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유럽

이탈리아 2 - 로마 시내 여기저기

張萬玉 2009. 3. 3. 10:12

떼베레 강변 벼룩시장

 

민박집 아주머니가 일러준 대로 떼르미니 역에서 75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에 선 흑인 수녀님이 방긋 웃으신다.

미소에 힘입어 말이나 한번 붙여볼까 했는데 불행히 영어도 안 되고 스페인어도 간단한 몇 마디밖에 안 된다. 

그래도 서로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는 와중에 두어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프랑스인이고 무슨 행사인가에 참가하려고 일주일간 다니러 왔고 자기도 지금 플리 마켓 가는 길이다.... ^^ 

버스가 포르테 포스떼레에 도착해서 같이 내리긴 했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얼마 안 가 놓쳐버렸다.

수녀님은 뭘 사러 오셨는지 꼭 보고 싶었는데.... ^^ 

 

 

한국으로 치자면 1000원짜리 떨이장사판(1유로가 당시에 대충 1700원 정도였으니)인데 눈길 닿는 곳마다 벌어져 있다.

나도 재미로 티셔츠 한벌 사봤는데, 새 거고 꽤 입을 만하지만 눈대중보다 많이 커서 여행 내내 잠옷으로 입었다. 

 

 

 

  

 

 

 

시장은 예상보다 컸다. 의류나 장신구, 가방, 서적, 음반, 골동품뿐 아니라 샹들리에, 대형그림, 대형가구처럼 벼룩시장에 어울리지 않는 품목들까지 나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간을 끌었지만 워낙 물목이 많다 보니 그게 그거 같고 싫증이 나 강변으로 빠져나가려는데

이노무 시장길, 가도가도 끝이 안 나네.

 

 

소득이 있었다면 여행길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집에 손목시계를 빠드리고 와 알람시계 겸 평소시계 역할까지 하고 있는) 알람시계 전지를 갈았다는 것. 

동네 타바키(담배, 신문 등을 파는 곳)에서 건전지를 갈 수 있을까 해서 엊저녁 열심히 발품을 팔아봤지만 아무 데서도 안 갈아줘

어쩌나, 시계를 하나 새로 사야 하나 망설이던 중이었는데.... 

전자계산기와 조잡한 장난감을 파는 노점에서 해결했다. 그것도 공짜로.. ^^

젊은 중국인 주인 내외는 내가 중국어를 하자 고향사람 만난 듯 반기며 친절하고 신속하게 건전지를 갈아주고

그거 몇푼 안 된다면서 결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나 중국사람 아니고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더 좋아하더군.      

 

 

마침 이탈리아는 선거철을 맞고 있었다. 아무도 발길을 멈추지 않는 거리에서 직접 홍보물을 배포하고 있던 공산당 후보.

잠시 인터뷰를 청했더니 친절하게 응해준다.

이 선거는 지방의회 의원 선거이고 자기는 이번에 처음 선거에 나왔다고... 

정치인이라기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여유있는 농담까지 한다.

이탈리아에서 공산당 지지율은 3% 정도인데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단다. 국 민주노동당에 대해 꽤 알고 있어서 좀 놀랐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역시 듣던 대로 친절했다. 처음엔 쌀쌀하게 굴기도 하지만 뭘 묻거나 도움을 청하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특히 남자들에게 길을 물어보면 마치 자기가 아버지나 된 듯한 태도로 알려주고 아줌마들은 언니처럼 이것저것 참견까지...

다만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다른 여행지에서와는 달리 공연히 말 붙이기가 좀 꺼려지더군.  

 

달랑 앞자리만 두 개 있는 얄미운 차 스마트.(뒤쪽)  

 

떼베레 강변으로 가려고 길을 묻던 중 밀라노에서 온 친구에게 로마구경을 시켜주고 있다는 아가씨를 만났다.

한국사람 좋아한다면서 강변까지 데려다주는 두 아가씨들..... 특히 밀라노 아가씨는 대단한 수다쟁이였다.

영어로 떠드는 것이, 영어를 못하는 친구에게 통역해주는 일이 너무나 즐거운 모양.

