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가는 길(~2014)/재미·취미(쓴 글)

아바타, 그리고 아마존의 눈물

張萬玉 2010. 2. 12. 12:52

 

# 아바타 예고편..ㅋㅋ

 

상해 살 때 옆집 살던 후배가 방학 맞은 아이들 데리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지난 여름 처음으로 상해에 갔을 때 시집간 언니의 친정나들이나 되는 듯 환대해줬던 후배도 후배지만, 그보다도 손자처럼 이뻐했던 녀석들이 http://blog.daum.net/corrymagic/10705768

자랄수록 데면데면해지는 게 초조해진 나머지 어떻게 한 조각 환심이라도 붙들어둘까 궁리하다가....

ㅋㅋ 롯데월드에 데려갔다. 

원래도 그랬지만 이젠 완전히 할마씨가 되어 뺑뺑 돌고 곤두박질치는 건 딱 질색이라 이것저것 손사래를 치다 보니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건 오직 눈으로 즐기는 시설들뿐.

(이건 괜찮다는 꼬임에 속아 올라탔던 '혜성 익스프레스'에서 거의 생명의 위협을 느끼곤 몽땅 포기!)

 

그래서 우리 아이 어릴 때 접해본 3D니 4D니 하는 영화들만 세 개나 보았다. 급비탈을 질주하는 철도를 바라보며 앞으로 살짝 기울었을 뿐인 의자에서 떨어질까봐 팔걸이를 진땀나게 부여잡기도 하고, 눈 앞으로 팔랑팔랑 다가드는 나비 잡겠다고 두 손가락으로 허공을 휘저어보기도 하고, 공룡이 코 앞으로 바짝 들이대고 부는 입김에 머리카락 흩날리면서 유치원 꼬마들처럼 즐겼다. 나 다 큰 어른 맞아? ㅎㅎㅎ     

 

# 아바타 체험기

 

그리고는 사흘만에 그 소문 짜한 3D영화를 또 보러갔다.

사실 아바타를 꼭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시다시피 내가 비주얼엔 좀 무심한 편인 데다 상상력이 빈곤한 탓에 환타지라는 장르도 별로고 그 영화에서 어떤 메시지를 기대할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기 때문에....

다만 요즘 정신없이 바쁜 후배가 이 영화만은 꼭 볼꺼라길래 걔 얼굴도 볼겸 겸사겸사 나간 길이었다.         

상영관이 상당히 많은데도 예매하지 않으면 자리도 없을 꺼라고 해서 인터넷 예매를 했는데

자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상영시간이 임박한 상영관에서조차도 앞자리 두 줄과 양끝 좌석은 비어 있다.

거의 고문 수준으로 다가드는 모양이군. 우리라고 고문당할 수는 없공.... 이 동네 저 동네 뒤지다가

겨우 영등포 CGV에서 중간좌석 두 개를 찾아냈다.

 

영화는...?

직접 보지 않은 사람에겐 어떤 설명도 소용없다. 이 영화는 직접 봐야 한다.

이 영화는 '관람'이 아니라 '체험'이기 때문이다.  

그래픽 수준이 이 정도까지 온 건가? '경이' 그 자체다.

우주전쟁이니 로봇이니 외계인 등등이라면 소가 닭보듯 하는 내가 이 정도일진대....

게임영상에 익숙한 세대들은 정말 열광하고도 남겠다. 

 

기억에 남는 장면 --

이글란을 잡아타고 원시림을 누비는 장면들,  

무슨 축제였던가? 신성한 나무 주변에 모든 부족이 모여 군무를 펼치는 장면....

(판도라 행성 원주민들은 모든 생명체들과 한몸 같은 유대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게 우리 아들이 어릴 적부터 품어온 키워드 '가이아 공동체' 아니련가? 정말 우리도 불완전한 언어 같은 거 말고 꼬리로 소통하며 살면 참 좋겠다. ㅎㅎㅎ)

형광빛으로 빛나는 나무들, 쏟아져내리는 해파리, 해파리들.... 

(열대우림으로 뒤덮인 그들의 행성은 언옵타늄이라는 물질의 자기장 때문에 거대한 산들이 공중에 떠다니고 밤이 되면 수많은 생명체들이 화학반응을 하여 형광빛을 뿜어낸다. 정령신앙 내지 뉴 에이지 스타일..) 

나비족 부족장 딸이 화났을 때 이빨을 드러내며 내지르는 소리, "하!!"

(허스키한 음색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이제부터 화나면 이 제스처를 쓰겠다고 가족들에게 통보했다. ㅎㅎ) 

 

1990년초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기울어가는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적자도 타개하고 아이템을 다변화하기 위해 획기적으로 SF시리즈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물론 사장님 취향이 반영된 기획이었고 나는 편집자일 뿐이었지만 아이템 조사나 최소한 교열이라도 제대로 보려면 어느 정도 견문은 있어야겠기에 거의 1년간 과학소설에 대한 소양을 쌓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 덕분에 SF 매니아들의 몰입과 열정에 대해서는 쬐끔 짐작한다.

'아바타' 역시 그 극성스러움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대작이다. 

판도라의 문화에 대해.... '독자가 만들어가는 오픈백과사전 위키피디아'처럼...

350페이지에 달하는 ‘판도라피디아’라는 설명서를 만들었을 정도라니 말이다. ㅎㅎㅎ 

 

# 시대정신을 말해주는 시대광장?

 

그날 나를 놀라게 했던 건 아바타 말고도 또 있었다.

영등포 CGV가 들어 있는 건물, 시대광장(Time Square).

예전에 경방 필 백화점 있던 자리 같은데 그 복작대던 골목들이 싹 정리되어 큰길로 나가지 않으면 도대체 어딘가 싶을 정도로 면모를 일신했다. 타임스퀘어 빌딩도 상하이 포동의 쩡다광창, 혹은 시쟈휘의 깡휘광창처럼 확 트인 모습이었다. 같이 갔던 후배는 완전히 터키의 대형쇼핑몰이랑 똑같다고 놀란다.

이제 정든 영등포 골목길을 그리워하면 완전 뒷방신세 되겠는걸.  

 

타임스퀘어 앞에 설치된 인상적인 조각작품. (사진은 내 여행짝 JM의 작품)  

 

 '서로서로 눈을 가리고 모두 어디론가 바삐 간다.'

(이 캡션도 그녀의 블러그 http://blog.naver.com/apple6865/30080128518에서 퍼왔음

 

 

# 아바타 뒷풀이

 

공교롭게도 아바타를 보고 온 다음날 한가한 일요일 오후, 쿡 TV 다큐멘터리를 뒤지던 남편이 MBC 다큐멘타리 '아마존의 눈물' 5부작을 보고 있길래 중간에 합류했는데..... 아바타를 현실판으로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본방일 때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갑자기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를 쓴 정승희 PD가 생각나

그가 만든 다큐멘타리도 어디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다시보기 다큐멘타리 코너를 열나게 뒤졌더니

있더라.... 2009년말에 제작된 KBS수요기획 시리즈... 이것도 5부작이다.

어제까지 짬짬이 두 프로 다 봤다. 두 개 모두 시간과 돈과 정성이 듬뿍 들어간 수작이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MBC 것이 살짝 흥미위주라면 KBS 것은 좀더 탐구적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