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국내

평생 잊지 못할 通古山

張萬玉 2010. 3. 1. 10:36

Unforgettable 1 : 완벽할 뻔했던 코스

 

사흘 연휴가 시작된 날 저녁, 남편이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잔다.

어디 나가자는 제안은 늘 내 몫이었지만 (남편이 워낙 방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깨닫고부터는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요즘 들어서는 대부분 남편 쪽에서 나가자고 한다.

나야 '불감청 고소원', 늘 대기중이니.... 황공하옵니다~를 외치며 즉시 행선지 물색에 들어간다.

 

제안은 누가 했든 기획은 당연히 내 몫이고 기획에는 부담이 따른다. 안 놀던 사람 데리고 나가려면....^^

어디로 가지? 산이 헐벗은 계절에도 갈 만한 곳은 아무래도 소나무숲이겠다.

하룻밤 자고 오고 싶은데 구실을 만들려면 경상도, 전라도 권으로....

인터넷 검색에서 '소나무 숲'을 쳐 '울진 금강송 군락지'를 찾아냈다.

하지만 이곳은 두어 시간이면 끝나는 가벼운 산책지인 듯하고.... 땀좀 낼 만한 곳이 인근에 더 없을까?

그렇게 찾아낸 데가 통고산.

이름도 못 들어본 산이지만 내 무릎이 받아들일 만한 가벼운 코스일 듯하고 산행안내도 흥미롭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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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가이드] 울진 통고산 & 소광리 금강송숲

 

진초록 樹海 속으로 이어지는 심산유곡 길

 

울진 통고산(通古山ㆍ1067m)은 산양의 서식지로 이름은 널리 알려졌을 망정 등산을 하고자 찾는 사람 수는 뜻밖일만큼 적다. 산중턱을 가로지른 임도를 둘러싸고 그간 악소문이 퍼진 탓이다. 산행 리듬을 툭툭 끊어버리거나 여름이면 두통도 유발하는 뙤약볕 임도는 통고산 허리를 뱀처럼 구불거리며 휘감고 있다. 이 임도로 고생을 겪어본 등산꾼들이 다시 못 갈 산으로 낙인을 찍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며 임도의 여러 굽이를 꼬치 꿰듯 가로지르며 짙은 숲속을 지나는 지름길이 정상능선까지 이어졌다. ‘임도(林道) 산’이란 선입견만큼 이 지름길들에서 만나는 울창한 수림이 주는 신선함도 크다. 통고산 숲의 아름드리 거목들은 제법 이름난 산들의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는 굵기와 밀도로 시종일관한다.

통고산의 숲속. 임도를 몇 번 가로질러야 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통고산은 그 짙은 숲만으로도 최상급의 점수를 줄 만한 산이다.

숲이 울창하기에 통고산 자연휴양림이 들어선 계곡은 갈수기에도 굵은 물줄기를 보인다. 암반과 풍부한 수량이 어울린 아름다운 계곡은 이름도 ‘깊고 아름다운 골’ 심미(深美)골이다.

통고산 등산은 휴양림을 기점 삼아 한 바퀴 정상까지 돌아 내려오는 원점회귀형 산행이 가장 일반적이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 차단기까지 되내려오기까지의 거리는 정상까지 오름길 5km, 하산길 5km 하여 10km쯤 된다. 아무리 늘어져도 4~5시간 내에 끝날 거리다.

산행은 자동차로 휴양림 내 도로 맨 위까지 올라가 그곳 공터에 주차한 뒤 시작한다.

차단기에서 300m쯤 올라간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여러 개 표지리본과 더불어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역력한 소로 입구가 뵌다. 임도는 저 위 200m쯤 더 올라갔다가 거의 거꾸로 되올라가다시피 갈짓자로 꺾어지는데, 이 구간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다.

