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오세아니아

여행 속 여행 2 - 오션파크 / 란타오 섬

張萬玉 2013. 2. 3. 08:38

홍콩여행, 하면 대개 2박3일이나 3박4일에 끝내버린다고들 하길래 홍콩을 돌아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들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심신 모두 바삐 돌아다닐 상태도 아니었고 홍콩에서 주로 한다는 쇼핑에도 별 취미가 없는고로, 숙소 부근인 침사추이나 배우들이 산다는 해변동네 어슬렁거리다가 그럴싸한 딤섬집에서 한가한 오후를 즐길 양이었다.

헌데 바닷속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바닷가 출신 후배가 이끄는 대로 나섰다가 홍콩에서의 첫 일정을 바닷속에 풍덩 담가버렸다.

놀이공원도 수족관도 다 아이들 것인 줄 알고 오래도록 잊고 살던 내게, 아직도 날뛰고 싶은 아이가 내 속에 살고 있음을 일깨워준 즐거운 나들이였다. 

 

# 센트럴에서 애드미럴티까지

원래 내가 세웠던 계획은 모디로드에 있는 침사추이 동부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서 973번을 타고 스탠리마켓까지 뻗쳤다가 리펄스 베이 거쳐서 오후쯤 오션파크에 도착, 밤까지 놀고 오는 것이었다.

헌데 아침 먹을 데 찾는답시고 동네골목을 이 잡듯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30분 가까이 걸리는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갈 여유가 없었다. 

일단 MTR을 타고 호텔 인포메이션이 알려준 대로 센트럴(中環) 역으로 갔는데...

사방팔방 찾아도 973번 버스는 없다. 다시 MTR을 타고 애드미럴티(金鐘, 홍콩말로 깜종) 역으로 가란다. 

한 정거장을 뭘 타냐, 일부러 구경도 다니는데 싶어 걷기 시작. 그러나 그건 도무지 사람이 걸을 길이 아니었다. 

멀기도 멀지만(일반 정류장의 세 배쯤?) 간선도로를 따라 걷는데도 도보가 끊기는 구간이 부지기수였다.

길이 끊기니 뻔히 갈 길을 보고도 ㄷ자, ㅁ자로 몇 번씩 길을 건너가야 했다. 설상가상 오른쪽에 운전대가 있는 동네다 보니 차 움직이는 방향이 낯설다보니 길 건너기도 쉽지 않아 어리버리 삐질삐질 땀깨나 흘렸다. (내 이름에서 두 글자나 빼 쓰고도 날 그렇게 고생시킨 녀석, 깜종, 깜종!! 널 절대 잊지 않겠다!)

 

홍콩은 본토와 섬들이 해저터널길, 다릿길, 뱃길 등으로 몪여 완벽하게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고  

그 길들과 연결되는 고가도로들이 하늘을 찌르는 빌딩들과 어울려 SF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도시를 연출한다.   

 

나더러 어디로 걸어가란 말이냐!!     

 

그토록 기를 쓰고 헤쳐왔건만 원하던 973번 버스는 결국 구경도 못하고 사람들이 권하는 대로 오션파크로 직행하는 버스를 타야 했다. 

홍콩 디즈니랜드와 쌍벽을 이루는 놀이공원이라더니 과연 버스 기다리는 줄이 끝도 없었다. 때는 이미 정오.

 

# 오션 파크 이곳저곳

 

 

 

 

 

 

 

 

   

 

후배가 장담했던 대로 수족관 구경은 꽤 재미있었다. 더구나 제대로 된 수족관 구경은 처음이라선지 요 꼬마에게 못지 않게 즐거웠다. 

 

손바닥 만큼도 안 되는 크기가 애처러워 그랬는지 자꾸 눈에 밟히던, 느림보 마못. (요 녀석은 열대우림관에 산다.)  

 

대형 수족관과 팬더관, 열대관, 남극관, 북극관 등 다양한 전시관들도 재미있었지만, 오션파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드넓은 산야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교통수단이 아닐까 한다.  공원을 누비는 교툥(!)수단이 네 가지나 되는데, 일단 바닥을 누비는 트램, 놀이공원과 열대관 등이 있는 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푸니쿨라와 케이블 카, 후문 쪽으로 내려가는 5단(?) 에스컬레이터가 그것이다. 

