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가슴에 흰 털 난 게 꼭 반달곰 같다고 쥔아줌마가 절 그렇게 부르셔요.
제가 최씨일가에 입양된 지도 벌써 50일이 지났네요.
왼쪽 사진은 제가 이 집에 막 온 다음날 찍은 거구요... 오른쪽 사진은 한 달 지난 뒤에 찍은 거예요. 어때요, 많이 컸죠?
제 체구가 작다고 강아지라고 부르진 말아주세요. 이래뵈도 한 살 넘은 청소년개랍니다.
남편이 어느날 "우리도 개 한 마리 키워볼까?" 한다.
원래 개라면 질색인 양반이 웬일인고, 했더니.. 산책길에 친구 삼으려고 그런단다.
좋은 공기 마시며 많이 걸어야 낫는 병이라고 산속으로 이사올 때만 해도... 24시간 남편과 동행하리라고 마음 먹었지만
게으른 몸이 어디 부지런한 맘 같은가, 은근슬쩍 동행을 보이콧 하는 날이 늘다 보니 남편으로선 혼자 다니는 길이 조금 적적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날 늘 다니는 야산 입구에서 꼬리를 팔팔팔팔 흔들며 신나게 우리 뒤를 따라오는 깜둥이 강아지 두 마리를 만났다.
우리의 등산지팡이를 잡기라도 하듯 앞발을 번갈아 쳐드는 재롱을 부리며 100미터쯤 따라오다가 다시 자기 집을 향해 후다닥 뛰어가버리는 두 녀석.
몇 달 있으면 건너마을 개가 새끼를 낳으니 기다려보라는 동네사람들 얘기만 막연히 기다리던 우리는 요녀석들과의 만남이 계속되면서 공연히 마음이 급해져
마석 장에 나가 그냥 한 마리 사오기로 했다.
하지만 음력설 직후의 꽁꽁 언 마석 장엔 강아지새끼 한 마리 나오지 않았고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남편이 마음 먹었을 때 저질러버려야 할 것 같아 어느날 산책길에 그 녀석들의 뒤를 따라가 문을 두드렸다.
마침 그 집은 우리를 따라오던 두 마리 쌍둥이 강아지들뿐 아니라 녀석들의 엄마, 아빠 말고도 세 마리나 더 있는 견공대가족...
아주머니가 반색을 하며 두 녀석중 한 놈을 데려가라는데 동생 밥까지 빼앗아먹는다는 형이 더 활발하고 튼튼해 보이긴 했지만
난 웬지 약간 기 죽어 보이는 빼빼 동생을 덤썩 안아들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던 건지... 그렇게 반달이는 우리의 새 식구가 되었다.
내친김에 몸값보다 만 원 더 비싼 맨션(개집 중 제일 큰 사이즈.. ㅎㅎ)과 사료, 목줄, 개껌을 사가지고 돌아오는데
그렇게 좋다고 따라올 때는 언제고... 막상 차에 태워 무릎에 앉히니 깨갱 소리도 못하고 발발발 떠는 양이 어찌나 가여운지....
개는 개답게 키워야지 절대 집안 출입 못하게 하겠다던 남편도 마음이 약해져서 "밤바람이 좀 세니까...." 핑게를 대며
현관과 중문 사이에 개집을 놓는 데 동의했다. 단 2월말까지만이야, 라는 단서를 달아서...
담요도 한 장 깔아주고 너무 휑한 집이 안쓰러워 멀쩡한 베개도 하나 넣어줬지만 녀석은 여전히 새집이 낯설고 두려운 모양이었다.
소리도 죽여가며 밤새 낑낑대더군. 원래 있던 집에서도 밤이 되면 꼭 제 아빠 곁을 파고들어가 함께 자곤 했다던데...
드디어 새 집에서의 날이 밝았다.
난생 처음 해보는 목줄이 불편한지 연신 뒷발로 목덜미를 긁어댄다. 은근히 지능적인게... 나와 눈이 마주칠 때를 기다려 어김없이... ㅋㅋ
휴, 엄마아빠도 엉아도 친구도 쫓아다닐 닭도 벌레도 없는 여기서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우리 사는 집이 주인집 옥상에 지어졌을망정 강쥐가 뛰어놀 만한 공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줄에 매어놓지 않을 생각이었다.
헌데 이 녀석이 그 넓은 마당 놔두고 꼭 옥상난간을 넘어 주인집 지붕 위로 올라가서 뛰어놀더란 말이지. 똥도 꼭 거기 가서 누고... ^^
주인집에도 미안하지만 이녀석이 아래로 내려가버리면 바로 차들이 줄줄이 늘어선 비탈길인고로, 혹 객사라도 할까 싶어 눈물을 머금고 묶어버렸다.
"이 쇠사슬이 다 뭥미!! 억울하고 분하닷!!"
별볼일 없는 시간이면 주인 그림자가 어른대는 창문쪽만 주구장창 바라보는 게 묶인 개 신세...ㅜ.ㅜ
"쥔님, 배고파요, 쥔님, 심심해요, 쥔님 똥 마려워요, 쥔님, 산에 안 가요?"
아잇, 뭘 찍어요? 나랑 놀아주기나 하지.... 쳇, 미워욧!!
귀를 옆으로 착 뉜 비굴한 표정....
몹시 반가워 뒹굴기 직전의 표정이다. 아주 드물게 짓는....
내 인생에 들어온 네번째 http://blog.daum.net/corrymagic/1211932 견공 반달이 얘기는 짬짬이 계속되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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