그후 다시 임도로 나서서 오르다가 다시 샛길로 접어들기를 반복한다. 임도로 오르며 잘 살피면 소로 입구를 찾을 수 있다. 숲은 울창하여 마치 사우나에서 냉탕으로 든 듯 시원한 기운이 느껴지곤 한다. 이렇게 샛길에서 샛길로 이어가야 한결 덜 고생스럽거니와 통고산 숲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차단기가 있는 출발점이 이미 해발 550m가 넘는 곳이라서 그후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대관령과 엇비슷한 800m대를 넘어서게 된다. 휴양림의 송림에 이어 이 즈음에선 거대한 신갈나무가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숲속 옹달샘도 나타나 산행을 즐겁게 한다. 숲속 등산로변에 ‘옹달샘 40m’ 팻말이 세워져 있다. 옹달샘은 갈수기에도 넉넉하게 흐른다.

오름길에서의 마지막 임도를 가로질러 접어든 숲속에서 통고산은 두 아름도 넘는 거대한 노송 군락으로 숲의 절정을 보인다. 진초록 숲에서 수목 줄기의 선은 대개 숲을 분할하는 선으로 역할하지만, 이곳 통고산 수목은 굵고 길어서 간혹은 초록숲의 태반이

이 굵은 검은 수목 줄기들로 가려지곤 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30여 분만에 비로소 길은 고개를 순하게 숙이며 통고산 북서릉의 낙동정맥으로 발길을 안내한다. 탄탄하고 널찍하게 다져진 능선길이 숲 사이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능선 일대는 사방이 어디 한 군데 여백이 없는 진초록의 수해(樹海)를 이루고 있다.

통고산 정상은 널찍한 헬리포트다. 제법 넓어서 바깥을 조망하려면 변두리로 나서야 한다. 정상표지석은 헬리포트 바로 옆에 서 있다. 표지석 뒷면에 엉터리 해설이나마 산이름의 유래가 새겨져 있다.

정상표지석 옆 무성한 숲속을 지나면 10m쯤 됨직한 무인산불감시탑이 섰다. 여기서 300m쯤 간 지점의 삼거리에서 휴양림 방향은 왼쪽이다. 정맥 종주꾼들이 우측의 정맥 길을 명확히 하기 위해 휴양림 방면 왼쪽 길 입구를 나뭇가지로 막아두기는 했지만, 결코 우측 길이 아닌 좌측 길로 가야 한다.

거목숲은 이곳 삼거리를 지나서도 여전하다. 검거나 붉은 거목 줄기들로 녹음의 태반이 가려지거나, 저 아래 먼 곳까지도 굵은 줄기의 수목들로 빽빽한 숲이 연이어진다. 완경사의 내리막으로 이어지다가 다시 슬며시 고개를 치켜든 지 오래지 않아 능선 왼쪽으로 비스듬히 빗겨 내려가는 하산 길목이 나온다. ‘하산 2.3km 1시간 ↓)이란 팻말이 서서 길안내를 해주고 있다.

임도에 다시 내려선 이후 10m쯤 왼쪽 아래로 가면 다시 샛길이 뵌다. 능선을 따르다가 119 10번 조난신고 표지판을 지나면 두 가닥의 계류가 만나는 계곡으로 내려선다. 여기서 등행시 걸었던 임도까지는 고작 200여m 거리이므로 뜸을 들인 뒤 가도록 한다.

 

숙박은 통고산 자연휴양림이 최고이며, 그외 불영계곡을 따라 민박촌이 몇 있다. 054-783-3136, 782-3602, 783-0133, 782-9139, 782-9157, 782-9142, 783-6649.

울진해변 모텔아리아(‘객실에서 일출을’을 캐치프레이즈로 삼은 조망 좋은 집. 전화 054-783-0541-3), 굿모닝라이브하우스(봉평리 해변도로 옆 둔덕에 위치. 054-782-3392), 골장모텔(꼭대기 층은 일출맞이 전망대인 업소·054-783-0848).

 

소광리 금강송

울진군 서면 소광리 대광천계곡에는 우리와 친근한 소나무 중에서도 재질이 특히 뛰어나 최고로 치는 금강송(金剛松)이 밀집돼 있다. 1,610ha의 보호림에 빼곡하게 자라는 소나무 중 금강소나무 1,700그루는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데, 최고 수령 520년, 평균 수령은 150년, 굵기 40cm, 키 15m 정도이다.

