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에서는 타이베이에서만 5박 6일 머물렀다.
중국에 있을 때도 타이완 갈 기회가 두어 번 있었지만 '중국이나 뭐 비슷하겠지' 싶어 추진하지 않았을 정도로 타이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스탑오버를 할 수 있으니 그냥 잠깐...' 하는 기분으로 들렀는데...
결과적으로 말하면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경치도 아름답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일본과 비슷한 소박한 라이프 스타일도 마음에 들었지만 타이완에는 나의 氣와 맞는 뭔가가 있었다. 도착하던 첫날 그걸 알아버렸다.
방콕에서 세 시간 반을 날아 타이베이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6시.
공항리무진을 타고 셰라톤 호텔 앞에서 내려 인터넷에서 찾아둔 호스텔을 찾아들어갔다.
비행기에서 만난 동갑내기 한국 아줌마와 함께였다. 이 분은 공교롭게도 나와 같은 날 한국을 떠나왔고 같은 날 대만에 내렸다. 대만에 들른 것은 항공사 스케줄 때문인데,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를 몰라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낼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는 나갔다 들어와도 될 같은데 내 묵는 호스텔에서 편하게 자고 잠깐이나마 타이베이 냄새라도 맡고 가라고 권했더니 좋아라 따라오셨다.
타이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호스텔 얘긴 이미 앞에서 썼고 http://blog.daum.net/corrymagic/13754369
오늘의 포스팅은 도착한 다음날 부리나케 다녀온 화롄(華蓮) 얘기.
화리엔은 타이베이로부터 기차로 세 시간 걸리는, 당일치기 관광으로서는 좀 버거운 곳이다. 그러나 5박6일 내내 타이베이 시내에서만 머무르기가 못내 아쉬웠기에 방콕 있을 때 타이베이 인근 도시들을 검색하다가 선택한 곳이다. 화롄 가는 기차는 늘 만석이니 예매가 필수라고 하기에 인터넷으로 예매를 해뒀다.
http://www.thsrc.com.tw/tc (직접 가서 확인해보니 입석은 바로 가도 살 수 있다)
7시 25분발 기차를 타려니 바쁘다. 숙소에서 타이베이 역까지는 도보로 넉넉이 잡아 15분, 전철과 연계되어 있어 매우 복잡한 철도역 내부에 적응해서 틀림없는 플랫폼에 도착하기까지 15분 잡아야 하니 출발시간보다 30분쯤 일찍 출발해야 기차를 놓치지 않겠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검은 정장에 흰 양말, 단정하게 묶은 머리까지 똑같이 묶은 나이 지긋한 여인네들이 가득이다. 한 무리의 중년신사들 역시 검은 정장에 넥타이 차림이다. 불교 봉사단체(佛敎慈濟志工) 회원들인데 단합대회를 하러간다고 한다. 별스러운 일도 아닌데 다른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무리지어 움직이는 걸 보니 별스럽게 느껴진다. ㅎㅎ
화롄역에 도착하자 과연 단체친목행사다운 의식부터 거행하시네....
기차는 우리나라 KTX 급이다.
직원들이 직접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출입문 꼭대기에 있는 전광판에 '97년 12월부터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물건을 산 영수증만 있으면 어디어디 입장료가 무료이고.... ' 이런 뉴스 자막이 흘러가는 것이다.
아니, 무슨 12년 전 뉴스를 지금 내보내고 있어? 오타인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계속 같은 년도의 정부 조치나 사건들이 나오길래 오타는 아닐꺼고... 뭔가 사연이 있을꺼다 싶어 열심히 머리를 굴린 결과...
2009년에서 97년을 빼보니 1912년, 저게 작년 겨울에 발표한 조치니까 1911년..... 아, 중화민국이 건국한 해를 원년으로 삼고 있는 모양이구나! ...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예전에 대만 고객들도 꽤 상대했는데 어째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몰랐었지? 우리에게도 단기라는 연도가 있긴 하지만 거의 잊혀져가는 숫자인데, 뉴스에서까지 사용할 정도라면 여기선 상당히 보편적인 쓰임새인 모양이군.
