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 밖(안)의 여자
눈 온다.
곱게 체로 친 것 같은 가루눈이 날리고 있다.
지난주엔 제법 굵은 눈송이가 거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미친듯 춤을 추더니...
그날 일기를 썼다면 아마 눈 온 얘기만 가지고 글 하나 뚝딱 꾸몄을 꺼다. 허나 날짜가 지나니
내 기억에 남은 건 딱 두 장면 뿐이다.
거센 바람을 타고 지면에서부터 우리가 사는 7층 높이까지 소용돌이치며 기세좋게 올라오던 눈발....
그리고 눈 그친 산 속에서 만났던 거짓말처럼 고요한 풍경....
하늘은 가을날처럼 파랬고 대기는 말끔하게 씻겨 있었지.
푸짐하게 내린 눈은 낙엽들과 섞여 꼭 단호박이랑 대추를 넣어서 시루에 찐 백설기 같았고.
일기를 따로 안 쓰다 보니 안 그래도 밋밋한 나의 일상이 스쳐지나가는 눈발처럼 녹아버릴 것 같다.
내가 요즘 뭐하고 살았지?
미술책 쫌 봤다. 서양 미술사, 미학 오디세이, 서양사 100장면, 고호 전기 등등 닥치는 대로...
이 얘긴 따로 한번 정리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주문만 외고 있다.
가끔 영화도 한 편씩 봐줬다. '잠수종과 나비', '펀치 드렁크 러브'처럼 순수무구한 영화로부터 '데드 링거'처럼 독한 영화까지... 이 얘기도 따로 써두고 싶은데 역시 주문만 외고 있다.
먹었으면 운동을 해야 유용한 에너지로 변할 텐데 이렇게 집어넣기만 하고 능동적인 리뷰가 없으니 헛헛함만 더하는 거 아닌가 싶다. 우좌지간 요녀석들이랑 씨름하며 두어 달 간 두문불출 행복하게 살았네그려.
집 안에서 지내는 데 길들여지면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기 십상.
베란다를 터 넓직하게 걸어놓은 거실 통창 밖으로 바깥세상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마치 영화의 배경처럼..
문득 창밖을 보니 파카에 목도리에 몸을 깊이 숨긴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친다. 어느새 한겨울로 들어섰구나.
# 명성황후가 주최한 송년만찬
낯가림이 별로 없는 나도 가끔은 낯가림을 한다.
직함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어른스러운 자리, 게다가 '사모님'이라는 신분으로 참석해야 하는 자리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그런 자리에 동반되는 의전적(!) 대우조차도 불편하기만 하다. '사회생활'이 줄어들다 보니 낯가림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평소라면 부부동반 송년모임 소식에 '나 좀 빠지면 안 될까?' 이런 생각부터 했겠지만 이번엔 다르다. 만찬 후에 다같이 명성황후를 관람한단다. 그 명성 높으신 명성황후가 불러주신다는데야 소인이 거부할 재간이 있나.
시간관계상 해오름극장 옆에 있는 달오름극장 내 이탈리안 식당에 준비한 만찬 자리.
사장님이 사주시는 밥이니 얼마짜린지는 몰라도 스테이크에 고급 포도주까지 곁들인 근사한 코스요리와 그에 어울리는 체면 차리는 대화들... 역시 예상대로 입을 함부로 놀리면 격조 떨어지는 그런 자리다.
품위가 부족한 나는 몸에 배어버린 격의없는 수다가 뛰쳐나올까봐 입에 지퍼를 단디 채우고 럭셔리한 분위기를 일상인 듯 심상하게 즐기는 듯한 커플들을 감상한다. 이들에겐 이런 외식이 일상일까? (어쩌면 이런 호사가 우리 연배에 어울리는, 우리 연배가 추구하는 문화인지도 모르지. 헌데 난 왜 딴 나라 사람처럼 겉도는 거지? 아직도 수수한 게, 까부는 게 더 좋으니 덜 큰 건가?)
우좌지간 '명성황후'는 과연 그 명성값을 했다. 의상도 춤도 무대도....
특히 장면 바뀔 때 관객들을 기다리게 하지 않고 바로 대령하는 회전무대가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기량도 상당하다. 탤런트 김진태가 열창하는 걸 보고 놀랐다. 저 양반이 저런 멋쟁이였어?
헌데 음악은 좀 실망스럽더군. 원래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제대로 즐기려면 OST를 귀에 익혀 가야 하는 법이라 OST 구하려고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겠더라. 마지막 곡 '조선이여 일어나라'와 민비 시해 후 꼬마가 나와서 부르는 '매화가 없는 봄은 봄이 아니네...' 정도? 외에는 그다지 인상적인 곡이 없어서 아쉽. 전체적으로는 너무 네 박자에 붙들려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조로웠다.
