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하는 후배를 둔 덕분에 팔자에 없는 '푸드스쿨'에 입학을 다 하다니.....
경상북도 음식은 먹을 게 없다는 선입견을 바로잡음으로써 경북 관광산업을 진일보시키고자 하는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여행작가, 여행동호회까페 및 여행블러그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체험여행 전문회사 '다음레저' http://www.tournfood.com/ 가 답사팀을 조직했다. 기획하고 있는 '음식체험 여행'의 내용을 몸소 체험하여 피드백 해주는 한편 홍보해주는 것이 답사팀의 임무.
여행이야 좋아하지만 나같이 음식문화(요즘 유행하는 맛집탐방 등)에 무관심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임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무시하고..... 오랜만에 바람 쐬는 맛에 따라나섰다. 여행기가 절반은 차지하는 내 블러그에 적으나마 고정팬들은 있으니 최소한의 자격은 갖췄다고 자위하면서... ㅎㅎ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이번 답사의 첫 목적지 울진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가장 큰 원인은 울진 하고도 온정리까지 들어가는 long and winding road 때문. 나는 당연히 7번 국도로 울진까지 가겠거니 했는데 영주에서 춘양과 영양을 거쳐 울진으로 가는 88번 국도를 택한다. 명칭의 유래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九珠嶺이라는 고개를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넘어가는데 180도 가까운 회전을 반복하다 보니 여행 고수라는 분들도 진저리를 낸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이 길에 빠져버렸다.
어찌나 경치가 근사한지 다음엔 내가 직접 차를 몰고, 아니 마음 같아서는 괴나리 봇짐 지고 직접 내 발로 다시 찾고 싶더라. 역시 내 전공은 맛집탐방이 아니라 오지답사쪽인 모양이다.
창을 사이에 둔 경치를, 그것도 꼬부랑길을 달리며 찍으려니 사진이 쉽지 않다.
천혜의 청정 자연조건을 갖고 있지만 교통사정 때문에 관광산업에서 저만치 비켜 있는 경북의 오지마을.
그래도 이 마을은 백암온천 동네에 있어서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드문 것 같진 않다.
어쨌든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이런저런 관광상품을 열심히 개발하고 있는 듯....
푸드스쿨 제1강 제1과는 이 지역 특산물인 백복령 가루로 칼국수 만들기였지만.... 도착 시간이 예정보다 늦은 관계로.... 마을 할머니들이 끓여주신 칼국수를 먹으며 백복령에 관한 강의를 듣는 것으로 대체. ^^
백복령은 소나무 뿌리에서 나는 일종의 버섯으로, 한약재인줄만 알았는데 소나무가 많이 서식하는 이 지역에서는 이걸 수제비나 칼국수 반죽에 넣어 먹는단다.
혈당량을 낮추고 면역력을 높이며 이뇨작용을 도와주고 진정작용과 항암작용이 있다는 백복령.
백복령 가루에 밀가루와 콩가루를 넣어 만들었다는 백복령 칼국수는 쫄깃한 면발에 길들여진 입맛에는 좀 맥이 없는 것 같았지만 몸에 좋다는데야....
내 입에는 들판을 그냥 옮겨온 듯한 돌나물의 상큼한 향기가 더 인상적이었다.
상 치우고 나서 바로 제1강 제2과 '떡 케익 만들기' 시작.
이 마을에서 떡 만들기 실습을 하는 데는 이 마을의 다른 이름인 '양떡 마을 음떡 마을'이라는 별명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마을 사이로 흐르는 개천 경계로 해가 잘 안 드는 마을은 음떡마을, 해 잘 드는 마을이 양떡마을이라고 불렸다나? 떡이랑은 상관없잖아. ㅎㅎㅎ
또 다른 얘기가 있다. 소를 산에서 방목하던 시절에는 이 두 마을 간에 소싸움을 많이 했는데, 이기는 마을이 양떡마을, 지는 마을이 음떡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이 이름도 진짜 떡이랑은 상관 없잖아. 아무리 소싸움에서 이기려고 소에게 보리로 떡을 만들어 먹였다 해도 말이지.. ㅎㅎㅎ
우쨌든 우리는 통팥, 콩가루, 식용색소를 넣은 쌀가루, 시루 틈새를 메울 밀가루반죽 등등을 준비해놓고 시루에서 김이 오르기를 기다린다.
준비한 가루들을 시루에 켜켜로 올려주세요~ (누가 보면 만옥이 진짜 살림꾼인 줄 알겠다. ㅋㅋ)
켜켜로 놓는 게 심심하다고 느낀 만옥이는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친다.
색을 막 섞고 팥으로 글씨를 쓰고...
떡이 쪄지는 동안 이 마을에서 개발한 또다른 상품을 체험해본다.
가공하고 남은 소나무 톱밥으로 향기주머니를 만드는 것이다.
주머니도 예쁘지만 시원하고 은은한 향기가 참 좋다.
답사단의 가이드를 맡은 양미선 과장님.
센스있고 친절한 데다 귀여우시기까지... ^^
웬 승복인가 했더니 찜질복들이었다.
훌륭한 황토 찜질방이 있었다. 여섯 칸이나 된다.
천혜의 청정자연을 갖춘 이 동네에는 건강에 관심 많은 분들이 주로 찾아오시는 것 같다.
좋은 공기 속에서 신체단련도 하시고 찜질도 하면서 묵어가신단다.
