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地芚山房

Happy Anniversary

張萬玉 2011. 8. 10. 23:15

 

 

지난 일요일 저녁...

생전 안 하던 짓이었지만 얼떨결에 해보니 나름대로 즐거운 짓이었다.

나에게 결혼예복을 빌려줬던 친구 덕분이다.  http://blog.daum.net/corrymagic/1487739

올해로 29주년인데 30주년이 되는 내년에도 이 기념일을 축하할 수 있게 된다면 제대로 친구들을 초청해서 놀아보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오늘은 내 귀빠진 날,

생일 전날인 어제 아들넘이 케잌 사들고 왔길래 또 잘랐다.

처음으로 아들넘에게 생일축하 받아보니 멋적기도 하고 으쓱하기도 하다.

 

오늘까지 이 세상을 53년 살아냈다.

태어나서 만 스물 네 살까지 부모님과 살았고.... 앗, 그러고 보니 피를 나눈 가족들보다 이 남자와 더 오랜 세월을 살았구나.

(장맛비 갠 날 폰카로 찍은 사진. 면도도 안 한 부스스한 사진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이니 이쁘게 봐주시길..)

 

남편의 선물은 '우리가 함께 있을 시간'이었다.

오늘 병원에 가서 2차 항암 스케줄을 받은 것이다.  

힘들긴 하겠지만, 이로써 함께 산책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최소한 몇 달은 벌겠지.

 

항암치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고, 얼마 전까지 나 역시도 그러햇지만 이제 나는 항암치료에 감사한다.

현대의학이든 대체의학이든 정답을 내줄 수 없는 4기암 환자들의 케이스를 알게 되면 될수록, 항암치료의 한계 못지않게 그 의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암의 종류에 따라 각 개인의 체질이나 병기에 따라 달라지는 수십 수백 가지의 경우는 내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나, 적어도 남편의 경우 그렇다는 얘기다.

 

남편처럼 작년 12월에 췌장암 4기 선고를 받았지만 항암치료 3회 만에 내성이 생겨 치료를 포기했다는 어떤 분, 

(민간요법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항암을 포기한 후로 통증과 체중감소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생존기간으로만 보자면 남편과 똑같이 투병 8개월째... 그러나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큰 차이가 있지 않은가. 

항암치료 직후 2~3일 피로감에 시달리고 요즘 들어 (항암 부작용인지 암의 작용인지 모르지만) 이가 약해져 음식물 섭취에 약간의 괴로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남편은 세 끼 식사를 완수하고 폭우가 퍼붓지 않는 한 하루 두 번, 세 시간 반 정도의 산책을 놓지 않고 있고

두어 시간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나가수에 열광하고 내 되지도 않는 우스갯소리에 빵 터져줄 정도로 명랑지수를 유지하고 있다.   

치료 당시엔 몰랐지만 치료를 쉬고 있는 요즈음에서야 새삼 고마움을 깨달아 감사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제법 오래 끌어주었던 제1차 항암치료에게, 다행히도 항암제와 잘 맞아주고 그래서 잘 버텨주었던 남편에게...  

 

이번 치료는 2박3일 입원을 해야 하는 치료이다.

무슨 약인지는 모르지만 (의사샘이 어려워서 차마 묻질 못햇다... ㅜ.ㅜ)  40몇 시간 동안 주사를 맞는다고 했다.

새로운 약이니 한동안 괴로울 테지만.... 아니 혹시 지난번엔 없었던 부작용들이 나타나 훨씬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남편은 잘 참아낼 것이다.

부디 체력 크게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를... 그러다가 서너 달 후에 있다는 임상에도 참여하고....

그렇게 그렇게 잘 버티다 보면 무슨 수가 나겠지. 

내일이면 입원실이 난다고 하니 반달이 녀석 굶지 않도록 사료 한 다라이 부어놓고 가야겠다. 

 

오늘처럼 매일매일이 복 받은 날인 것을 깨닫고 살면 진짜로 복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Happy Anniversar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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