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가는 길(~2014)/재미·취미(쓴 글)

[파란 소나무]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張萬玉 2009. 11. 19. 08:30

오래 전에 내 가슴에 들어온 빈 폴의 감성적인 광고문구를 흉내내어 제목을 달아봤다. ㅎㅎ

정말 난 [파란 소나무]로 상징되는 '미술적 감성'이 내 인생에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럽여행 준비를 하다보니, 미술맹에 가까운 나지만 절대 '미술관 순례'를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아

'교양' 차원에서 '50일간의 미술관 체험 1, 2'(이주헌 著)를 읽다가 (나도 그럴 줄 몰랐는데) 슬슬 갈증이 나서

동네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미술책들을 빌려다 보고 있던 중이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지독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대학 동창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은 지가 십수 년 전이다. 식품영양학 전공에 늘 수더분한 차림새로 다니던 친구였기에 그냥 취미생활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내가 중국에서 사는 동안 개인전을 포함, 여러 차례의 전시회를 열었고 국전에도 두 차례나 입상을 한 실력있는 화가로 성장했다는 의외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2007년 전시회 때에 잠깐 들러보긴 했어도 내가 미술맹인 탓에, 그보다도 그때는 떠들썩한 친구들과 함께여서 솔직이 차분하게 그녀의 감성을 맛볼 만한 여유가 없었다. 헌데 미술과 사귀어보기로 마음 먹은 요즘 들어 미술책의 도판들을 뒤적이다 보니 내 친구의 그림이 몹시 궁금해지더란 말이지. 언제 한번 화가를 친구로 둔 특권을 휘둘러 사적인 갤러리를 차려달라고 졸라야겠다 마음 먹고 있던 중,

 

마침 남편이 크게 신세 진 적 있는 분의 집에 초대를 받았기에 이런 기회에 친구 그림이나 한 폭 사서 선물해야겠다 싶어  (그 때만 해도 나는 그림값이 얼마나 하는지 짐작도 못한 채..) 연락을 했더니 구경하러 오란다. 

아직도 개인 화실이 없는 가난한 그녀, 선물로 적당한 그림들을 몇 점을 골라서 거실에 단독 갤러리를 차려주는데, 천천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그녀가 그림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녀만의 색깔, 그녀만의 독특한 붓질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그림 있으면 골라보라고 하는데, 한쪽 벽을 가득 메운 국전 입상작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내 시선을 끌었던 게 바로 이 작품이다. 내 선택에 대해 그녀도 상당히 흡족해 한다. 초기작이라 물감도 비교적 얇고 미진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 그림을 그리던 날 완전히 파란색에 꽂혀 단숨에 그려냈던, 상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란다.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이 바로 그 소나무의 파란색이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갈 수 없는 어딘가를 그리워하다가 파랗게 멍이 든 소나무들 때문에 그림 전체에서 깊은 쓸쓸함이 배어나오는 것 같다. 

저 소나무들은 작가의 분신인가? 나의 분신인가?

한동안 그림에서 눈을 못 떼고 있다가 겨우 한다는 소리가

"뭐랄까, 노스탤지아 같은 게 느껴지는데....."

했더니 그녀가 좋아라고 박수를 친다.

"만옥아, 너 그림 좀 보는구나. 전시회 때 이 그림에 붙인 제목이 '노스텔지아'였어."

 

그림값을 물어보니 이 친구, 웃으면서 얘길 안 한다.

제값을 얘기하면 아마 네가 엄두를 못낼 것이고 그렇다고 싸게 주기도 싫다고.... 보아하니 이 그림은 네 그림 같은데 그냥 가지란다. 대신 누구에게 선물하지 말고 네가 간직하면서 오래오래 사랑해주면 좋겠단다.

그녀가 자신의 감성과 공명한 나의 보헤미안적인 감성을 알아봐줬다 하더라도 너무 분에 넘치는 선물이지만

거절하기도 어려운 특별한 선물인지라.... 물감과 액자값만 어거지로 챙겨주었다. 그랬더니

 

 

 

억새의 붓질과 저물기 시작하는 하늘빛이 마음에 들어 눈을 떼지 못했던 또 한 점까지 챙겨준다.

'[파란 소나무]의 노스탤지어 연작'이라고 불렀더니만.... ^^     

 

 

액자를 매기던 날, 자기가 직접 걸 공간을 정해줘야 한다고 집에까지 따라왔다.

억새 그림 자리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파란 소나무] 걸 자리의 나무벽 배경을 마땅치 않아 하더니

나중에 도배를 새로 하게 되면 자기 그림을 위해 흰색이나 아주 연한 미색으로 하라고 지정해준다. ^^

 

우울증을 감당하지 못해 어린 아들 둘을 떼어놓고 가출까지 감행했었다는 그녀지만

그림을 시작한 뒤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정말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한다.

예술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P.S.

미술 하는 이의 시선은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우리 거실의 유일한 볼거리인 인형 진열장, 그리고 유리가 달려 슬픈 붙박이 그릇장을 보더니

멋진 거 자랑하라고 유리문 달아놓은 곳을 찬장으로 쓰다니! 탄식하면서 모조리 끌어내어 뚝딱뚝딱....

다 정리한 뒤에 보니 할머니 살림처럼 너저분하던 곳이 나름 근사한 진열장으로 변신했다.   

정리한 원칙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자잘한 것들은 한 공간에 복작복작하게 쓸어넣고

볼 만한 몇 점들은 우아하게 서너개씩만...

그리고 재질과 칼라와 크기를 고려해 같은 공간에 넣었더군.

그 간단한 원칙을 왜 나는 몰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