보통 얘기를 시작하면 내가 주로 묻는 편인데 이 아가씨는 한국에 대해 나의 여행에 대해 마구 질문을 쏟아대면서 대화주도권을 단번에 뺏어버렸다.

그리고는 대답할 틈도 안 주고 '아, 이렇단 말이지?' 하는 식으로 자기가 대답까지 해버린다.

유럽에 이런 아가씨도 있구나, 정말 신기하더군.(목소리가 예뻐서 그르르르 그르르르 좀 이상한 영어조차 귀엽게 들려 다행이었달까.)

 

지금은 로마 신시가지에 살고 있다는 다른 아가씨는 어릴 때 이 동네에서 자랐다고 한다. 

이 동네는 구 로마 건축물들이 보존되고 있는 특별한 지역인데 지금은 모두 떠나 텅 비어버리고 

레스토랑 몇 군데만 겨우 명맥을 잇고 있어서 아쉽다고 했다. 내 눈에는 로마 시내 도처에 옛 건물들이 수두룩하던데....뭐가 다른가?  

 

고맙기도 하고 살짝 부담스럽기도 한 아가씨들과 헤어져 떼베레 강을 건너니 바로 유태인 거주지역이다.  

뭘 봐야할지 모르겠는 평범한 허물어진 집터와 시나고그(회당)들은 대충 일별하고 강변에 앉아 갈매기랑 놀았다.

 

멀리 정면으로 보이는 게 산탄젤로 성이다. 

 

거리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곳곳에서 검투사들이 여자관광객들을 놀래킨다.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로마 시내의 모든 버스노선은 베네치아 광장으로....

길을 잃으면 무조건 베네치아 광장을 찾아라. (그리고 숙소로 오는 길을 잃으면 무조건 떼르미니 역을....)

 

이곳을 베네치아 광장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베네치아 주교가 로마로 발령을 받자 당시 이탈리아에서 최고로 잘 사는 동네사람답게

아예 이 일대의 땅을 사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친김에 통일 이탈리아 초대총통 임마뉴엘 몇 세의 궁전인 이 건축물까지 아예 베네치아궁이라고 부른단다.

초대총통 양반이 모든 산업을 밀라노로 보내 관광수입 외엔 먹고 살 거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미워서 그런다는군.

 

 

로마 이후로도 오래된 도시들을 계속 지나왔지만 확실히 로마는 다른 도시들과 분위기가 다르다.

외관상으로만 말하자면 일단 다른 오래된 도시들에 비해 길이 비교적 널찍한 편이고 

골격은 쭉 뻗었지만 윗쪽이 평평한 특이한 소나무들이 늠름하게 도시 주변을 감싸고 있는 풍경이 꽤 독특하게 다가왔다. 

(사진은 베네치아 광장에서 콜로세움으로 가는 차 없는 도로)  

 

여기는 다 아시다시피 콜로세움.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마어마한 규모를 보고는 한나절 발목 잡힐 것 같아 접었다.

나중에 야경투어에 따라갔다가 들은 얘긴데, 출입구가 80개나 된다고 한다. 5만 명의 관객을 동시에 입장하는 장관.... 볼만 했겠다.

76개는 시민들이 입장하고 나머지 동서남북의 4개 문은 귀족들 전용이었으며 엘리베이터도 있었다네?

지하에는 검투사 양성소도 있었는데 당대에 명예를 누린 사람도 있지만 1년도 못 살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개선문. 

나폴레옹이 이 개선문에 눈독을 들이고 가져가려다가 패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해 파리에 이것보다 4배 더 큰 개선문을 지었단다.

김일성씨도 이에 질세라 평양에 10배 더 큰 개선문을 지었다지.  

 

콜로세움 주변에 산재한 로마 유적지 터(포로 로마노).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은 언제 어떤 형태로 사라질지 무척 궁금하다.  

 

영화에서 보았던 수녀님들의 복장이 신기해 멀리서 찰칵.  