창 밖 경치가 너무 좋아 눈을 뗄 수 없다. 일단 모든 배경에는 풍성한 구름이 있으니 그저그런 동네조차도 특별하게 보이는데다.... 오른쪽으로는 높은 산, 왼쪽으로는 바다를 끼고 달리니 2시간 50분이란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화롄의 핵심 관광지는 타이루거(太魯閣). 대중교통이 없으니 차량이나 오토바이르 빌려야 한다.
호스텔에서 알려준 여행사로 전화를 했더니 역 앞에 자기네 미니버스가 있다고 차량번호를 가르쳐주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한참을 헤매다 보니 역 뒤쪽으로 내렸더군. 어쩐지 한가하더라니.....
역무원에게 얘기하고 역 앞쪽으로 나가니 택시들와 미니버스들이 줄을 서 있다.
여행사에서 번호를 알려준 버스는 이미 떠났을 것이고... 뭘 타고 가야 하나?
버스는 500NT, 택시는 대당 4000NT를 부른다. 원하는 곳에 세워주고 설명도 해준다니 택시가 좋기야 좋지만 동행이 없으면 엄두도 못 내겠다.
오락가락 하며 알아보던 끝에 운좋게도 세 사람이 찼으니 600NT만 내고 타라는 택시를 만나 합승했다.
일본인 가족팀에 나 혼자 끼게 되었으니 말도 안 통하겠고.... 완전히 개밥에 도토리 신세겠구나 싶어 처음엔 좀 떨떠름했는데 의외로 이들 덕분에 여행이 더 즐거워졌다.
아버지는 1970년대에 Sanyo 사장으로 한국에 파견되어 마산에서 5년 간 살았던 사람으로 한국말도 웬만하게 하고 미국에서 파견근무를 한 덕분에 일본사람으로는 드물게 (내외 모두) 영어를 잘 했다. 아들 역시 히다찌 전기 타이완 지사 주재원이라 중국말을 할 줄 알고 마침 그 회사 생산품목이 내가 상하이에 있을 때 우리 회사 고객이던 세미컨덕터인지라 의사소통은 물론 공통화제도 많았다. 공통의 관심사에 더해 풍부한 교양과 한국친구에 대한 호의까지 얹어주니.... 이들과의 만남은 화롄 관광의 예상찮은 특별 보너스였달까.
타이루거 풍경구까지는 차량으로 약 40분 거리. 다시 엄청난 구름더미가 숨을 막히게 한다.
타이루거 협곡은 화강암 산이 강의 흐름을 따라 깎이면서 이루어진 대단한 협곡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산 봉우리들 사이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달리는데 발 아래로는 벽계수가 흐르고 강의 양 옆으로는 수십미터가 넘는 절벽들이 어깨를 비빌 듯 가까이 버텨 서 있다.
이 장관은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내려 감상하기로 하고 우리는 일단 계속 달린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니 일단 밥부터 먹고 시작하세.
19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우취차오(九曲橋)와 옌쯔커우(燕子口)를 지나쳐 뤼슈에이(綠水)에서 점심식사부터.
후추가 잔뜩 들어간 돼지고기볶음에 밥과 야채가 곁들여 나오는데 200NT 받는다. (1NT = 38원 정도)
다른 물가는 몰라도 음식은 우리나라보다 살짝 싼 편이지만 동남아를 돌고 온 끝이라 웬지 바가지를 쓰는 기분이다. (그러니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외국 배낭여행자들은 어떻겠나..ㅜ.ㅜ)
아들은 연신 걸려오는 회사 전화 받느라고 밥 한그릇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멀리서 오신 부모님을 위해 안 되는 시간을 간신히 쪼갠 모양이다.
자, 이제 슬슬 관광을 시작해볼까요.
여기는 티엔샹(天祥). 타이루거 동서관통로의 중간 지점이자 일반적인 투어 프로그램의 종점이다.
