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地芚山房

이런 치료, 저런 치료

張萬玉 2011. 11. 25. 21:04

#1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난 뒤로는 이제 병원 갈 일 없겠구나 쓸쓸하였는데

한동안, 그것도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병원출입을 하게 됐다.

 

지난 여름부터 입을 못 벌리게 하고 음식을 못 씹게 하던, 그리고 결국엔 골 때리는 고통으로 발전하여 치를 떨게 만들었던 녀석의 정체는 뼈.전.이.    

7개월 넘게 췌장과 간, 복강 내 임파절에만 머물러 있던 게 항암약물의 저지선이 무너지니 여기저기 활개를 치고 다니는 모양이다.

PET CT 결과를 보니 간 쪽도 더 많아졌고 복막과 골반뼈, 그리고 턱뼈까지 침범했다. 

두경부암 선생님은 현재 상태에서 수술하는 것은 고통만 줄 뿐 의미가 없으니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원래 치료를 받던 종양내과 선생님께로 가라고 한다.  

 

한 달 만에 만나는 종양내과 선생님... 원체 '용건만 간단히' 하는 분인데 웬일로 오늘은 '어디는 괜찮아요? 어디는 안 아파요?' 하면서 얼굴에 표정까지 내보이신다.

여기저기 굉장히 아플 텐데 이 정도니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식사도 힘들 텐데 체중이 별로 안 빠진 거 보면 노력 많이 하는 것 같다... 

특히 폐가 여전히 깨끗한 게 놀랍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두통에 대해서는 방사선 치료를 해보라고 권한다.

암세포를 없애려는 방사선 치료는 현재 상태에서는 무리이고 의미도 없지만, 통증관리 차원에서 하는  약한 방사선 치료라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으며 

3~4개월 정도는 통증없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방사선 치료는 매일 10분씩 열흘간 하게 된다.

어제 치료계획을 짜기 위해 CT를 찍었고 오늘 다시 와서 작성된 지도가 정확한지 확인한 뒤에 다음 월요일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나도 매일 3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지만 본인은 (경미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방사선이니) 부작용에 시달릴 테니... 쉽지 않은 2주일간이 되겠다.

그러나 일단 처방해준 진통제(울트라셋... 만성 중증 통증에 사용하는 비마약성 진통제라고 한다)가 두통을 웬만큼 다스려주어 그나마 다행이다.

진통 지속효과는 열두 시간이라는데 열 시간 정도는 확실히 버텨준다. 고맙게도 이틀째 숙면을 하고 있다.

 

# 2

어제 CT를 찍기 전에는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 갔었다.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때였다. 해마다 연말에 중국, 대만에 있는 파견직원들이 모두 귀국하여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 계획을 발표하는 '三國회의'가 열리는데

(중국 건강검진기관에서 암이 의심된다는 통보를 받았던 게 삼국회의 하루 전이었다. 그때 남편이 들어왔다가 구로병원에서 확인차 CT를 찍었지.)

남편이 중국 회사 사정도 궁금하고 함께 일하던 직원들도 보고 싶다고 해서 갔던 건데.... 우리 온다는 소식을 들은 회장님께서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신 거다.

전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로패 수여식이 열렸고 해외파견 직원들과 임원들을 위한 오찬이 마련되었다. 

식사 못하는 남편을 위해 특별히 맛난 죽도 준비되었다.

직원들에게 '체력은 아직 썽썽하지만 투병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인사하는 남편, 

요 며칠 고통과 수심에 가득했던 얼굴에 오랜만에 밝은 빛이 난다. 어떻게든 힘을 주려고 애쓰시는 회장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빛나게 살 수 있도록 옆에 있는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

 

투병생활중에 증상 만큼이나 환자를 괴롭히는 또다른 괴로움은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인 듯하다.

6월부터인가..? 남편이 짬짬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산책을 하루 한 번으로 줄인 뒤부터는 두 시간 이상 컴퓨터에 붙어 앉아 있는 날이 많아졌다. 자신의 60평생을 돌아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손자에게 읽히라고 해서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했는데,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보니 그런대로 생생한 게 혼자 읽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길래

다 쓰기만 하면 책으로 엮어서 그 책에 나오는 인연들과 투병중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정표로 드리겠다고 했다.

그 체력으로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을 진짜 다 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고 진심 반 격려 반 뱉은 말이었는데... 

정말 다 썼다. 책으로 엮으면 300페이지 정도 나올 것 같다.

아픈 것도 어째주지 못하고 먹지 못하니 음식 뒷바라지라고 별로 해줄 것도 없어 안쓰럽고 민망하던 차에 내게도 기회가 왔다.    

나중에 은퇴하면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들을 엮어서 좋은 책 하나 쓰고 싶다고 하던 양반이었으니

생각을 갈무리할 체력이 안 되어 자서전(!)에 그치긴 했지만, 그래도 이것이 남편의 작은 기쁨이라도 되어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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