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일기
목요일 2시에 떠나 일요일 오후 2시에 돌아왔다.
2인실을 배정받아 들어간 시간이 오후 4시 반, 저녁식사 신청 시간이 늦었다고 일단 저녁부터 해결하란다.
잇몸 통증 때문에 얼마 전부터 죽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 2층에 있는 죽집에서 호박죽을 사다주었다.
우리보다 한 시간 먼저 입주하셨다는 룸메이트는 올해 5월에 간 육종암 판정을 받은 내 또래의 아저씨.
폐로도 전이되어 색전술과 항암주사를 번갈아 하고 있는 중인데 색전술은 아프지만 항암주사는 후유증도 별로 없고 견딜만 하다고 하신다.
외모로 보면 머리도 박박 깎은 데다 안색도 검고 많이 말라 병색이 완연해 보이는데 식사도 잘 하고 명랑하고 컨디션도 꽤 좋아 보이신다.
아버님과 두 형님을 모두 간암으로 잃었다고, 자기 병은 아무래도 유전인 모양이라는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셔서 당황했다.
식사를 마치고 8시부터 주사에 들어갔는데...
까칠한 주치의 샘이 무슨 주사를 맞을 껀지 얼마 동안 맞는 건지 알려주질 않아 (입원지시서에는 3일 이내..라고만 적혀 있었다)
미리 여기저기 뒤져 2차 항암의 경우 어떻게들 치료를 받았는지 읽어보긴 했지만
췌장암 쪽 약이 별로 없으니 다른 쪽 항암제를 시험적으로 땡겨다 쓰는 것이기 때문에(그래서 이번 치료의 경우 보험이 하나도 적용 안 된다) 추측에도 한계가 있었다.
미리 좀 알려주면 어디 덧나나..(하긴 미리 안다고 뭐 달라질 게 있겠냐만..)
나의 귀동냥에 의하면, 항암 칵테일요법은 대개 폴폭스(옥살리플라틴 + 류코보린+ 5-fu) 아니면 폴피리(이리노테칸 + 류코보린 + 5-Fu)가 될 꺼라고 했는데
어째 남편에게 주는 주사는 네 종류나 된다.
옥살리플라틴 2시간, 이리노테칸 2시간, 류코보린 2시간을 맞고 나니까 새벽 2시다.이어서 병아리 눈물 만큼씩 떨어지는 5-Fu 주사 시작.... 다 맞으려면 46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따져보니 총 주사시간이 쉼 없이 52시간이다. 휴, 징그러워~
밤새 간호사가 들락날락하니 잠 설치는 거야 각오했던 바지만...
1차치료 때와는 달리 항암제 부작용들이 선을 보이기 시작하니.... 실제로 감당해야 할 걱정보다도 더 넘치는 걱정 때문에 거의 날밤을 새우고 말았다.
이리노테칸의 부작용(전해질 대사 이상) 때문에 밤새 땀을 엄청나게 흘리고 그것도 모자라 화장실을 수도없이 들락거리며 물폭탄을 쏘아대고
아침이 되어 평소처럼 아침 먹을 준비단계로 야채스프를 줬는데 그놈이 속을 뒤집었는지 몽땅 토하기까지....
침대부터 화장실까지 질펀한 오물을 치우며, 그동안 내가 한 건 간병도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본격적인 간병은 이제 시작이구나 싶은게 가슴이 콱 막혔지만
한편으론 이상하게도 대담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 항암제가 됐든 암세포가 됐든 너희가 너희 할일을 하고 있다면 나도 씩씩하게 내 할 일을 할 것이다....
설사와 구토, 발열.... 모두 신속한 對症처방에 힘입어 오전중에 대강 잡혔고 5-Fu는 농도를 조절해서 그런지 더 이상 남편을 괴롭히지 않았다.
따뜻한 흰 죽과 따뜻한 숙면으로 오전 한나절, 지친 몸을 다스린 남편은 입원 하루 만에 입원 전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이제 2주에 한 번씩 이런 입원치료를 하게 된다.
일단 세 차례 한 뒤에 CT를 찍어 항암제의 효과를 확인해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으면 거기서 그만두고, 긍정적이면 12회까지 간다고 한다.
물론 12회까지 버텨내려면 잘 먹고 잘 쉬고 세균감염을 피해서 건강을 어느 정도 유지해줘야 함은 물론이다.
레지던트 샘에게 이 치료가 폴폭스냐 폴피리냐 물었더니 폴폭스와 폴피리를 결합한 조금은 새로운 시도라고 한다.