봄에는 고로쇠 수액 채취 체험도 있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앞치마 풀어헤치고 당장 들어가 눕고 싶지만... 떡 탄다!!!
아이고, 잘 익었네. 이제 시루 엎으면 되것소.
쫌 지저분하지만 그런대로 깔끔하게 나왔군.
우리 조 떡에 비하면 말이지...(멀리서 보면 완전히 해물파전 꼴이다)
우리 조 여행작가님이 옆 조 시루를 엎는 걸 얼핏 보고는 흉내내어 팍 엎었는데
엥이? 왜 우리 건 홍수가 난 겨?
(시루만 엎은 게 아니라 물이 남아 있던 솥까지 함께 들어 엎은 것이었다. -.,ㅡ)
쯥~ 생전 떡들을 쪄봤어야 말이지...
월월!! 나도 떡 한 조각만 주~~
안녕, 온정마을아.. 잠깐 만났지만 내 마음을 잡아끄는 소박한 마을아.
훗날 내 혼자라도 다시 찾아올께...
다시 구주령을 넘어 두 번째 행선지인 영양으로 간다.
行程으로 보면 영양부터 들러 울진으로 와서 경주로 내려가는 게 맞지만 칼국수보다는 제대로 차린 한식상이 저녁상으로 더 어울릴 것 같아서 차라리 발품(바퀴품)을 팔기로 했단다.
이 일대는 이름난 금강송 군락지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그러니 두 번을 되집혀 온들 세 번을 되집혀 온들 난 불만 없다.
그저 산이 좋아 산에서 살려네..(ㅉㅉ 앞치마를 여적 걸치고 있네그려..ㅋㅋ)
I~C~
이 깊은 마을도 정치를 피해갈 순 없다. 재령이씨 가문의 집성촌이라더니....
주차장에서 건너다본 마을 풍경이 퍽 근사하다.
지는 노을 속에서 저 고즈녁해 보이는 마을을 마음껏 누비고 다녀야지!
하지만.... 돌아볼 곳은 많은데 돌아볼 시간은 20분 밖에 안 준다. 우리는 디미방에 온 사람들...ㅜ.ㅜ
일단 석계고택으로~~
아무리 근사한 집이라도 사람 안 사는 집의 느낌은 참 처연하다.
제 구실 못하고 엎어져 있는 장독대들아, 춥쟤?
댓돌 사이를 비집고 나온 억센 생명꽃
그래 어쩌겠니, 늙었어도 마지막 기운을 내어 뭐라도 의지해야지.
자, 얼렁얼렁들 집합하시요~~
오른쪽에 불 밝힌 집이 음식체험이 이루어질 정부인 안동 장씨 예절관이다.
한지와 생나무의 고급스러운 느낌.
노후에 한옥 지어 살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은데... 양옥보다 단가가 영 높게 나오겠는걸.
푸드스쿨 제2강은 1670년경 영양으로 시집 온 안동 출신의 장씨부인이 1670년경에 쓴
한글 요리책 '디미방' 레시피에 따른 석이편과 대구껍질 누르미.
요리의 내력과 기본기를 차분차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
"참 고우시네요. 요리를 잘 하시니 가족들은 참 좋으시겠어요."
"아니에요, 너무 바빠서 집안 일은 뒷전이랍니다."
대구껍질 누르미 재료.
어여 모두 다지랍신다..
다진 재료 조물조물 손맛 더해 직육면체 모양을 만들어 손질해놓은 말린 대구껍데기 위에 올리고
껍질 네 귀퉁이에 전분 푼 물을 묻힌 뒤 보자기 모양 잘 싸준다.
어머, 제법 괜찮은데요?
흡족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여행작가 김연미님.
빚어낸 대구껍질 누르미를 쪄낸 다음 녹말로 소스를 만들어 끼얹으면 완성.
맛있어 보이지만.... 발이 부족한 녀석과 웬수지간인 나는 눈요기만 하고 말았다.
자, 이제 석이편 만들 차례.
일하는 데는 도구가 반 자세가 반이라는데... 손 자세 제대로다. ^^
석이버섯을 다져서 쌀가루에 잘 섞고 맨 위쪽에 잣가루켜를 올린 다음 시루에 쪄낸다.
이제 식사시간. 경상북도 양반집 7첩반상을 맛볼 차례다.
튀긴 돼지고기가 연근 접시에 얹혀 나왔다.
잡채란다. 꿩고기가 들어서 꺼림칙한 기분에 야채 몇 가닥만 집고 말았다. 바보.. ㅜ.ㅜ
표고, 석이버섯을 무우편에 말아 쪄냈다.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참 심심한 음식이라고 하겠다.
세 가지 코스요리 후 차려진 7첩반상.
경상도 음식이 맵고 짜다고 누가 그랬나. 모두 담백하고 맛갈진 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가 단연 인기였다.
딱 알맞게 발효된 김치는 김치예술의 백미.... 배추맛이 완전히 과일맛이었다.
밑반찬 중 내가 처음 본 부추찜.
부추를 콩가루에 버무려 살짝 쪄냈단다. 최근 남편이 채식을 시작해서 마구마구 메뉴가 딸리고 있는 중인데.. 고맙게 한 가지 건졌다.
일곱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산골이라 밤이 깊다.
내일은 또 어떻게 배부른 하루를 살아갈꼬.....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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