도 내일 딱 하루뿐이니 가장 효과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650밧짜리 제일 간단한 데이투어 코스는, 과거에 미얀마행 철도의 시발점이었다는 Sai Yok Noi 폭포에서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희생자를 냈던 '죽음의 철도'(Hellfire Pass) 기념관과 철도공사 현장을 돌아보고 온천욕을 한 뒤... 지금도 일부 구간 운행되고 있는 협궤열차를 타고 영화 '콰이 강의 다리'로 유명해진 철교 위를 달리는 코스다.

태국에 온 김에 코끼리 타고 에르완 국립공원을 누벼봄직도 하겠지만 그건 시간 있을 때 얘기고.... 

 

 

투어 팀이 8시에나 데리러 온다니 6시에 일어난 early bird는 기나긴 아침시간을 짭짤하게 사용한다.

철도 건설현장에서 죽어간 징용 노동자들과 연합군 병사의 묘지를 돌아보고....

 

 

과일의 여왕이라는 두리안. 본고장이라는 태국에서조차도 비싸서 마음껏 못 먹는다는....

난 아직도 저 맛에 적응 못했다. 냉동실에 살짝 얼린 건 참고 먹을 만한데....

 

내일 몇 시부터 서둘러야 방콕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을까 알아보려고 내친 김에 기차역까지 들렀다.

예상대로 방콕 가는 기차가 있다. 7시 19분발. 23밧이다.(이튿날 기차표를 끊으려니 외국인에게는 100밧을 받는다. 태국여행에서 유일하게 당한 외국인 차별이었다)  

 

 

투어팀은 스웨덴에서 온 젊은 두 커플, 영국인 노부부 커플,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온 남남커플 그리고 한국의 40대 미스터 리.... 나까지 모두 열 명이다. 한 시간을 달려 싸이 욕 국립공원에 있는 폭포에 도착했다.

 

애교 많고 세심한 가이드 언니.

덩치가 너무 크고 목소리도 중성적이라 혹시 트랜스젠더 아닐까 궁금했음.

  

건기라 그렇겠지만 폭포라고 이건 원.... 콧등 위로 흘러내리는 거인의 눈물 같다.

 

이곳은 기찻길 시작되는 지점이었다는데 지금은 당시 사용되던 열차 한 량만 덩그라니 남아 있다. 

 

 

 

 

다시 30분쯤 달려 콰이강 기념박물관에 도착.

연합군 포로 6만, 아시아에서 징용으로 끌려온 노무자 20만 명이 400킬로에 달하는 군수물자 수송용 철도를 20개월만에... 오로지 손노동으로 놓았단다. 군대가 무섭긴 무섭군.

기록영화를 보여주는데 서양남자도 비썩 마르니 그렇게 가련하고 볼품없을 수가.

 

그 지옥 같은 현장에서도 스케치를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 사람이다. 군의관 출신의 연합군 포로 Jack Chalker....

하루하루가 생존투쟁이었을 절망의 나날 속에서 그림이 나오다니....그러니 인간란 존재가 특별한 모양이다.  

이 그림은 감옥에 있던 시절에 그린 자화상인데 다른 생존자가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림의 주인공은 살아나갔을까? '침목 하나에 한 목숨'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는데...

 

지금도 매년 4월이면 희생자 가족들이 제사 지내러 오고 칸짜나부리는 그렇게 관광사업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젊은 일본애들은 이런 참상을 전혀 모르고 왔다가... 쇼크를 받아 울고 가는 애들도 있단다.

 

 

기념관 뒤쪽으로 내려가면 헬 파이어 패스가 나온다. 역사의 현장이라고 자갈 하나도 들고가지 말란다.  

 

 

왜 이 나무는 그냥 뒀을까?

 

 

헬 파이어가 끝나는 지점에는 무명 노동자들의 합동 비석, 그리고 그들의 명복을 비는 작은 십자가와 사용하던 공구들이 그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점심시간. 튀긴 생선에 똠양꿍이 주요리로 등장했는데....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똠양꿍, 민트향이 어찌나 강한지 한 숟가락 뜬 것이 오후 내내 콧가를 맴돈다. 

 

다음 코스는 온천.

코끼리 타는 코스 대신 온천 코스를 선택한 것은 아유타야에서 이틀밤 못 잔 피로가 여태 가시지 않아서...

물이 꽤 뜨거워 묵혀뒀던 그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다 풀린 듯...

 

 

냉탕(위쪽)과 열탕(아래쪽)이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냉탕과 열탕을 번갈아가며 세 번이나 들락날락했더니 몸이 다 풀렸다. 바닥에 이끼기 끼어 스케이트장보다 더 미끄럽다. 발 한번 잘못 디뎠다 발랑 뒤집어져서 뭇사람의 눈요기깜이 될까봐 기를 썼더니 발목이 다 시큰거린다. ^^

 

현지인들도 많다. 더운 나라 사람들도 온천 좋아하나봐?

 

 

여긴 상류에 마련된 승려 전용탕.

세상 쾌락을 멀리해야 마땅한 신분이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

 

기차에서도 승려 전용 좌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던데.... 그럴 만하니까 그러는 거라고? (알았어요, 깨갱~)

 

 

온천에서 나와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기차역으로 이동. 

여기서 콰이강의 다리까지 가는 협궤열차를 탄단다.

 

난간도 없는 아찔한 궤도. 음주하신 분이나 임산부는 출입금지.. ^^

 

 

 

기차는 통학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내 카메라의 VIP들이다.

 

 

 

세 정거장을 달려서 도착한 협궤열차의 종착역. '콰이강의 다리' 앞이다. 

 

여기는 칸짜나부리 역이다. 2009년 2월 17일 오전 7시. 

 

 

내일 이맘때 난 대만행 비행기를 탈 준비로 부산하겠지.

그리 길지도 않지만 인도지나반도 5개국을 돌기엔 너무나 짧았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누가 쫓아아오는 것도 아닌데 참 숨 가쁘게도 달려왔다. 배낭도 지쳤는지 뒤로 넘어갔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