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오세아니아

여행 속 여행 3 - 마카오

張萬玉 2013. 2. 4. 14:26

공교롭게도 홍콩 오는 길에 항공사에서 제공해주는 영화 '도둑들'을 보았다. 

마카오의 이미지는 내게도 그런 곳이었다. 카지노, 돈 세탁, 조폭, 시커멓고 좁은 골목길에서 펼쳐지는 추격전 등등......

그러나 마카오는 포르투갈령 시절의 흔적1들로 인해 '동양의 유럽'이란 낭만적인 별명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단다. 

과연 마카오는 내게 어떤 얼굴로 내게 다가올까... 자못 궁금한 마음으로 선착장에 도착하니

뜻밖의 건물들이 우스꽝스러운 위용으로 나를 맞이한다. 카지노들이었다. ㅋ

 

 

 

홍콩에서 겨우 배로 한 시간이면 가까운 곳이련만 내 눈에 비친 마카오의 첫인상은 홍콩과 많이 달랐다. 

콕 찝을 순 없지만, 웬지 가짜 같은 느낌? 요즘 유행어로 '살아 있는' 홍콩에 비해서 말이다. 

건물들도 그렇고 오가는 사람들도 영화를 위해 동원된 엑스트라들 같았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봐. ㅜ.ㅜ)   

매연과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복잡한 거리에서 잠시 어지러웠다. 

난 뭘 기대하고 마카오에 온 걸까, 마카오는 내게 엷은 미소라도 보내줄 텐가?     

 

 

카지노에서 밤 새울 사람 아니면 일일투어로 한 바퀴 돌고 돌아가는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숙소 사정은 홍콩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다.

홍콩에서의 숙소 설움을 풀 양으로 별 세 개짜리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기운을 내어 포르투갈 식민 시절의 유적지가 몰려 있다는 동네로 출발..

출발지는 세도나 광장. 건물도 건물이지만 포르투와 벨렘 항구에서 보았던 물결 무늬 타일바닥을 만나니 어느새 낯가림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린다.

 

 

 

현지인들의 주거지 사이로 드문드문 포르투갈식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더 분위기가 좋은 '역사지구' 

500여 년 전에도 한 골목에서 이렇게 얼굴 맞대고 살았겠지.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아마사원2.

가파른 페냐언덕 꼭대기에서 마카오의 내항을 굽어보고 있다.   

 

이런 향은 처음 봤다. 모기향 보고 베꼈나? 모기향이 베꼈나? ^^

 

 

 아마사원이 있는 바라광장도 세도나광장 못지 않은 관광명소인 모양.... 웨딩촬영이 한창이다.  

 

여기는 마카오의 부호이자 자선가였던 정씨네 저택이란다.

 

상하이 인근 저우좡의 심씨네, 장씨네 저택 비슷하다.

후배는 이런 집 구경이 처음인 듯, 인테리어에 완전 꽂혔다. 얘야, 언제 상하이에 함께 가서 이런 집 구경 질리게 시켜줄께. ^^ 

 

이건 이튿날 세도나 광장 위쪽에서 본 모모씨네 집 주인인데

상해대주전자의 대들보였던 장쏴이 주임과 완전 판박이네. ㅋ 

 

역사지구도 좋지만 나는 현재 서민들 사는 동네가 더 좋다.

시장통을 돌아다니며 공연히 이것저것 묻는 척 수작을 걸어보지만 마카오 사람들은 잘 안 걸려든다.

여기 사람들이 홍콩 사람들보다 좀더 쌀쌀맞거나 퉁명스러운 것 같다. 적어도 그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그랬다.

홍콩에서보다 영어도 잘 안 통하고 보통화도 알아듣기는 하는 것 같은데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안 그렇지만)    

 

 

 

 

   

포르투갈에서 자주 보던 Mesa(대구)라는 간판을 보고 찾아들어간 작은 레스토랑.

서양남자가 주방을 맡고 있길래 '혹시 이 땅에서 살아온 포르투갈인의 후예?' 하는 설레임으로 주문을 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포르투갈에서 맛보던 바로 그 맛을 선사해주었다.

진한 야채스프, 새콤한 문어 세비체, 대구(자반)구이, 그리고 Sagres 맥주...ㅋㅋ

 

파란 무늬를 넣은 흰 타일...... 저것도 포르투갈, 특히 포르투에서 수도 없이 본 벽장식이다.

그림이 중국 풍경이어서 더 인상적이었다.

 

세도나 광장에 밤이 오니 네온사인 비가 내린다.

우리는 마카오의 또다른 경험을 찾아 고고씽~

 

 

카지노 구경은 십여 년 전 방콕에서 육로로 앙코르 왓에 가려고 캄보디아 국경을 넘었을 때 우리를 시엠립까지 데려다줄 가이드를 만나기 위해

방콕 여행사 직원이 지정해준 장소에서 2시간 동안 기다린 적이 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카지노였다.

당시엔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데라고 여겨 어깨너머 구경조차 안 하고 한켠에 있는 까페에서 커피만 홀짝거렸던는데 지금은 약간의 판돈을 걸 마음까지 먹고 내 발로 카지노에 들어왔다. 호주에서 연수하던 시절에 친구들과 카지노에서 쫌 놀아봤다는 후배의 꼬임에 빠져서...ㅎㅎ

헌데 막상 오락장에 들어서자 꾼인 줄 알았던 후배가 살짝 꼬리를 내린다. 바카라는 잘 모르겠고 블랙잭은 해봤지만 일단 짱을 좀 봐야겠다는 거다. 

