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회사 업무를 잊지 못하는 남편이 노트북을 하나 구해달라고 했다.
중국에도 쓰던 노트북이 있지만 느닷없는 암 진단에 맨발로 귀국한 터라.. 남편 회사 직원에게 부탁했더니, 노트북과 함께 처음 보는 악세서리를 설치해주었다.
Show IP Plug라는 것인데, 병원에서 유선 끌어쓰기가 용이하지 않거나 무선이 잡히지 않을지 몰라서 가져왔단다.
과연 직원의 예측대로 요긴하게 쓰였던 이 녀석, 퇴원 후 잠시 잊혀졌지만...
이 산골 동네로 이사온 뒤에 다시 우리의 생활필수품으로 컴백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신청하기 전까지 임시로 노트북이라도 쓰려고 IP플러그를 끼웠는데
병원에서와는 달리 wi-Fi가 뜨질 않길래 노트북을 준 직원에게 물어보니 Wi-Fi 말고 3G를 클릭해서 쓰란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걍 시키는 대로 3G를 클릭하니.... 오홋, 그런대로 쓸 만하네.
100메가짜리 메가패스 속도에 비할 수는 없지만, '曰 4메가, 실제로 2메가'였던 중국 인터넷을 쓰던 이 아줌마에겐 꽤 만족스러운 속도였던 것이다.
어느 정도로 만족스러웠느냐 하면...
인터넷과 Qook TV를 신청했더니 설치하러 온 전화국 직원이, 이 동네엔 광케이블이 들어와 있지 않아서 속도가 잘 안 나올꺼라면서
쿡 TV 설치해도 VOD 시청은 불가능한 거 아시죠? 그런다. 속도가 어느 정도냐고 물어보니 3G 속도나 비슷할 꺼라고 해서
"에이, 그럼 인터넷도 설치 안 할래요. 3G 있는데 그냥 그거 쓰죠 뭐" 이러고는 돌려보냈다는 얘기.
그러고는 다섯 달이 지난 시점. 노트북 갖다 준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직 인터넷 설치 안 하셨느냐고.... 크게 불편하시지 않으시면 이제 3G를 유선으로 바꾸시면 어떻겠냐고..
"그 속도나 그 속도나 같다고 해서 그냥 돌려보냈는디요..."
헌데 다음에 이어진 직원의 매우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헉!! 나의 손발을 다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그게요.. 제가 관리하는 비용이 좀 나와서 말이죠...정 불편하시면 계속 쓰셔도 되지만..... "
아니 그러면 그동안 3G를 누르고 룰루랄라 했던 시간 동안 계속 누군가가... 아니 회사에서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단 말씀?
"아이고, 이걸 어째!! 전 그거 Wi-Fi처럼 공짜인 줄 알았어요. 미안해요, 당장 유선으로 바꿀께요. "
비용이 어느 정도 나오는지 물어보니 대충 웹페이지로 2만 페이지 정도까지는 정액제지만 그걸 넘어가면 단가가 엄청나게 비싸다네.
하긴 나도 남편도 4월부터서야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쓰기 시작했으니 그동안은 그리 금액이 크지 않아서 그냥저냥 놔뒀던 모양인데
우린 그것도 까맣게 모르고 노트북에 꽂아 쓰던 플러그를 아예 데스크탑에 꽂아서 마음껏 쓰고 있었으니... 아마 월 30만 원 정도는 족히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마음 편히 쓰게 비용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으라고 해도 절대 안 된다고 말도 안 듣고....
돈도 돈이지만 뒷방노인네 모양 세상 물정 어둡게 살고 있었단 사실이 어찌나 민망하던지...ㅜ.ㅜ
KT에 전화를 했더니 바로 직원이 나오긴 했는데 뭔가 선로 보충공사를 해야 한다면서 (그래도 VOD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속도는 안 나온다고 ㅠ.ㅠ )
다음주 월요일에 다시 방문하겠다며 돌아갔다. 헌데 화요일까지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이기에 방문직원 연락처는 보관해두질 않아서 KT로 직접 연락해보니
상담원 하시는 말씀, 그 지역은 인터넷 설치 불가 지역이란다. 이론이론~~
방문했던 직원이 선로공사 한 뒤에 설치해주마 약속했다고 항의성 목소리를 냈더니 잠시 뒤적뒤적... 그리고는
지금 선로공사가 필요한 가구들의 신청이 한참 밀려 있기 때문에 아마 보름 정도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단다.
휴~ 정보통신강국 대한민국이라지만 아직도 이런 지역이 적지 않구나. (지리적으로는 대도시에서도 지방도로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건만...)
그래서 지금 이 시간도 나는 어쩔 수 없이 3G를 이용해서 글을 올리고 있다. 머지 않아 이 민망한 신세를 면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휴대폰을 바꾸면서 요금체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야 3G의 개념을 똑똑이 알게 된 만옥이...ㅋㅋㅋ
폰도 꽁짜고 데이터요금 정액제로 하면 요금 차이도 크게 안 나는데 왜 스마트폰 안 쓰느냐고 들들볶는 사람들에게
어디 나다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컴퓨터 실컷 쓸 수 있는 사람에게 왜 그게 필요하냐고...
어플이니 트윗이니 카톡이니 떠들어대지만 어차피 콘텐츠가 거기서 거기니, 그런 것들 어케 쓰는지 몰라도 된다고....
휴대폰으로 말하자면 손 안에 쏙 들어오고 손에 익은 내 2006년산 슬라이드폰이 최고라고 고집을 피워왔는데
휴대폰 망가진 김에 스마트폰으로 바꾸겠다는 아들녀석 따라갔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 것도 기기변경 해주세요." 해버리고 말았다.
별로 쓸데 있는 거 아니면 안 키운다는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무단3G 사건으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ㅎㅎㅎ
생활의 대부분을 '소비'에게 점령당해버린 대한민국 사회에서 소비는 이미 '필요에 대한 충족'을 넘어서는... 공기와 같은 '문화현상'이 되어버렸다.
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비밀코드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싶지 않아 멀찍이서 바라만 보던 이 할매도 마지못해 발을 담그기 시작했으니
이 강을 건너가면 어떤 스마트한 소비가 또 기다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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