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地芚山房

다시 달콤한 일상

張萬玉 2011. 8. 15. 08:48

남편의 항암 부작용이 진정되고 난 뒤로는 반달이 안부가 걱정이었다.

2박3일 작정하고 다섯 끼 먹을 만큼 사료를 부어주고 왔는데 졸지에 하루가 더 늘어났으니 배고파 쓰러지면 어쩌나,

매일 저녁 두 시간씩 산야를 뛰놀던 녀석이 사흘 넘게 묶여 있으니... 갑갑해서 미쳐버리면 어쩌나,

평소에도 오매불망 서재 창문만 바라보고 있는 녀석이 며칠째 불 꺼진 창을 바라보고 있을 텐데.. 혹시 동네 떠나가라고 울부짖고 있진 않은지...

퇴원하는 발걸음이 급해지는데 돌아가는 길은 휴가 떠나는 차량으로 맹꽁이 콧구멍처럼 꽉 막혀 있고 차창 밖으로는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

폭우가 쏟아지면 제 집으로 쏙 들어가버리는 겁먹은 녀석의 눈망울이 눈에 선한데... 어쩔 도리가 없구나.

에구, 혹시 사료 부어놓은 거 다 물에 불어터진 건 아닐까.(녀석은 물에 불어터진 사료 절대 안 먹는다)

 

평소에는 좀 막히더라도 1시간 반이면 충분한 거리를 거의 세 시간 걸려 돌아와보니

평소 같으면 차 소리만 나도 뛰어나와 이리뛰고 저리뛰는 녀석이 웬일로 코배기도 안 내비친다. 설마 누가 보신탕 생각이 나서...?

깜짝 놀라 한걸음에 뛰어올라와보니 낙엽과 반달이 털이 배수구를 막아 마당을 완전히 한강으로 만들어놓았다. 

물을 무서워하는 이 녀석, 그리던 주인이 돌아왔어도 감히 나오질 못하고 겨우 한 발을 집 밖으로 내밀어 깊이를 재어보며 꼬리만 떨어져나가라 흔들고 있네그려.

얼른 배수구부터 치우니 물이 소용돌이를 치며 빠져나가면서, 이미 폭우에 분쇄되어 부분적으로 칼라만 남기고 있던 며칠간의 똥무더기까지 싹 씻어냈고

뛰쳐나온 반달이는 반가움에 거의 미칠 지경....

예상대로 고스란히 비를 맞고 불어터져버린 사료를 털어내고 새로 밥부터 챙겨줬건만 밥그릇은 쳐다보지도 않고 길길이 날뛴다. 

천하에 가련한 것이 情인가 하노라. ㅜ.ㅜ         

 

 간만에 반달이 사진 몇 장..

개에게 눈썹도 있구나. 사마귀도 있고.... ㅋㅋㅋ 새로운 발견! 

 

5월초 다사로운 햇볕 아래 낮잠을 즐기고 있는... 그야말로 오뉴월 개팔자.

모기장 너머로 찍은 사진이라 흐릿한 것이 오히려 낮잠 분위기를 더 나른하게 만들어주는군. ^^  

 

6월. 뙤약볕이 너무 강하길래 골프우산으로 대강 그늘막을 만들어주었더니 쏙 들어가서 꼼짝 않는다.

 

7월 중순쯤 찍은 가장 최근의 사진. 제법 늠름해졌구나.

그래, 이젠 너도 다 컸으니 3박4일 홀로 집지키기에 익숙해져야 할 꺼야.

 

 

집이 이렇게 편할 줄이야.

오랜만에 꿈도 없이 푹 잤다. 병원에 있을 동안 쑤시던 어깨도 거짓말처럼 나아버렸다.

남편도 밤 열 시부터 아침 일곱시까지 한 번도 안 깨고 숙면 한 뒤에 더없이 만족한 얼굴로 일어나

백미가 없어 현미로 오래오래 쑤어준 죽 한사발 깨끗이 비우고 콧노래를 부르며 산책을 나갔다.

반달이는 쥔님 어깨높이까지 길길이 뛰어오르며 한껏 신이났고

아, 이 게으른 주부조차도 오늘만은 집안일이 즐거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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