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1차 항암치료 후
이번 항암치료 후 회복기의 문제점은 설사와 턱관절 및 잇몸통증 두 가지였다.
시도때도 없이 엄습하는 설사공격을 지사제로 일단 막아둘 수는 있지만, 일정 기간 막아둔다고 해서 설사가 정상적인 변으로 변하지는 않기 때문에
변비와 설사를 반복하는 악순환이 닷새 정도 계속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항암치료 전부터 뻑뻑해진 턱관절 때문에 입을 잘 벌리지도 씹지도 못하는 데다 잇몸까지 들떠
계속 죽과 무른 반찬만 조금씩 먹다 보니 그새 몸무게가 1.5킬로 정도 줄었댔는데
이번 항암제의 부작용 역시도 시일이 지나면 완화되는 모양.... 이번주 들어서며 설사도 완전히 잡혔고
턱관절도... 혹시나 싶어 침을 맞아봤더니 훨씬 좋아져서(잇몸 얼얼하던 것도 덩달아 좋아져) 주초부터 밥(백미로 지은 질퍽한 밥이지만)을 먹고 있다.
씹는 문제가 완화되니 입맛도 돌아오는 듯 밥도 꽤 잘 먹고 오후엔 간식도 먹겠다고 한다.
몸무게... 정말 정직하다. 며칠 전부터 몸무게가 몇백 그램씩 돌아오더니 오늘 아침 드디어 평소의 체중치가 나왔다. 만세!!
몸무게 사수!! 이거야말로 환자에게 만큼이나 간병인에게도 중요하게 부과되는 과제.
이번 주말에는 다음주에 있을 항암전쟁에 대비한 고단백식을 준비해야겠는데.... 설사야, 당분간만은 제발 남편을 좀 잊어다오.
2. 동병상련
줄곧 비어 있던 1층에 드디어 새 이웃이 들어왔다.
60대 초반의 내외인데 남편이 폐암에 걸려 요양차 이사왔다고 한다.
오후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우리를 주인아저씨가 불러세우며, 3층아저씨는 췌장암인데도 이렇게 건강하다고 소개를 하자 뛸듯이 반가워한다.
(에휴, 서글픈 반가움이라고 해야 하려나. ^^)
안다, 그 심정.... 폐암 판정을 받은 게 지난달이었다니 지금쯤이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 많은 시간일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선배(!)들과 선을 대어보려고 애쓰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지.
1년 전부터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결리고 숨도 차고 해서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다가 (심지어 몇 달간은 결핵치료까지 받다가)
결국 조직검사를 하고 나서야 폐암 판정을 받았단다. 그 사이에 뼈로 전이되어 통증패치까지 붙이고 있다.
게다가 암 판정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충격 때문인지... 몇 마디에 한 번씩 '죽음'이란 단어가 튀어나오고
말 끝마다 묻어나오는 초조함과 신경질을 감추지 못한다. 아줌마도 벌써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도무지 무슨 도움말을 건네야할지 모르겠다.
그저 잘 먹고 같이 운동 열심히 다니자는 말 밖에....
다음날 아침, 나는 손님이 온다고 해서 남편 혼자 두 내외를 앞산으로 데려갔는데,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돌아왔다.
앞산은 능선으로 올라서는 초입조차도 오르막을 별로 느낄 수 없는 온순한 산인데.... 쉬엄쉬엄 500미터도 채 못 가서 주저앉더란다.
길 옆 바위에서 쉬고 있을 테니 혼자 다녀오시라고 해서 혼자 더 가다가, 원래 가던 코스를 다 걸으면 너무 오래 기다릴 것 같아 절반만 갔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앞산까지 차로 이동하니 차 없는 양반들을 데려가고 데려오자면 남편 운동량을 못채우거나 그 내외가 산 속에서 하릴없이 기다려야 하니 어째야 할까 싶었는데
내외분이 먼저 말씀하신다.
암만해도 지금으로선 앞산에 같이 다니는 건 무리가 있으니 체력을 키우면 그때 같이 다니기로 하고, 저녁에 집 바로 뒤에 있는 뒷산이나 한번 같이 가달란다.
그러나 뒷산은 초입 50미터 정도가 난코스(!)다. 그러나 바로 평지가 나오기 때문에 300미터 지점에 있는 무덤가 잔디밭을 목표로 잡고 출발했는데
휴~ 기다시피 그것도 아주 쉬엄쉬엄 100미터 정도 오르고는 도저히 못가겠다고 주저앉으신다. 호흡기쪽이라서 더 힘드신 모양이다.
아주머니도 그 정도일 꺼라고는 예상 못했었는지 표정이 완전히 울기 직전이다.
정말 가슴아프고 민망해서 두 내외를 바로 볼 수가 없다.
산은 일단 밀어두시고 마을산책부터 시작하시라고 권하려다가.... (우리집까지 올라오는 언덕이 또 보통 언덕인가)
우리도 운동 처음 시작할 땐 힘들었는데 공기좋은 동네에 살다 보니 체력이 좋아진 거라고,
우선 주인집 마당부터 몇 바퀴씩 돌다가 힘들면 주인집 정자에서 쉬고, 그러면서 체력이 회복되면 그때 같이 다니자고 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했던가.
8개월째 한결같이... 꾸준히 운동하고, 밥 세 끼 꼬박꼬박 먹어주고 몸이 괴로울 때도 신경질, 짜증 잘 참아주는 남편이 새삼 고맙고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혹시 병세가 더 악화되어 나를 훨씬 힘들게 하더라도 이 마음을 잊지 말고 되새겨 보리라.
아무튼... 아랫집 아저씨가 하루빨리 체력도 키우시고, 무엇보다도 마음을 좀 잡으셨으면 좋겠다.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여러 번 죽고, 죽음을 잊고 살면 단 한번 죽는다."
어디선가 읽은 이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은데 차마 전할 수가 없구나.
3. 성균관 스캔들
두 차례의 휴학, 군 입대, 편입 등 우여곡절로도 모자라 졸업하면 취업 안 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던 아들네미가
130대 1의 경쟁을 뚫고 중견기업에 입사하여 잠시 집안의 기쁨이 되더니.... 퇴사해야 졸업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넉 달 만에 사표를 던지고 돌아왔다.
어찌됐든 결국 사각모를 쓰기는 쓰는구나. 9년 만이다.
어느 길로 갈지, 전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나도 모르겠다. 세월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고.....뻔히 안다고 생각했던 자식놈도 변하여 제 뜻대로 움직이는 한 인간이 되어버렸으니..
너의 행복을 담보해주는 게 어떤 길일지 예상도 권유도 할 능력이 없구나.
그저 행복하게, 자긍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너무 힘들지 않게 뚫리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
4. 요즘 하늘풍경, 증말~~
새벽에 안개가 끼면 종일 햇살이 좋다지.
안개를 걷어내는 아침햇살에 마을이 생생하게 깨어나고
오늘 하루 날씨가 좋을 꺼라는 예감은 온몸에 깃들어 있는 기쁨세포들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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