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지도 거반 두 달이 되어가는군요.
그동안 여러 통로로 안부를 물어주신 벗님들, 죄송합니다. 제 마음이 가을을 타느라고 잠수가 좀 길어졌네요.^^
그간에 있었던 크고 작은 사연들은 이제 지나간 안부가 되어버렸으니 그만 skip해버리고 축령산의 가을 소식이나 전할까 했지만
괴로운 시간들도 내 인생의 일부라고 결심하고 간단히 적어둡니다.
사실은 쓰기 싫어서 오래 묵혔던 얘기들입니다.
# 항암치료 포기
3박4일의 입원치료가 끝나면 열흘 가량의 짧은 휴가 동안 닭발 삶은 물 마시고 고단백 식품 섭취하고 벌침 맞고....
주치의 선생님의 백혈구 수치 점검을 통과하면 다시 입원실이 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세 차례의 항암치료 후
드디어 CT를 찍었는데.....결과는 말할 수 없이 실망스러웠다.
원발암은 6센티에서 8센티로 커졌고 0.5~1센티 정도였던 간 전이 암세포도 4센티까지 자랐을 뿐 아니라 새로 전이된 세포도 한 두개 보인다고 한다.
특히 종양지수.... 기존에 쓰던 항암제를 포기하게 만든 수치가 3400이었는데 2차 항암 후엔 15900으로, 세 번째 항암 후에는 21000까지 올라갔다.
이상한 것은, 예전처럼 앞이 캄캄하거나 분통이 터지거나... 이제 앞으로 어떡하지, 가 아니라
약을 바꾸어 치료하기로 한 이래로 무겁게 들고 있었던 불길한 예감을 탁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에잇, 이제 암이 커지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말고 하늘이 살려주시는 날까지 최대한 좋은 컨디션으로 즐겁게 살자고~ " 하며 허허 웃는 남편을 보니
참 별게 다 이심전심이다 싶은게 서글프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사실 웃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있을까.
상황이 이쯤 되어야 흔히들 말하는 '마음을 비운다'거나 '암과 싸우지 않는' 경지가 가능해지는 것 같다.
이런 경지에서는 크게 감사할 이유도 찾아낼 수가 있다.
주치의 선생님 말씀이, 데이터로 보자면 지금쯤 말기에 겪는 통증 등 암성 증상들로 고생을 할 텐데
암세포가 신경을 건드리거나 장기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위치를 피해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고생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니...
비록 헤어스타일이 골룸처럼 변해버렸어도 까이꺼~ 무시하고 씩씩하게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지난 9월 11일부터 10월 12일까지의 상황.
# 삼차신경통 시작
암세포들도 항암치료 포기를 알아챈 것일까,
9월 29일에 마지막 항암주사 바늘을 빼고 10월 12일에 CT 결과를 확인했으니, 예전 같으면 항암제의 부작용에서 벗어나 컨디션이 살아나는 시점이겠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2차항암의 끝을 선언한 그날부터 끔찍한 통증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이 통증의 조짐은 8월초부터 시작된, 잇몸통증으로 오인했던 그 증세였다. 입을 크게 못 벌리고 음식을 씹지 못하게 했던....
잇몸염증이나 턱관절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치과를 거쳐 (문제 없다고 함) 한방병원을 거쳐 (이틀에 한 번씩 석 주 가까이 침을 맞았으나 큰 차도가 없었음)
생벌침까지 맞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하루빨리 턱관절, 혹은 근육이 풀려 죽이 아니라 밥을 먹겠다는 게 치료의 목표였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항암포기를 결정한 날 저녁부터 묵직했던 통증이 쏘는 듯한 통증으로 변해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사나워지면서 뒷머리와 정수리까지 공격해오는 통증은 간헐적인 비명을 유발하면서 집안 분위기를 순식간에 먹구름 속으로 몰아넣었고
2차 항암 이후로 내리막길을 걷던 체력조차 눈에 띄게 떨어지면서 우울한 예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 옆에서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던 며칠이 지난 뒤
지인으로부터 혹시 턱관절이 아니라 안면신경통 아니냐는 얘길 듣는 순간 이거다 싶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남편의 증상이 안면신경통의 일종인 '삼차신경통' 증상과 매우 유사한 듯했다. http://www.9dragons.co.kr/index.php
병명을 알았으니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해야겠는데 외래진료일은 아직도 닷새나 남아 있었다.