 

 

그 중 으뜸은 케이블 카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다가 유유히 바다 위로 떠가는 맛은 다른 어떤 케이블카에서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는 점.       

 

오션파크의 티켓은 268 홍콩달러(한화 약 3만원 정도)짜리 자유이용권인데 태평양을 바라보며 즐기는 맛이 특별하여 전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

 

# 란타우 섬

숲길이든 바닷길이든 많이 걷고 싶어서 선택한 코스.

어제같은 시행착오적인 발품은 피하기로 하고 (사실 일부러 헤매는 건 여행중에 발동하는 내 괴상한 취미 중 하나인데... ㅋ)

MRT 센트럴역에서 오렌지 선으로 바꿔타고 퉁청(東湧)역까지 갔다. 

통청 역에는 大岐山 정상까지 운행하는, 엄청 긴 코스에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닥 때문에 유명세를 치르는 케이블카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바다 위로 가는 케이블 카 체험은 어제로 끝. 우리는 산길을 보고 싶어 大岐행 버스에 올랐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을 나는 숲은 깊고 푸르다.

짙은 녹음과 드넓은 바다를 번갈아 감상하며 구비구비 40여 분을 올라가니 초대형 부처님이 우릴 맞아주신다.

 

 

소란스런 인파를 피해 뒷산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마침 부슬부슬 안개비가 뿌려 적적한 산책을 즐기기에 딱이었지만 코스가 예상보다 짧은 게 흠.

다른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지만 지도도 뭣도 없이 도전하기엔 너무 길어 보이는 코스. 사전 준비가 없으니 가끔 이렇게 꽝도 뽑는다.

K-pop과 런닝맨에 미쳐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는 싱가폴 소녀가 열렬하게 한국어 회화를 요청해온다. 참 신기하다. 우리 말이 뭐 그리 쓸 데가 많다고....

하긴 내게도 쓸 데를 생각하기 이전에 팝송에 미쳐서 영어공부에 매진하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 ㅎㅎ

 

아쉬움을 달래며 해변가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고 30분쯤 달리다 만난 타이오(大澳) 마을. 

마을에 면한 바닷가 곳곳에 허름한 고깃배들이 매여 있고 여기저기서 콤콤한 젓갈 냄새가 풍기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어시장과 먹자골목, 초라한 박물관을 지나 들어선 마을은 관광안내지에 이름을 올린 마을 답지 않게 적막하기만 하다. 

바닷바람에 녹이 스는데 왜 양철로 집들을 지었을까. 찌그러진 창문가에 정성껏 놓인 예쁜 화분들이 공연히 안쓰럽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지만 대만의 시골동네 같기도 하고 일본 촌동네 같기도 한, 마치 장완정 감독의 영화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랄까. 

마침 카메라 배터리가 떨어져 사진은 한 장도 남기질 못했지만, 등려군의 '작은 마을 이야기'(小城故事)를 흥얼거리며 열심히 마음의 카메라에 담았던 타이오 마을의 오후. 지금도 그곳을 떠올리면 기분이 아련해진다.  

 

P.S. : 뒤늦게 발견한 휴대폰 사진 몇 장.

 

포린쓰(寶蓮寺) 뒤 산책길 언덕에 세워진 목패들. 부처님의 가르침이 새겨져 있다. 

 

특이하게도 소들이 지키고 있는 산책길 종점. ^^  보이는 길로 넘어가면 다른 동네가 나온다고 해서 발길을 멈춰야 했던. 

 

大澳 마을 기념품 가게. 대부분이 바다에서 나온 것들로 만들어졌다.

 

굴, 전복, 가리비, 새우 등 육지에선 귀하신 몸들 위에 치즈를 듬뿍 얹어서 구워 팔고 있었다.

아쉽지만 이미 배가 터지게 점심을 먹은 뒤라 단 한 개도 더 넣을 수 없어서 패스.

시장통을 지나 다리를 건너가니 주민들이 사는 동네가 나왔다.

 

태풍이 오면 다 날아갈 것처럼 보이는 집이지만 화분으로 정성껏 장식을 했다. 인생이 그런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