 

금강송은 조선조 때 심재(心材) 부분이 누런 황금색을 띤다 하여 황장목(黃腸木)이라 불렸고, 일제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소광리를 비롯해 울진·봉화·영양 일대에서 베어낸 소나무들이 실려나간 길목이 인근 춘양역이었기에 춘양목(春陽木)으로 불리기도 했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생태경영림을 관리하는 울진국유림관리소에서는 숲탐승로를 세 가닥 만들어놓았다. 대표적인 탐승로는 520년생 대왕소나무 두 그루와 150년 넘게 자란 미인송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제1관찰로. 임도로 이어지는 제1관찰로를 따라 1km쯤 오르면 언덕마루에서 제2관찰로(0.5km, 20분) 갈림목이 나온다. 제2관찰로는 미인송 일대의 금강소나무 군락을 조망할 수 있는 능선길이다.

여기서 제1관찰로를 따라 300m쯤 더 오르면 왼쪽으로 제3관찰로(1km, 30분) 들머리가 나온다. 제3관찰로는 금강송뿐 아니라 아름드리 참나무, 굴피나무 등이 우거진 산길로, 원시성을 연상케 하는 대광천계곡 탐승이 더해진다. 제1관찰로와 제3관찰로를 잇는 탐승이 금강송 군락지의 다양한 자연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권할 만하다.

금강송 숲탐승은 소나무향에 취하고, 피톤치드를 듬뿍 마시며 쉬엄쉬엄 걷는다 해도 2시간이면 넉넉하다. 남부지방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054-783-7074)는 원하는 사람에 한해 숲 탐방 안내를 한다. 약 2시간 걸리며, 현장 관리소(783-4008)에 문의하면 시간을 정할 수 있다.

 

36번 국도 소광리 입구에서 동쪽으로 8km쯤 떨어진 불영사(佛影寺)에는 응진전(제730호)과 불영사 영산회상도(제1272호) 같은 보물급 외에 문화재가 여럿 있다. 부처 바위가 비쳤다는 연못을 배경으로 들어선 절집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진입로 변의 울창한 숲과 거목, 불영계곡 계류와 기암괴봉 풍치도 볼 만하다.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초교생 1,000원. 불영사 매표소 054-783-5773.

 

드라이브 코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불영계곡을 따라 들어선다. 내륙권에서는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또는 영주 나들목)→36번 국도→봉화·현동(소천)→답운치-(5km)→통고산 자연휴양림-(3km)→917번 지방도 갈림목(광천교)-(좌회전 4.5km)→갈림목 오른쪽 길(왼쪽 길은 자수정광업소 방향)-(8km)→화전민 이주정착지와 금강송 관리사-(1km)→금강송 군락지 주차장.

동해안에서 접근할 경우, 울진읍내 남쪽 7번 국도 상 왕피천 갈림목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불영사를 거쳐 진입한다.

 

●숙식

화전민 이주정착지에 있는 빛내관천동물농장(054-782-1164)에서는 민박을 치면서 토종닭 요리·산채정식 등의 음식을 내놓는다.

 

출처 : san.chosun.com

     

그럼 통고산 자연휴양림으로 먼저 가서 정상까지 다녀오든지, 만만찮아 보이면 휴양림이나 한 바퀴 돌고

금강송 군락지로 이동해서 거기도 한 바퀴 한가롭게 돌아주시고... 

시간 되면 혼자 보기 아까웠던 구주령 전망을 같이 보든지 아니면 백암온천에서 온천이나?

예전에 묵었던 서울민박에서 일박하고 새벽에 불영사에 가서 운좋은 아침공양이나?

돌아올 땐 울진항 쪽으로 나와 싱싱한 해산물이나 좀 사오면 환상적인 1박2일 코스 되시겠다. 완벽햐!!

야무진 꿈을 안고 새벽6시에 길을 떠났는데...

 

짙은 안개가 새벽 드라이브의 즐거움인 일출구경은 방해했지만 대신 수묵화같은 근사한 풍경을 선사해준다.