뚤레뚤레 구경하고 다니다가 제일 쉬워 보이는 룰렛 앞에 앉았다.

소심하게 10달러짜리 칩 50개를 사서 내가 20개, 나보다 경험 많을 (ㅋㅋ) 후배가 30개를 들고 게임을 시작했다.

'한 번에 두 개씩 걸어야 하니 열 번은 할 수 있을 거고 최소한 두 판 정도야 못 따겠나. 그렇게 본전 건지면 털고 일어나는 거야.'

하지만 그 순진한 계획이 박살나는 건 순식간, 딜러가 불쌍하게 봤는지 딱 한 번, 그것도 경계선에 놓아 10배의 절반인 50달라를 따게 해주었지만

그마저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후배는 그래도 세 판이나 따더니 분위기에 적응을 했는지 이제 블랙잭으로 가보잔다. 

헌데 블랙잭은 칩 자체가 100달러짜리다. 바카라는 그 열 배쯤 되는 것 같다. 깨갱!

다시 룰렛 판으로 돌아와 일단 남들 하는 것 관전. 헌데 그 사이에 큰 멤버교체가 있었다.

대학생 나이로밖에 안 보이는 어린 녀석들이 둘,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애들 둘이 앉았는데

어린 녀석들이 글쎄 100달러짜리 칩 스무 개씩을 대여섯 군데나 걸고 있는 것이다.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녀석들도 확률계산까지 하는지 종이에 나왔던 숫자들을 일일이 써가며  한 뭉텅이씩 다섯 군데 이상씩 걸고 있다.

와, 무섭다. 애들 장난 같던 룰렛판이 얼핏 봐도 수만 달러가 넘는 도박판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신기한 건 무섭게 거는 어린 녀석들이 두세 판에 한 번씩은 따간다는 점이다. 이 녀석들 지갑을 열 때 흘낏 보니 백 달러짜리 지폐로 완전 빵빵하다.

많이 거는 사람이 많이 따게 되어 있다며 저 딜러는 머지 않아 바뀔 거라고 경험 많은 (ㅋㅋ) 후배가 속삭인다.         

도대체 저 어린 녀석들은 어떻게 그렇게 돈이 많을까.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걸 배웠을까.

확률 계산하는 녀석들을 보니, 예전에 날밤 새며 마작을 하고 이튿날 회사에서 죙일 맥을 못 추던 유능한 엔지니어 류박사가 떠오른다.

저 자들은 샐러리맨들일까? 샐러리맨들이라면,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재미로 한 번 와본 게 아니라면 직장생활 오래 하기 힘들겠다 싶어

그렇다면 제발 저 자들이 오늘 크게 따지 않기를 살짝 빌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일군의 아줌마들도 눈길을 끌었다. 옷매무새로 봐서는 중국 본토 하고도 시골에서 온 아지매들 같은데 판돈 거는 손길들이 제법 대담하다.

저 아지매들은 저 큰돈이 어디서 났을꼬. 혹시 집 팔아 논 팔아 온 돈인데 다 날리믄 우짜노.

남의 속사정도 모르면서 공연히 짠해지기부터 하는 이 순진한 오지랍이라니.

이 오락장만 해도 테이블이 백여 개는 족히 되어 보이는데 마카오에 있는 오락장만 해도 수십 군데이고...... 어디 마카오 뿐이랴..

내가 모르는 세상이 정말 많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는 사이, 후배는 그 사나운 판에 끼어들어 1000달러를 벌어왔다. ㅋㅋㅋ     

 

 

마카오를 떠나던 날 오전 내내 세찬 비가 내렸다.        

그래서였을까, 마카오의 뒷모습 역시 첫 인상 못지 않게 우울했다.

도착과 출발 사이에 잠시 맛보았던 낭만적인 느낌들이 찬 겨울비에 처연히 씻겨내리는 듯했다.    

 

  1. 1513년 동남아시아 식민지와 중국 근해를 왕래하던 포르투갈인이 마카오에 거주지를 확보하기 시작하면서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중개무역항이자 일본과 중국에 대한 카톨릭 교회의 포교 거점으로 번영해나간다.포르투갈은 점차 거주권과 자치권을 획득해가다가 아편전쟁 무렵에 이르러 통치권과 영구점유권을 탈취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66년 중국계 주민의 반 포르투갈 투쟁 등 반환 압력이 점차 높아지고 1974년 포르투갈 본국이 좌파정권을 맞으면서 해외식민지 포기를 선언하고, 1979년 중국과 포르투갈 간의 국교가 수립됨에 따라 마카오의 주권이 중국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며 중국과 영국 간의 홍콩 반환 협상과 더불어 마카오 반환 협상이 시작되었고 1999년 12월 20일 결국 마카오의 행정권은 중국으로 반환되었다.(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본문으로]
  2. 사원 바로 앞 항구에 도착한 포르투갈인이 이 지역이 어딘지 물었을 때 사원 이름을 묻는 것으로 착각한 현지인들은 마조각(妈祖阁, 현지 발음 마카오)라고 대답하게 된 것이 마카오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