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찬호랑 은정이랑

張萬玉 2009. 12. 28. 16:35

요즘 뭐 하느라고 쥐죽은 듯 조용하냐고 팔찌님이 묻기에 알바 하느라 바쁘다 했더니 

돈도 벌고 재미도 있고, 좋겠다네. ㅎㅎㅎ 팔찌님아, 말이 알바지 돈은 별로 못 벌어요. 하지만 재미는 있다오.

 

2009년 내내 놀다 연말에 이렇게 몰릴 줄 몰랐다. 

친한 후배에게서 중국어 좀 가르쳐 달라는 전화가 왔다.

남편이 다른 일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쉬는 중인데, 종일 마주보고 있느니 함께 유익한 걸 배워볼 생각이란다.

이쁜 친구 자주 보게 되니 좋고 손끝으로 튕겨만 줘도 쑥쑥 잘 할 제자들이니... 당연히 웰컴이지.

거기에 돈도 들어오겠다, 마다할 이유가 있나.

 

오케이 한 지 며칠 안 됐는데 친한 선배로부터 다른 강의 요청이 왔다.

자기 회사에 업무상 중국어가 필요한 팀이 있는데 좀 가르쳐보겠냔다.

아니, 명함도 안 돌렸는데 갑자기 웬일이지? 장만옥이 탱탱 놀고 있다고 장안에 소문이라도 났나? 

이건 일주일에 세 번, 게다가 출근 전에 수업을 마쳐야 하니까 늦어도 아침 7시 반에는 시작해야 한단다. 

빡센 대신 보수가 두둑하다. 

뱅기표랑 유레일 패스랑 다 끊어놨기 때문에 두 달밖에 못한다고 해도 일단 시작해보잔다.

짜하게 소문난 경우가 아니라면 제의가 왔을 때 무조건 물어야 하는 게 프리랜서가 살 길이다.

회사 위치도 후배네서 멀지 않으니 아침반 마치고 후배네서 오전수업 하면 되겠군. 얼떨결에 이것도 오케이.

돈벌이는 아니지만 올해 2월까지 봐주기로 한 은정이와의 영어수업도 일주일에 두 번이니 

소일꺼리가 아니라 거의 직업 수준으로 가겠구나, 주변정리 하고 자세 잡아야겠는걸.... 각오하고 있던 중,  

찬호 엄마로부터 긴급  SOS가 날아왔다.

 

찬호는 은정이가 나랑 공부 시작할 때 같이 하려고 했던(아니, 걔 엄마가 같이 시키고 싶어했던) 녀석이다.  

찬호엄마 역시 구로동맹파업 때 구속자 석방과 노동악법 개정에 젊음을 바친 노동자 출신의 활동가인데

나와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은정이 엄마보다 오히려 더 가까웠던 친구다. 

도시에서 자리잡지 못한 남편은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그녀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서울 달동네에 남아 지금도 미싱을 돌린다. 그녀의 두 아이 중 막둥이인 찬호는 은정이와 같은 학년인데, 동네 '일진'들과 어울려다니는 데 정신이 팔려 성적이 바닥이라고 했다.    

은정이보다 도움이 더 절실한 아이는 찬호 쪽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를 만난 자리에서 눈도 안 맞추고 무조건 도리질로 일관하는 데 내 무슨 수로 그녀석을 도와줄 수 있으랴. 어차피 수준 차이가 많이 나서 같이 수업하기는 힘들겠고.... (가까운 사이에 어느 한 쪽만 해주겠다고 할 순 없으니) 그럼 공짜과외를 하나도 아니고 두 탕이나? 싶어 살짝 심란해지려는 참인데.... 그 녀석의 완강한 거절로 사태가 수습(^^)되었고, 

적극적인 은정이만 데리고 수업을 시작한 것이 지난 4월.... 어느 새 여덟 달이 지났다. http://blog.daum.net/corrymagic/13754481

 

그때만 해도 성적만 문제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가끔 은정이 수업 끝내고 이웃 사는 찬호네로 건너가 보면 집안 분위기가 심란하기 짝이 없다. 찬호녀석이 날이 갈수록 비뚤어지고 눈만 뜨면 시계 사내라 운동화 사내라며 포악을 떠는데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고 했다. 더 속상한 건 이 녀석이 제가 좋아 어울려다니는 게 아니라 협박에 이끌려다니는 게 분명한데 도와주고 싶어도 친구들 얘기만 꺼내면 길길이 뛴다네. 아빠가 올라와 다잡아보려고 해도 죽어버리겠다고 한술 더 뜨니 어째볼 도리가 없단다. 살아보겠다고 죽어라고 일해봐야 자식이 비뚤어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결국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찬호엄마.... 오죽하면 삭발까지 했을까.