 

콜로세움에서 메트로를 타고 시내에 몰려 있는 관광지역 중 가장 북쪽에 있는 포폴로 광장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충분하면 그곳까지 뻥 뚤려 있는 도로를 따라 양 옆으로 배치되어 있는 유적지들을 도보로 둘러보며 올라갈 수도 있었겠지만

어느새 시간이 해질녘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으니 포폴로 광장의 석양을 놓칠까봐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다른 데는 그렇다 쳐도 판테온 신전을 빼놓은 게 지금까지 후회....)

 

옛 로마의 대문 역할을 했던 포폴로 문으로 들어서면 오벨리스크와 쌍둥이 성당이 반겨준다. 

 

광장은 휴일을 맞은 로마 시민들로 북적이고 꽤 많은 관객 앞에 선 엔터테이너는 신이 났다. 

 

父子有親....

이런 장면은 아들넘 어릴 때 같이 공 한 번 못 차줬던 남편의 지난시절을 아픈 마음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모두 활짝 웃는 얼굴이다. 부럽다.

 

역시 광장의 꽃은 분수대. 일층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층 테라스로 올라간다. ^^ 

그리고 이층 테라스 전망으로도 만족 못한다면 오솔길을 끼고 꼭대기로...

그리 높진 않지만로마 시내에서는 꽤 높은 지대에 속하는 지점이다. 

 

바로 여기다. 사통팔달 바람이 오가는 넓은 평지.

뒤쪽에 있는 녹음 짙은 숲길을 걸어가면 보로게 정원(미술관)이 나온다.

 

 

 

 

 

바로 앞 광장 전망보다 더 멋진 게 로마 시내 전망인데... 짙은 숲에 가려 쓸만한 사진이 별로 없넹.  

 

내가 좀 이상하게 생겼나? 계속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

크면 술 좀 먹게 생겼다. ㅎㅎㅎ 

 

암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 석양...(8시나 되어야 일몰 시간인 듯...)

결국 춥고 배고파 언덕을 내려오고 말았다.

별거 없다는 얘길 듣긴 했어도 그 짜한 입소문에 대한 궁금증을 뿌리치지 못해 '로마의 휴일 광장'(스페인광장)까지 걸어내려갔는데...

 

정말 볼 건 관광객 밖에 없었다.

추워서 그 유명한 아이스크림도 안 먹었다.

그래도 조금 불그레해진 석양을 여기서 보았다. ^^ 

 

<부록> 로마의 야경

로마에는 무료 '야경투어'가 있다.

투어고객 서비스 겸 자사 투어상품 홍보 차원에서 하는 투어인데, 저녁 8시까지 떼르미니역 구내 메트로 매표소 쪽으로 가면 손님들을 모으고 있는 두 세 군데 여행사 가이드들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참가한 것은 민박집 아주머니 아들 친구가 한다는 '맘마미아'라는 여행사에서 하는 투어였는데 가이드로 나온 젊은친구가 어찌나 재치있고 해박하던지 투어 거의 안 하는 나조차도 데이투어에 한번 따라다녀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티투어나 바티칸 투어, 나폴리 일대의 남부해안 투어를 하시려는 분께 이 팀을 추천해드린다.    

투어는 야경이 좋은 산탄젤로성, 베네치아 광장, 콜로세오 광장 등 세 군데를 2시간 가량 도는데 이 메뉴는 요일에 따라 바뀐다고 한다.

 

베네치아 광장의 야경. 위에 올린 낮 사진보다 훨씬 근사해보인다. 

 

산탄젤로성의 야경

 

 

산탄젤로성은 산트 안젤로.. 즉 천사의 성이다.

그 옛날 언젠가 역병이 돌 때 교황이 직접 나와 기도를 올렸는데 그때 미카엘 천사가 나타났으며 역병이 사라졌고

이를 기념해서 지은 성이라 천사의 성이 되었다. 

그래서 성으로 들어가는 다리에 천사들이 주욱 서 있는데 유명한 조각가 베르니니의 작품들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 그의 작품들은 어느 박물관엔가 들어갔고 현재 다리를 지키고 있는 천사들은 복제품)

 

적은 조명을 가지고 이렇게 멋진 야경을 만들 수 있다니...  요란뻑적지근한 중국의 조명과 너무 대비되는구나.

품위는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