연휴 정체가 어떻다고 떠들어대지만 동트기 전에 떠난다면 거칠 것이 없다.

영동고속도로도 중앙고속도로도 36번 국도도 뻥뻥 뚫렸다. 세 시간 반 만에 통고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 가뿐하게 도착.

전날 밤 서울에선 비가 내렸는데 이 동네에선 눈이 내렸나보다. 천지가 하얗다.

 

 

도저히 휴양림이나 한 바퀴 돌고 말 풍경이 아니라서 정상까지 가보기로 했다.

지난 주말 동네 뒷산 갈 때 눈이 덜 녹았을까봐 넣어뒀던 아이젠이 배낭 속에 얌전히 들어 있어 다행이었다.

원래 등산하는 사람들은 국립휴양림 부지가 끝나는 지점까지 차를 끌고 올라가 거기부터 등산을 시작한다는데

눈길이 미끄럽길래 우리는 차를 휴양림 정문에 세워두고 걸어올라갔다.  

 

 

눈꽃이 햇살을 받아 녹아내리면서 눈부신 수정열매로 변신...

  

길 오른쪽으로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이어진다. 가끔 이런 작은 氷瀑도 있다. 

 

10분쯤 올라가니 휴양림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 입구. 

연휴나 성수기엔 산림청 홈페이지에서 예약해둬야 하지만 평일이나 비수기에는 바로 들 수도 있다고 한다.

 

텐트를 칠 수 있는 데크와 야영시설들. 

 

아이들이 눈밭에서 눈덩이처럼 구르며 놀고....

 

그럼 우리도 한번 굴러볼까나... 

 

이 큰 산에 정말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다.

 

임도를 따라가다 숲 길로 꺾어드니 과연 소문대로 소나무 향기가 가득.....

 

이곳의 소나무들은 속살이 황금색을 띄어 금강송으로 불린다고.... 

 

앞서간 이들이 눈밭에서 길 잃지 말라고 안내리본을 여기저기 묶어놓았다.

이 안내리본 '덕'을 톡톡이 볼 줄이야.... 이 때만 해도 짐작 못했네그려.  

 

안 그래도 작은 사람이 키다리들 속에 있으니 완전히 파묻힌다. ^^

 

 

Unforgettable 2 : 환상의 雪花世界 

 

오홋, 다시 임도를 하나 건넜을 뿐인데.... 세상이 완전히 눈꽃세상으로 바뀌어버렸다. 

 

눈 덮인 산에는 가봤지만 눈꽃 활짝 피어난 산은 난생 처음 이다. 

 

눈이 녹다 말고 얼어붙어 얼음결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신기한 모양. 

새의 깃털 같기도 하고....

 

 

 

 종잇장 모양 붙어 있던 눈꽃잎들이 바람이 불면 우수수 날리면서 날카로운 빗살이 되어 우릴 공격한다.  

 

거센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눈덩이가 제법 거세다.

신기하다. 나무랑 눈싸움도 다 해보는구나. 

 

오, 환상이다. 환상세계다....!! 

늘어진 가지에 들러붙은 눈꽃잎들이 환상세계를 찍은 영화 필름처럼 줄줄 늘어졌다. 

 

드디어 정상 도착.

땀도 적당히 나고 하늘도 맑고 공기도 맑고, 정말 완벽한 산행....이 될 뻔 했는데

 

 

Unforgettable 3 : 고군분투 통고산 탈출기 

 

우리의 고난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산림청 직원의 조언을 들었어야 했다.

등산로에서 정상 반환점(산불감시탑)을 돌아 하산로로 둥글게 돌아나오는 게 일반적인 코스이긴 하지만

하산로 쪽은 인적이 끊기면 길 잃기 십상이라고.... 안내표지판이 주로 등산로에 집중되어 있으니 왠만하면 올라갔던 길로 내려오는 게 좋겠다고 했지.

헌데 행복한 산행에 취한 우리가 자만했던 거다. ㅜ.ㅜ

게다가 산불감시탑 뒤쪽 하산길로 보이는 소로가 너무나 뚜렷했고 안내리본까지 왕창 묶여 있었기에...

