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2009년 성탄 다음날

張萬玉 2009. 12. 28. 19:51

운보 김기창 화백이 이런 그림도 그렸다니... 아니, 우리에게도 이렇게 한국적인 성화가 있었다니...

 

산골 작은 교회에서 뒤늦게 목회를 시작한 후배에게 놀러갔다 발견한 성탄예배 주보에 실린 그림들이다.

신기해하며 휴대폰으로 찍으려고 했더니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온단다. 몰랐네.... 

 

 

한국의 외양간에는 말과 양이 아니라 수탉과 황소가 있었다. ㅎㅎㅎ

마리아 뒤에 버티고 선 든든한 황소.. 정말 마음에 든다. 

 

 

동방박사들 복장이야 '박사'님 들이니 그렇다 쳐도 왠지 전체적으로 별당아씨 분위기. ㅎㅎㅎ

그래도 초가집에 거하시니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 맞다. ^^

 

원래 25일부터 시작되는 사흘 연휴 동안 남편과 바람 쐬러 나가기로 했었다.

쉬는 날은 동네 뒷산에 운동하러 가는 거 외에 돌부처가 되어 꼼짝 안하는 남편이지만

석사논문 마무리에 죽을동 살동 매달려 기를 쓴 끝이라 그런지 황공하옵게도 선선히 그러자신다. 

혼자 돌아다닐 때야 어딜 가도 상관없고 물패라도 상관없지만 귀하신 몸을 모시고 다니려니

여기도 마음에 안 차고 저기도 의심스럽다.

물오른 날씨라면 어딜 가도 좋겠는데 나뭇잎 다 떨어진 한겨울에 어딜 헤매며 1박2일을 보낸단 말이냐.

이이가 좋아하는 높은 산에 오르려니 내 다리가 시원찮고....

고심 끝에, 낙향했다는 안부만 듣고 찾아가보지 못한 후배를 방문하고

날이 날이니만큼 시골교회에서 성탄절을 보내다가 거기서 멀지 않은 수안보에서 묵고

다음날 문경새제 3관문에서 1관문까지 걷자...는 계획을 세웠다.

 

헌데 아들넘이 갑자기 대만 여행 간다고 어수선하다. 작년부터 별렀던 건데 마침 같이 가자는 친구가 나타나 급하게 결정했단다. 공교롭게도 출발일이 26일이다.

아무리 짧게 가는 여행이고 머리 굵은 녀석이라지만 식구가 바다 건너 간다는데 먼저 집 비우기 쉽지 않다.

게다가 서울대 앞에서 첫 공항리무진을 타야 한다고 친구녀석까지 데려와 함께 자고 출발한다는데 대학 들어와 처음 데려오는 친구 밥이라도 한끼 해멕여야겠다 싶은 마음에 외출계획 暫停. 

 

헌데 새벽 다섯 시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더니 남편이 자동차 키를 찾아들고 나선다. 지금 나가면 택시도 없다고 서울대 앞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거다. 얼마 전 아들넘과 소싸움을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싶어서 마음이 은근 흐뭇했다. 아들넘도 그럴 필요 없다고 극구 사양은 했지만 은근히 감동했는지도 모르지.

우좌지간 금세 아들넘 보내주고 돌아온 남편, 이왕 새벽잠 깬 거 우리도 떠나보잔다.

충주까지는 두 시간도 채 안 걸렸지만 교회까지 들어가는 길이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충주호를 끼고 들어가는 길의 풍경에 홀려서가 아니라.... 지난 밤에 살짝 날린 눈발이 만든 빙판 때문이었다.

한나절 회포 풀고....

 

문경새제 3관문이 조령산 휴양림과 가깝다고 해서 네비게이션을 그리로 맞춰뒀는데

네비는 더 가라고 해도 이화여대 수련관 지나니 더 갈 수가 없다. 좁은 비탈길에 눈 쌓였다고 차량통제다.

차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이 동네 이름은 고사리 마을이란다) 눈이 오는지도 모르게 살짝 날리다 말았는데 이 산동네는 완전히 은백의 세계다. 발 밑의 눈도 제법 뽀득뽀득 소리를 낼 정도로....

남편은 옛 과거길로 가자는데, 미끄러져 다리라도 분지를까봐 겁나서 나는 큰 길을 고집한다.

결국 남편은 옛길로 나는 큰길로 갈라져 중간중간 마주치면서 제2관문까지 갔다.

2관문 아래로 눈이 녹은 것을 보더니 재미없다고 남편은 3관문으로 돌아가겠단다. 1관문까지 가면 어차피 차 세워둔 3관문으로 돌아와야 하니(버스도 있지만 드물고 택시를 타면 2만5천원이다) 자기가 차를 가지고 1관문으로 나를 마중오겠다고 한다. 나야 고맙지. ^^

 

2관문부터는 계곡을 타고 흐르는 벽계수가 길동무를 해준다.  

천지가 얼어붙으니 하늘도 더 파랗고

공기도 맑고 얼음장 새로 흐르는 물도 맑고... 몸과 마음도 덩달아 맑아진다.

부지런한 걸음으로 달아오른 얼굴에는 와닿는 공기가 차가울수록 달콤하다.

3관문부터 1관문까지는 그리 서두르지도 않았는데 두 시간이 채 안 걸렸다. 꽃피는 계절이나 단풍철에 와서

다시 한번 이 길을 걸어넘어.... 이름도 예쁜 고사리 마을에서 하룻밤 자고 가리라.

 

계획대로 수안보에 들렀는데, 앗 미처 생각을 못했다. 여기가 스키와 온천을 묶어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리는 겨울철 여행지라는 것을.... 정말 겨울엔 올 데가 못 되는 동네다.

차량이 빠져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북적이는 좁은 도로를 이리저리 비켜 노천온천이 있다는 수안보 파크호텔로 갔는데 남편이 튼다. 찜질방이 없는 줄 몰랐다고....새벽부터 뛰어서 고단하니 저녁 먹고 한숨 자고 올라가게 차라리 찜질방으로 가잔다. 그러고 보니 찜질방 딸린 곳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하긴, 온천하러 온 손님들은 온천이나 하고 빨리빨리 가주셔야지 찜질방까지 갖춰서 종일 개기게 할 일 있나. 고건 나도 몰랐네.

시설로 보면 서울의 동네 찜질방에 한참 못미치는 찜질방 하나 겨우 찾아들어 하루의 피로를 씻고.....

 

1박2일 계획이 당일치기로 줄긴 했지만 나름 즐거웠다.

정말정말 드물게 내외가 함께 한, 그래서 꼭 기록해둬야 했던 짧은 여행기록.... 여기서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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