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地芚山房

서리산 소풍 1

張萬玉 2011. 4. 5. 11:37

블러그에 몇자 끄적거릴 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끄적거리다 보면 욕심에 끌려 꼴랑 남편 밥 세 끼 챙기는 일마저 번거롭게 느껴질까봐

애저녁에 이 럭셔리한(!) 취미를 딱 끊어버릴 요량이었다.  

하지만 평생 안 해보던 호강(!)의 날은 쌓여가는데, 내 인생에서 이 시간들은 공백으로 남고 마는 것이냐 싶은 안타까움에

막연하게 4월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4월이 되었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나는 것도 아니련만.... ㅎㅎ

어쨌든 기다리던 4월이 왔고 어물쩡거리는 사이에 어느새 닷새가 훌쩍. 오늘부터 간단하게 몇 자씩이라도, 아니 사진이라도 남기려고 한다. 

지난 일들을 더듬으려면 시간이 걸리니.... 가장 최근에 담아둔 이야기단지 뚜껑부터 열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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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집에서 4킬로 정도 떨어진 서리산으로 하루소풍을 다녀왔다.

걸어서도 못갈 거리는 아니지만 산에서 헤맬 거리를 생각하여 축령산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까지는 차로 행차를 한다.

3개월 전에 주민등록지를 옮겨 수동면민이 된 우리는 주민등록증을 내밀고 당당히 무료입장의 혜택을 누린다.

 

우리집 베란다에서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능선.

왼쪽 봉우리가 서리산 정상 오른쪽 봉우리가 축령산 정상인데, 이 두 봉우리를 잇는 능선이 축령산 철쭉길로 알려진 유명한 능선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아래로 보이는 평평한 능선이 더욱 소중하고 친숙한 길....) 

 

능선이 가파르고 암벽코스도 있다는 남이바위 경유 축령산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는 주차장에서 바로 연결되지만 우리는 임도삼거리까지 올라가 왼쪽길을 택한다.

임도삼거리의 오른쪽길은 비교적 얕은 능선에서 시작해서 축령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절골 코스. 

한 달 전쯤 절골 쪽으로 올라가봤는데 눈 녹아 질퍽한 길 때문에 축령산 정상은 바라만 보고...방향을 틀어 양쪽 능선 중간지점의 전망대까지 다녀왔으니

오늘은 왼쪽길로 올라가 서리산 정상을 밟고 전망대까지 갔다가 임도로 내려올 요량이었다. 총 거리 7.1Km

암 환자와 관절이 시원찮은 아줌마는 욕심 내지 말고 쉬엄쉬엄 걷기 위해, 예전엔 그다지 아는 척도 안 했던 야생화에 눈길을 주기로 한다.   

 

 

 

꽁꽁 얼어버린 땅을 가냘픈 고개로 밀어올린, 애닯고 기특한 녀석들...  

너네 이름들은 모른다. 차차 익히자꾸나..(혹시 이름 아시는 분,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

다음에 가면 요넘들이 어떻게 커가는지 계속 찍어볼 생각이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음)

 

얘는 생강나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설마... 생강이 열리는 건 아니겠지? ^^)

 

임도 삼거리에서 서리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더 올라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간이목교를 건너 품이 넓은 숲으로 들어간다.

가파른 콘크리트 길로 이미 올라올 만큼 올라온 뒤라 숲길 오르막은 그저 편안하고 푸근할 뿐이다.

 

'2주 치료, 1주 휴식'을 한 싸이클로 하는 항암치료가 이미 5차를 넘겼다.

6차 치료를 앞두고 휴식기를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는 최선생..  

 

'그래요, 마음 급하게 먹지 말고 지금처럼 뚜벅뚜벅 꾸준히 가자구요.'

 

가파른 구간이라고 해봐야 이 정도...

콘크리트 길이 자연경관 다 해친다고 흉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험한 계곡길을 다스려준 그 길이 아니었으면 우리 같은 노약자가 정상 전망을 누릴 수 있었을까.