 

우리의 잘못은 계속 안내리본을 따라간 것.

리본이 안내하는 길은 계속 능선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종주길이었던 것이다.

한 시간 반이면 하산할 수 있다는 산림청 안내자료와는 달리 2시간 넘게 걸었어도 도무지 하산길이 안 보이자 남편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방향도 이상하고 암만해도 너무 크게 돌고 있는 것 같다는 거다.  

그러나 능선길 양쪽으로는 한치의 발디딤도 내어줄 생각이 없는 가파른 급경사. 

친절한 리본씨의 안내는 한눈팔지 말고 계속 따라오라니... 어쩌겠어.

아무리 종주길이라 한들 이 리본 단 사람들도 어디선가 짐 내려놓고 잠을 잤겠지.

아직 해가 중천이니 부지런히 따라가다 보면 하산길이 나오지 않겠나?

 

즐거운 능선길이 이젠 울며 겨자먹는 고생길로 변했다.

아, 겨자라도 먹었으면.... 먹은 거라곤 새벽 다섯 시 반에 먹은 토스트 한쪽이 전부니....

허기를 달래려고 연신 물만 마셨더니 이제 물도 바닥났다. 

어차피 산꾼들도 길없는 길로 다니니 그래도 어둡기 전에 굴러서라도 내려가자는 게 남편 의견이었지만

어찌나 비탈이 가파른지 도무지 엄두가 안 나 그래도 리본 따라가보자고 고집을 부리다가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키자.... 결국 남편의 판단을 따르기로 했다.       

 

 

어찌 그 참상(!)을 이루 다 말하랴!

바로 저런 길을 더듬어 내려왔던 것이다. ㅜ.ㅜ

처음엔 거의 수직에 가까운 비탈을 쇼트트랙 선수들처럼 잔뜩 세운 발날로 버텨가며 내려왔다.

다행히도 흙이 무른 육산이고 나무들이 빽빽한 비탈이라 미끄러져봐야 긁힐 망정 어디 부러질 일은 없을 거라는 배짱으로 온몸을 던졌다. 

내려왔다기보다는 온몸으로 산을 훑어내렸다고 해야 맞다. ㅎㅎㅎ 

얼굴을 할퀴는 잡목들을 헤치며 거의 무아지경으로 내려오기를 한 시간여....

드디어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물줄기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개울을 따라가는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질퍽한 진흙탕과 이끼로 뒤범벅 된 두 발은 이제 얼음장 같은 물속도 마다 않을 정도로 대담해졌고

두 발이 대담해지니 웬만한 길도 무섭지 않다. '길이라도 좋고 아니라도 좋다~!' 

내 무릎 약하다고 누가 그랬어! 이리저리 휘어지는 계곡길은 끝날 줄을 모르건만 전의에 불타는 내 무릎, 내 발목은 팍팍 꺾어지면서도 굴복하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견뎌내기 어려운 것은 목표가 보이지 않을 때일 것이다.

비탈을 내려올 때만 해도 앞이 캄캄했는데 물소리를 듣고는 새 힘이 불끈 솟았다.

그러나 한모퉁이 돌아서면 끝날 줄 알았던 계곡길이 시치미 뚝 떼며 또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죽어라고 또 한모퉁이 돌아내면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를 반복하니 그만 주저앉고 싶어진다.

아, 이 물줄기가 그냥 땅속으로 숨어들진 않겠지. 어디에선가 큰 물과 만나 사람들로 하여금 큰 다리를 짓게 했겠지. 거기엔 분명히 길이 나 있고 인가가 있겠지.

남편이 감탄을 금치 못한다. "당신 이제 보니 은근히 악바리네.." 

 

 

결국 순해진 소로를 발견했고 그 좁은 길은 우리를 사람의 흔적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10시에 시작한 등산이 12시 반 정상도착을 기점으로 4시 반에, 예정 시간보다 2시간 반을 초과하여 엉뚱한 곳에서 끝났다.

그런데 도대체 여기가 어디냐고!