남편이 면역력이 좋은 편이라 주치의 샘이 의욕적으로 시도하시는 거라면서 (그래서 미리 안 알려주신 건가?)
꽤 힘든 처방인데도 이 정도면 잘 견디고 있는 거라고.... 힘 내라고 격려해주신다.
게다가 부작용은 주사를 맞는 동안에 주로 나타나기 때문에, 퇴원 후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관리만 잘 해주면
오히려 예전 항암치료 때보다 편할 수도 있다고 하셔서 크게 안심이 된다.
뒷풀이
1. 항암 부작용과 그에 대한 대응
* 설사 : 옥살리플라틴의 작용은 처음보다 오히려 4차 정도 되어서야 설사가 심해질 수 있다.
설사시에는 2시간마다 1알씩 복용하고 (설사가 그칠 때까지) 8알을 복용해도 그치지 않을 정도가 되면 119 타고 응급실로 오란다.
설사가 심할 때 : 자극이 적고 소화가 잘 되는 유동식(흰죽이 가장 좋음), 과일통조림이나 바나나, 감자 등을 섭취하고 이온음료로 전해질 대사를 도와줄 것.
* 2차 이후에 나타나는 손발저림 현상 : 잘 관리하지 않으면 고질병이 되므로 손발 차가운 것을 조심할 것.
여름이라도 양말을 착용하고 냉장고를 열 때는 장갑을 착용할 것. 자주 마사지해주어 혈액순환을 좋게 할 것.
찬 음료나 찬 음식을 피할 것 : 식도가 상할 수 있음
* 구내염이나 잇몸통증, 구강건조
생리식염수로 가글(30초 이상)하고 맹물로 헹구지 말 것. 가글 후 30분 이내에는 물이나 음식 먹지 말 것. 하루 5회 정도
구내염 발생시 헥사메딘이나 베타딘으로 가글해도 되지만 가그린 등은 쓰지 말 것. 프로폴리스 분무 OK
* 구토 :예방을 위해 처방된 진토제를 미리 3~4일 복용(식사 30분 전)
* 발열 : 38도 이상 되면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올 것
* 백혈구 감소
퇴원 후 5일 후부터 12일후까지 급격해지니 손 씻고 양치질 잘 해줄 것. 사람 많은 곳에 갈 때는 마스크 착용
날것 먹지 말고 상처 나지 않도록 주의, 감염자 접촉금지
참고 : 네 가지 주사약의 부작용은 다음과 같다.
옥살리플라틴 : 손발저림, 탈모, 골수기능 저하, 구토, 설사, 구내염
이리노테칸 : 골수억제, 심한 설사, 오심, 구토, 복부경련,홍조, 발한
류코보린 : 과민반응, 소양증, 홍반, 두드러기, 천명음(이 약은 항암제가 아니고 5-Fu에 대한 프로토콜로 사용)
5-Fu : 골수억제, 설사, 구강과 위장의 궤양, 탈모, 피부 침착, 오심
2. 영양관리
열흘 전쯤부터 잇몸이 아프다며 무른 음식을 찾기 시작했는데, 일단 죽을 먹기 시작하면 소화기능이 퇴화할까봐 미온적으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이번 입원을 계기로 (레지던트 샘과 상담한 결과) 정말 내키지 않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환자 상태에 맞추기로 결심했다.
암만 좋은 걸 줘도 잘 안 먹고 먹더라도 소화를 못시키면 말짱 황이니 뭐.
- 잇몸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밥을 죽으로 바꾸고 반찬은 부드러운 계란찜, 두부, 생선구이, 무른 야채(열매채소) 위주로 준비한다.
- 잎채소는 섬유소가 너무 많지 않은 것으로 잘게 다져서 스프나 죽 건더기 형태로 사용.
- 과일은 당분간 시지 않고 무른 것(토마토, 복숭아, 노란 키위, 바나나)만 준다.
- 야채와 과일 섭취량이 줄어들 모양이니 그 보충으로 종합비타민제를 복용한다.
- 항암음식이라도 이제 섭취하여 치료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갈길이 멀다. 차라리 잘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조리한다.
(비위가 가라앉을 때까지 청국장, 야채스프는 당분간 쉰다.)
- 수분섭취량을 늘이도록 계속 협박한다. (너무 차게 마시지 말 것)
- 식욕부진이 오면 식욕촉진제를 처방받을 것
- 근육, 체중감소 방지용 영양음료(그린비아나 엔슈어)를 간식으로 이용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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