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유럽

이탈리아 3 - 폼페이

張萬玉 2009. 3. 3. 10:13

어제 쓰다 만 글이 뭘 잘못 눌렀는지 날아가버렸다. 

포스팅이 너무 많아지는 게 좀 그래서 가능하면 한 지역을 한 개의 글에 다 때려넣곤 했는데....이제부턴 짧고 쉽게 가야겠다. 

생각해보니 글이 길어지면 올리는 사람 뿐만 아니라 읽는 사람도 진이 빠질 것 같다.

그러니 오늘은 폼페이를 거쳐 소렌토까지만 동행하시길...(거의 사진임돠)     

 

포시타노까지 가려면  일단 고속열차(ES)를 타고 나폴리까지 가서 다시 지방열차(RER)로 갈아타고 소렌토로, 거기서 마을버스를 타고가야 하는데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화석이 되어버린 도시 폼페이가 궁금하신 분들은 폼페이에서 내렸다 가셔도 된다. 

폼페이 역에서 유적지까지는 4킬로 정도. 워낙 걷는 걸 좋아하는지라 기차역에 배낭을 맡기고 걸을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기차역에 락커가 없어서(유적지 입구에는 있다) 역사 오른편에서 개인영업을 하는 2유로짜리 승합차를 탔다. 택시들도 많이 있는데 바가지다.

 

 

땡볕 아래 유적지를 헤맨다는 게 좀 팍팍하게 느껴져서 망설였지만 이제 가면 언제 오랴 싶은 마음으로 왔는데....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일단 베수비오 화산을 배경으로 한 탁 트인 전경이 숨막히게 멋졌고 남아 있는 유적들도 기대에 넘치게 풍부하고 다양했다.

 

제정로마 초기에 귀족들의 휴양지로서 꽤 잘나갔던 도시였고 인구도 인구 2만~5만 명에 이르렀었다니 이 정도 규모로 놀랄 일은 아니지.   

 

아마도 이런 곳은 복원한 게 아닐까 싶다. 화산폭발이 여기만 비껴갔을 리는 없고.... 

 

 

간선도로만 해도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데 각각의 간선도로는 셀 수 없는 골목길과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당시 사용하던 생활용품들도 남아 있다니... 신기하네.

현재의 대도시 어딘가가 화산재 속에 묻혀버린다면... 무엇이 남아 후손들을 놀라게 할까?

 

 

이렇게 뭉개져버린 곳도 있고 

 

 이렇게 보존이 잘 된 구역도 있다.

 

 

 

 작은 기둥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나하나 공들여 조각....

 

확대해보니.... 지구를 떠받드는 벌을 서고 있는 아틀라스?

 

욕조란다.

목욕 좋아라 했던 로마사람들답게 욕실에 신경 많이 썼다. 자연채광이군. ^^ 

 

정말 끝도 없는 광활한 지역... 내가 발로 돌아본 곳은 전체 유적지의 1/5이나 되려나? 

 

지금도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장학습중인 고교생들

 

아무리 대단한 문명을 일으키고 번영을 구가했어도 자연의 한 방이면 모든 것이 날아가버린다.

오늘날의 과학문명이 그것을 막고 최소한 늦춰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과연 지구가 늙어가는 것까지 막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은 태어나고 사라진다. 너무나 거시적인 움직임이기에 한 점 먼지로서 찰나를 살다 가는 인간들로서는 그것을 잊고 살 뿐.  

 

지금 생각해보니 참 이상하다.

갈 때는 분명히 폼페이역에서 내려 승합차를 타고 10분 정도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유적지 바로 앞에서 기차를 탔다.(역에 락커가 없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마 나폴리에서 소렌토 가는 기차는 폼페이 가는 기차와 다른 노선인 모양이다. .  

기차 진행방향 오른쪽으로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가끔 서는 역도 머릿속으로 소설 쓰게 만드는 아담한 간이역들이다.

 

소렌토에서 내리니 바로 앞이 포시타노행 Sita bus(영어로 하자면 city bus)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를 타려는데 멋진 반백의 신사가 배낭을 들어올려주더니 내 옆자리에 앉는다. 아말피에 산다는 이 양반의 직업은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도 멋진데 1년의 절반은 배에서 사는 '선상 피아니스트'라니.... 난 왜 이리 길동무 복이 많은 거여?

배에서 태어나 평생을 배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하며 한번도 육지에 발을 디뎌보지 못한 피아니스트 얘기가 생각나

그 영화 봤느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최소한 겨울은 자기 집에서 난다면서 웃는다.

자기가 일하는 배는 카리비안 베이를 도는 유람선인데 매년 5월에 제노바에서 출발, 마이애미로 갔다가 11월에 돌아온단다.

레퍼토리가 주로 어떤 음악이냐고 물으니 인터내셔널 뮤직이라면서 한국 곡도 음반이나 악보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해보고 싶다고 한다.

15세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이 직업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는 이 아저씨, 친절한 데다 근사하기까지 하길래

여행길의 기념을 삼고 싶다고 한컷을 청했더니 쾌히 응해주는데....

   

리차드 기어 닮은 반백의 헤어스타일이랑 해서 꽤 멋지더니 막상 사진기 앞이라고 웃어주는데 헉!!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몇 장을 찍어봐도 마찬가지....  입이 비굴하게 삐뚤어지는 거다. (미소라면 무조건 아름다운 건 줄 알았는데... ㅜ.ㅜ)

아말피에 오면 자기 집에 들러도 좋다고 주소를 적어주길래 나도 선물로 갖고 다니던 한국인형 자석 하나 줬더니 엄청 좋아한다. 

 

버스는 아담한 소렌토 시내 중심가를 지나(가로수가 오렌지나무다!!)

 

버스 두 대가 드나들려면 한 대가 서야 할 것 같은 좁은 길을 용케 빠져나가더니

 

드디어 그 유명한 '포시타노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왼쪽으로는 엽서사진 같은 이탈리아 남부 아름다운 해안마을을....

 

오른쪽으로는 바다를 끼고 달리는 그 유명한 절벽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