우리는 2차치료의 종료를 사실상 항암치료 종료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긴급상황이 오기 전에는 병원에 더 올 일이 없을 꺼라고 생각했지만
확률이 아주 낮긴 해도 써보지 않은 항암제가 하나 더 남아있으니 그것으로 3차 치료를 이어갈지 최종적으로 생각해보라고 하여
2주 후로 외래 날짜를 잡아뒀던 것이다.
헌데 외래진료일까지 견딘다고 해도 당장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정밀검사를 받은 후 그 결과에 따라 치료를 하게 될 테니
검사날짜 예약까지 대엿새, 결과 나올 때까지 대엿새... 하다 보면 다음달이나 되야 치료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남편의 상태는 하루하루를 넘기기가 힘겨울 지경이니
주치의의 지휘를 받기 전에라도 뭔가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다.
은혜로운 인터넷 검색의 도움으로 찾아낸 곳이 삼차신경통 치료를 전문으로 한다는 M한의원 체인점의 남양주지점...
그간의 경험상 한방치료가 양방치료와 병행하더라도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과, 물리치료를 받게 될 테니 집과 가까운 곳이 좋겠다는 점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 한방과 양방, 누가누가 잘할까
외래진료 날, 3차 항암 얘기는 뒤로 미뤄졌고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한 여러 조치가 취해졌다.
주치의 샘은 삼차신경통이 그리 흔한 병은 아니라면서 신경과뿐 아니라 (뜻밖의) 이비인후과 쪽의 진료까지 의뢰해주었다.
짐작컨대 처음에 잇몸 통증이 있었던 사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이 안면근육 쪽으로 번졌을 가능성까지 점검해보자는 취지인 듯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일반적인 진통제와 소염제, 위장약, 구강세척제 등의 땜빵식 처방과 함께 목에 대한 CT와 MRI 촬영을 주문했고
신경과에서는 삼차신경통에 사용하는 약물인 테그레놀을 처방해주면서 머리에 대한 MRI 촬영을 주문했다.
예상대로 촬영 예약은 11월초까지 밀려 있어 역삼동에 있는 건강검진센터 쪽으로 부탁하여 나흘 뒤로 겨우 예약을 해두었다.
우리가 의사들에게 말 못하는 고민은, 통증의 원인이 무엇인가는 둘째문제고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한방 치료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을 때, 너무 아파서 침을 맞고 있다는 얘길 했더니 표정이 딱 굳어지면서
"어쩌면 그게 통증을 더 심하게 만들었을 수 있어요. 절대 하지 마세요." 그러길래 아차 싶어서 신경과에서는 아예 입도 뻥긋 하지 않았지만
물리치료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의원에서도 약을 지어줘서 먹고 있는데
신경과에서 처방한 약은 삼차신경통 증상을 치료하는 기본약물이라니 안 먹을 수도 없고 (이비인후과에서 준 약은 안 먹을 작정이지만)
같이 먹어도 되는지, 아니면 한의원 약을 잠시 중단해야 하는지....왜 이런 문제를 약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들이 고민해야 하는지 어이가 없더군.
결국 양방 의사들에 비해 유연하게 느껴지는 한의사 선생님께 물어 병행해도 문제 없겠다는 한말씀을 들은 후에야 두 가지를 함께 복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주부터 시작한 한방치료가 (일시적일지는 모르나) 가장 참기 힘든 통증 하나를 조금은 완화시켜주었기 때문에, 혹시 안 된다고 하면 MRI 촬영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방 치료만 받을 생각이었다. 남편은 통증이 웬만만 해도 각각 일주일 정도씩 복용해서 한방이 나은지 양방이 나은지 실험해볼 텐데 아쉽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삼차신경통을 유발한 원인이 구조적인 문제(종양, 염증, 혈관 등이 삼차신경을 누르거나 괴사시킨 경우)라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암 환자에게는 이를 뽑는 정도의 간단한 수술도 쉽게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원인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증상 치료밖에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방이면 어떻고 양방이면 어떠랴. 양방에서 쓰는 약물도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간이나 신장에 문제를 일으키는 독한 간질약이라고 하지 않더냐.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아줬으면 좋겠다. 하루라도 빨리....
여전히 음식을 우물거리기만 해도 골이 때린다고 밥상 앞에서 겁부터 내는 남편을 위해서....
죽 먹으면 체중이 빠지기 때문에 어떻게든 유동식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영양 있고 맛나고 소화 잘 되는 밥말이용 국이 뭘까, 오늘밤도 잠 못 이루는 나를 위해서...
요즘은 정말이지 암 걱정이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안 아프고.... 웃으며 앞산 산책을 즐길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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