표지판도 인적도 없는 신작로에서 도무지 방향을 잡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신세지만 그래도 산속이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에 한결 여유가 있다.

인가가 나올 때까지 슬슬 걸어가보세!

 

Unforgettable 4 :  사람이 산보다 아름다운 이유

 

500미터쯤 걸어가니 인가가 나타나고 빨간바지 입은 아주머니 한 분이 빨래 걷다 말고 우리를 쳐다보신다.  

통고산 자연휴양림을 물어보니 모르신다네. 여기는 울진군이 아니고 영양군이란다. 켁!

산에서 헤매셨구만요, 쯧쯧.... 혀를 차며 물이나 마시라고 시원한 물 한 병을 갖다주시는데 달작지근하다.

고로쇠 수액이란다. 어찌나 감사한지....

 

우리 있는 곳 주소를 알았으니 돌아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물으려고 자연휴양림에 전화를 했더니

걸어 돌아오려면 힘들 꺼라고 데리러 와주신단다. 아이고 깜짝이야!

만나기로 한 인근 초등학교(신암분교) 앞에 담배 표지가 붙은 집이 있길래 뭐라도 요기할 게 있을까 하고 들어가보니 음료수와 담배 밖에 안 판다.

일단 데리러 와주시는 분께 감사표시라도 하려고 맥주 한 포장을 사고는

먹을 게 있으면 뭐라도 파시라고 졸랐더니 아이고, 한과 한 봉지를 내주시네.

자기네가 먹으려고 만든 거라면서 돈도 거절이시다. 이런이런.... 이 동네분들은 모두 이렇게 인심이 좋으신가?

     

신암초등학교 분교.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차를 몰고 나타난 분은 우리가 산에 들 때 만났던 산림청 직원(인 줄 알았던) 그 분이었다.

원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분인데 아이를 자연에서 키우고 싶어서 5년 전에 이곳으로 이주하여 작게 농사도 짓고 통고산 숲 해설사로 일하고 계신다고 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서 오랫동안 귀농을 준비하며 전국 곳곳을 물색한 끝에 찾아낸 곳이라고....  

수입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하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택하셔서 그런지 일하시는 모습도 즐거워 보였다. 

다행히 부인도 아이도 이곳 생활을 너무 좋아한다고 하신다.

 

차에 오르면 잠깐일 줄 알았는데 거의 30분을 달렸다. (알고보니 이 길은 917번 지방도였다)

우리가 내려온 길은 휴양림과 완전히 반대쪽편이었다고... 버섯 따러 다니는 동네분들조차 잠시 한눈 팔다가는 울진으로 올라갔다 영양으로 내려오기 일쑤란다. 

우리가 따라간 그 리본은 부산에서 시작해서 낙동정맥을 따라가는 종주꾼들이 달아놓은 건데 그 리본을 따라가도 세 시간이면 답운치로 하산하게 된다고 한다.    

이건 그냥 동네마중이 아니다 싶어 기름값이라도 내려고 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펄펄 뛰신다. 비정규직이지만 공무원 신분으로 자기 할 일 한 거라고....

아, 완전 감동! 이런 분들이 진짜 대한민국의 희망을 지켜나가시는 분들 아닐까.

 

 

 

통고산 숲 해설사 유택하씨. 

눈꽃도 좋았고 고생도 유난스러웠지만

이 분 때문에 통고산 등반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으로 남게 될 듯하다.

 

P.S. : 옷도 신발도 속속들이 진흙탕에 젖어 거의 미*년 꼬락서니가 되니

         꿈꾸고 나갔던 1박이며 완벽코스가 다 뭐야, 그저 집생각이 굴뚝같아 부지런히 귀가길에 올랐다.

         그러길 정말 잘했다. 그날 저녁 강원산간지방에 눈이 몹시 내렸다니.... 

         산속 헤맬 때 멀쩡하던 다리는 지금 완전히 뻐쩡다리가 되었다. 회복되려면 며칠은 걸릴 듯하다.

         어젯 밤에도 발밑이 무너지는 비탈에 매달려 쩔쩔 매는 꿈을 꾸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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