여느 중국 관광지가 그러하듯 산악지대 가장 깊고 높은 곳에는 畵龍點睛격인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윗 사진 왼쪽 구석에 살짝 삐져나온 노란 귀퉁이가 바로 이 절.
아담한 비구스님이 뭔가를 그리고 계시네...
절 옆에 있는 탑 위로 올라가보니....
이제는 은퇴하고 오사카 근교 시골에서 포도농장을 하고 있다는 금슬 좋은 내외분.
여행에서 돌아와 받은 메일에 적힌 홈페이지 주소를 따라가보니 포도농장뿐 아니라 작은 가공공장과 농장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고 아주머니는 퀼트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통신판매를 하시는 등.... 은퇴 후에도 사회와 소통하며 부지런히 사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왔던 길을 되짚어 타이루거 협곡 중 폭이 가장 좁은 구간인 구곡교 입구에 차를 세운다.
이제 걸으면서 찬찬히 둘러보란다.
이런 자연 터널이 한도 없이 나온다.
옌쯔커우는 구곡교 구간 중 가장 좁은 포인트로, 마주보는 절벽간의 간격이 16m미터 밖에 안 된다.
수만 년의 세월을 거치며 폭풍우와 홍수에 깎인....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예술품.
옌쯔커우라는 이름에 걸맞게 곳곳에 제비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제비집... 그게 최고급 식재료지 아마?
청산리 벽계수.... 내려가 만져보고 싶지만.....
다시 차를 타고 장춘사 쪽으로....
몹시 내리는 빗속으로 달리는 맛이 또한 일품일쎄...
▣ 다리를 건너니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무협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장춘사가 보이는 전망대 까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이곳의 물맛이 좋고 고산에서 나는 현지 커피를 쓰기 때문에 특별히 맛있는 커피라고 아들이 한잔 샀다. 커피맛이 좋기는 하지만 어떻게 특별히 맛있는지는 혀가 둔해 잘 모르겠고.... 맛있는 치즈케익과 서비스로 과일까지 한쪽 얹어주어 기분이 좋았다. ^^ 150NT
자기 택시를 가지고 가이드까지 겸하는 천바오신씨.
일본어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일본손님들에게 칭찬을 받을 정도이고 아는 것도 많은데, 처음엔 나를 위해 중국말도 해주더니 나중엔 완전히 일본말만 해서 좀 얄미웠다. 허나 풍경 보는 데 가이드가 뭐 필요하랴. 사진 찍는 데 정신 팔면서 작은 불만은 싹 잊어버렸다.
내가 좋아했던 대만가수 張宇를 빼다박았기에 좋아할 줄 알고 얘길 했더니 심드렁하다. 생각해보니 장우가 활동할 무렵에 이 친구는 초딩 정도였을 터... 우리나라 청년들에 남진 닮았다고 한 거나 비슷하겠지. ^^
관광이 끝난 줄 알았더니 돌아가는 길에 칠성담 풍경구라는 바닷가에 들른단다.
와~ 그런데 비온 뒤의 하늘이 장난 아니다.
구름... 구름.... 구름....
여행 중 홀린 듯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것은 한없이 뻗은 길과... 구름이다.
과테말라와 페루를 지금까지 그립게 만드는 것도 저 풍성하고 신비로운 구름 때문인 듯한데....
불타는 구름.... 말 되나?
구름이 인간세상까지 쳐들어왔다... ^^
우리 아들이 대만 좋아하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대만의 면면을 알고 좋아하는 거라면 아들넘 취향도 꽤 고아한 편이군. ㅎㅎ 풍류도 있고 여유도 있고 .... 경우 바르고 세련된된 건 도저히 중국과 비교가 안 된다. 중국말을 하는 일본이랄까. 아무튼 타이완 첫날의 느낌은 아주 좋았다.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와야지. 그때는 해안선을 따라서 타이완 섬을 일주할 꺼다. 고산족 있는 타이동을 거쳐 남쪽 끝 까오슝을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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