 

그렇게 속 썩이던 녀석을 돌연 개심하게 만든 게 직접적으로는 '옷 사건'(좋은 옷을 입고 온 아이를 두목이 찍어주면 똘마니가 나서서 입어보고 주겠다고 빼앗아 두목에게 상납해야 하는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크게 얻어맞을 일이 생겼다) 때문인지 '생일빵'(생일축하 선물로 주는 뭇매) 때문인지 몰라도 결국은 지극정성으로 호소하던 엄마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하여튼 그 어느날 밤 찬호는 그동안 당했던 고초를 엄마에게 털어놓으면서 전학만 시켜준다면 마음 잡고 새출발하겠다고 엉엉 울며 다짐했단다. 

그렇게 전학한 것이 12월초. 무서운 친구들을 피하려고 아주 멀찍이 떨어진 이모네 집 근처 학교로 옮겼다.

그러나 올라버린 전세금을 더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이사도 쉽지 않아 찬호는 지금 이모집에서 산다.

그래도 일이 잘 풀리려고 그러는지 작년 초에 제출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피해보상' 심사에서 찬호엄마의 부당해고 케이스가 인정받아 새해 1월에 보상금이 나온다니 시간은 좀 걸리지만 새 둥지를 트는 일도 순조롭게 풀릴 것 같다. 이제 찬호가 마음잡고 학교생활에 취미 붙이는 일만 남았다. 

 

찬호엄마의 SOS가 날아온 건 그 시점이었다.

방학 때만이라도 '그 이모'(나를 지칭함)에게 영어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찬호가 매달린다는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영어시간 괴롭지? 나랑 공부하면 그 괴로움이 훨씬 덜어질 꺼야"하고 꼬셨던 게 인상적이었을까? 

오가는 거리가 너무 먼 데다가 겨우 방학기간 두 달 동안 해봐야 얼마나 하겠냐 싶지만 영어 기초가 워낙 없어서 학원 보내봐야 소용없을 것 같고 아이의 상태를 파악해서 효과적으로 도와줄 만한 선생님을 쉽게 구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도 찬호가 내게 배우겠다고 졸라대니 꼭 좀 도와달라는 것이다.  

내 사정으로 보면 간만에 스케줄이 백조생활에서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려는 시점이지만.... (왜 하필!)

중요한 건 '이번 방학에 꼭 영어를 따라잡으려고 찬.호.가. 마음 먹었다'는 사실이다. 어찌 거부하랴.

 

날도 무지하게 추웠던 엊그제, 드디어 그녀석과 첫 수업을 했다.

초등학교 땐 공부를 제법 했다더니 이해력은 괜찮은 것 같은데... 기초가 하나도 없어 정말 갈길이 아득하다.

이렇게 하나도 못알아듣는 외계어를 들으며 어떻게 그 많은 수업을 견뎌냈는지 참 신기하기만 하다. 

워낙 공부 안 해본 녀석이라 집중력에 한계를 느끼는 듯했지만 중간에 잠깐 쉬고 내리 달린 세 시간 동안 기특하게도 참고 잘 따라와주었다. 연습문제와 단어 숙제도 왕창 내줬는데 예감이 좋다.  

키도 나보다 작고 목소리도 변성이 안 되어 앵앵거리는, 아직 솜털 보송보송한 녀석....

저 초등학생 같은 녀석이 어쩌다 숭악한 녀석들과 어울려 양아치 짓을 배웠단 말이냐. 

정말 저 조막만한 손으로 누나 코피를 터뜨렸단 말이냐? ^^

기껏해야 열댓 번 만나는 동안 가르쳐봐야 얼마나 가르치겠나.

영어 자체보다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인내에도 단 맛이 있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팀 강의는 불발되었다.

그 팀의 주축멤버 두 명이 1월 초에 중국출장이 잡히는 바람에 뒤로 미루자는데.... 난 그때 한국에 없잖여.

정이월 빡세게 달리겠구나 했는데 딱 좋은 하중이다. 월요일 목요일 오전에 은정이가 다녀가면 오후에 찬호가 온다. 화요일 금요일 오전에는 후배 내외가, 주말에는 삼식이놈 둘이 나를 기다리고.... 하지만 나만을 위한 날도 하루 남는다. 휴, 다행이다.ㅎㅎㅎ

부담과 보람은 나란히 손 잡고 함께 온다고 했던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삶은 축복이니 (숨막히는 축복? ㅎㅎ) 마음을 다해 즐기자꾸나. 

혼자만의 성에 갇혀 심신이 끝도없이 게을러져 가는 나를 구해줘서.... 고맙다. 찬호야, 은정아!

'그 시절에(~2011) > 陽光燦爛的日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시대의 딸깍발이들  (0) 2010.01.02
2009년 성탄 다음날  (0) 2009.12.28
아웃사이더의 일상  (0) 2009.12.07
재 넘어 가는 길  (0) 2009.11.28
분당 사시는 분들, 여기 주모~옥!  (0) 2009.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