 

"여보야, 나 아직 괜찮지?"

 

철쭉동산 정상이란다.

바로 코앞에 있는 화채봉 쪽으로 가보니 미개척구간이라 험준하니 그쪽으로 하산하지 말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우리가 평소에 다니는 야산 능선에서 한 시간 정도 더 진행하면 화채봉 쪽으로 연결될 것 같긴 하다만... 

 

철쭉이 피면 꽃터널이 정말 장관이겠다. 이런 길이 700m나 된단다.

 

길 양쪽으로뿐 아니라 봉우리 전체가 철쭉으로 덮여 있다. 과연 어떤 풍경이 나올지 기대되는군..

5월이 되면 주차장에 차 세울 데가 없어서 입구 한참 아래쪽부터 걸어올라와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하니

우린 이 동네 주민답게 새벽이슬 맞으며 올라와봐야 할 듯....

 

철쭉동산 정상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 서리산 정상이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북서쪽 기슭에는 서리가 내려도 잘 녹지 않아 늘 서리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서리산이라고 불린단다.

 

정상 근처에서 발견한 Hard Rock Cafe. ^^

비를 피하는 건 물론 비박까지 가능할 정도의 오붓한 공간을 품고 있는 이 바위 앞쪽으로 축령산 자락이 넓게 펼쳐져 있다. 

 

 

주차장에서 열 시에 출발했는데 어느새 정오가 가까웠다.

이름 붙은 유명한 산 놔두고 집 근처 야산 낮은 능선 코스가 좋다고 오전엔 뒷산 코스, 오후엔 앞산 코스 돌고 점심은 꼭 집에 와서 챙겨먹는 남편이

오늘은 아침밥상에서 점심 도시락을 주문한다. 갑작스런 주문이라 있는 밥 대강 뭉쳐가지고 왔지만...산 속에서 먹으니 나름 꿀맛이네. ^^  

 

 

서리산 - 축령산 능선 구간의 유일한 불만사항은 질퍽한 진흙길이다. 

유기물질이 흘러넘치는 끈적한 흑토 때문에 내리막길이 조금 위험했다.

이 구간의 양 옆은 억새밭인 듯.

 

 

신갈나무, 층층나무, 산나무, 물푸레나무 등등... 어린이들을 위한 자연학습장으로 꾸며진 길에서 이 어른도 공부 마이 했다. ㅎㅎ

흔히들 말하는 '참나무'라는 나무는 없단다. 다만 참나무류가 있을 뿐인데

참나무류에 속하는 신갈나무는 예로부터 신발 깔창으로 쓰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고

물푸레나무라는 이름은 그 잎을 물에 담가두면 물을 푸른색으로 물들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나. 

 

 

조 아래 뵈는 사거리가 무슨 사거리..인데(억새밭 사거리였나?)

'축령산 - 서리산' 길과 '행현리(가평) -  전망대' 길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행현리 가는 십리 길이 손짓하지만(산 넘어 이웃마을 가는 게 내 취미..^^) 아쉬움을 접고 전망대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어느새 두 시다.

 

 

전망대에 서 있는데 까마귀가 코앞까지 날아든다.

잣나무가 많은 동네라 그런지 이 산에도 그렇고 우리집 앞뒷산에도 새가 무척 많다.

마침 짝짓기를 하는 시절인 모양, 아름답게 지저귀는 정도를 넘어 필사적으로 우짖는 넘들이 상당히 많다.

서울 산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부엉이, 딱따구리 소리도 예사롭게 들을 수 있다.

 

 

정오를 지나면서 날씨가 흐려져 예전에 보았던 깨끗한 전망(잘하면 우리 동네까지 뵈는)을 오늘은 포기해야 했다.

지금부터 5월말까지 그림이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차 매주 한 번씩 오자고 약속은 했지만..

사흘 후면 다시 항암주사 시작이니 약속대로 될지 모르겠다. 우쨌든 꽃 피는 계절이 다 가기 전에 한 두번이야 더 올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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