춤과 무대연출로 보자면 홍계훈이 무과 급제 치르는 장면(집단군무)과 일본 무사들이 명성황후 시해를 결의하는 장면(커튼 뒤 실루엣과 일본풍 노래)이 기억에 남는다.
홍계훈의 짝사랑은 가공이겄지?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그런 게 꼭 들어가야 하나? (싼티...)
아무튼 적지 않은 인원이 찬란한 의상을 떨쳐입고 힘있는 춤사위로 큰 무대를 쓸고다니니 볼만은 하더라.
1000회를 돌파했다니 회당 1000석 잡으면 천만 명이 봤다는 얘긴데....
마지막 장면에서 드라마 명성황후를 볼 때 느꼈던 분함과 답답함이 다시 엄습해왔다.
우리는 왜 저런 결연한 노래를 상복을 입고서야 부르는가 말이지. 부르고 나서 달라지는 게 뭔가 말이지.
다시 저마다 애타게 애국을 외치겠지만 언제나 오합지졸을 벗어나 진정한 대동을 깨닫게 될 건가 말이지.
이상하게 사람들은 정치적인 현안 문제에 대해 반대할 건지 찬성할 건지 자기 입장부터 정하고 나서 토론을 시작한다. 그 입장의 저변에는 '이해관계'라는 것이 완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뭐 협상이란 게 있을 수 있나. 나라의 운명이야 어찌되든 어떻게든 자기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집념으로 번득이는 눈깔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애국을 외치네. 자기 입장에 동조 안 하면 매국노라네.
돼았다, 고마 해라. 근사한 거 자알 보고 왜 또 삐딱하이 흥분인고.
뮤지컬 사진이 없으니 이거라도... ㅋㅋㅋ
강변이 훤히 보이는 내 단골까페에서 만난 여인이다.
# 한복 놀음
11월 셋째주인가에는 집안 결혼식이 있었다.
남편 사촌형의 둘째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워낙 일가가 드문 집이라 그런지 우리더러도 폐백을 받으란다.
폐백을 받기는 커녕 받는 거 구경도 해본 적이 없는데 예단값까지 받았으니(요즘은 통장으로 그냥 입금이다) 멋적어도 빠질 도리가 없다. 절값 주려면 한복이라도 입어야 할 텐데... 어른노릇이 내겐 왜 이리 어색한지.
결혼식 때조차 친구 한복 빌려입은 위인인지라 폐백 잠깐 받자고 새로 맞추기도 그렇고 해서 언니에게 한복은 일단 빌려놨다. 하지만 깡똥한 단발머리에 안경잡이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주장하는 굵은테 안경까지 쓰고 있으니 한복만 걸쳐가지고는 안 되겠는데, 결혼식이 전주에서 11시 반이니 새벽부터 여는 미용실도 없을 테고...
남편은 뭐 어떠냐는데 그건 남자니까 하는 얘기고, 나부터도 한복에 풀어헤친 머리를 하고 있으면 술집 작부같이 보인다는 편견을 굳게 갖고 있는지라..... 낯선 도시지만 일단 가서 머리 올릴 집을 찾아봐야겠다고 새벽밥 지어먹고 길을 나섰다.
동 트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텅 빈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니 여덟 시 반이다.
예식장이 있는 곳은 새로 개발된 지역이라 그런지 어디 밥집 하나 찾기도 어려운 허허벌판....
시내로 들어갔지만 우리가 미용실 없는 동네로만 찾아다니는 건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아홉시가 조금 넘어 찾아낸 조그만 동네 미용실 문을 두드려 첫손님이 되었는데....
내 또래의 미용사 언냐가 요렇게 만들어주셨다.
후까시 넣고 실핀 삼십 개쯤 꽂은 다음에 헤어스프레이 팍팍 뿌리니까 빨래애 끝~~!!
거의 삼십여 년만에 한복 입은 기념으로 한 장 찍어두고 싶었는데 쑥스러워 그만 코트로 가리고 말았다. ㅋㅋ
저래 놓으니 단발로 간신히 위장했던 내 나이가 고스란히 다 나오네.. ㅡ.,ㅡ
돌아와서 머리 감으려고 실핀 빼내다 말고 거울을 들여다보니
요 모양이다.
어찌나 끔찍깜찍한지 혼자 보기 아까워서.... ㅋㅋㅋ
마지막 사진 두 장은 언제 내릴지 모르니 웃을 일 없는 분들은 서둘러서 실컷 보십셔... ^^
점점 사람들 만나는 게 번거로워진다. 익숙한 사람들만 찾고....
아웃사이더가 되어가는 거야. 이게 퇴화로 가는 지름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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