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쯤 버스에 올라서 마라케시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다섯 시경이었으니 7시간 정도 걸렸나보다.
같은 버스에 탔던 세 명의 프랑스 아가씨들과 쁘띠택시 잡아타고(정원초과라 한 명은 납작 엎드린 채) 구시가지 중심 광장에 도착하여 숙소부터 찾는다.
읽기도 힘든 호텔 에싸우이아(이 이름도 서남쪽 어느 해안도시의 이름이다)
방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옥상에 매트를 빌려 반노숙을 할 수도 있는(사진 오른쪽 구석) 인심 좋고 화기애애한 숙소
골목 하나 빠져나가면 마라케시를 찾는 관광객들이 총집합하는 제마 엘프나 광장이다.
어마어마한 노점들과 거리공연자들이 모여들어 낮밤 없이 성업중.
이 나라 사람들은 향신료를 주식으로 먹나? 싶을 정도로 눈길 닫는 곳마다 풍성하게, 그리고 특이하게 진열된 향신료들.
광장에는 흥미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치고 있다.
타악기들을 두드리고 야단법석 춤을 추며 손님을 부르는 거리 공연자들.
갑각류 껍질이나 말린 약재 몇 점 늘어놓고 약의 효능을 설명하는건지 뭐라뭐라 중얼거리며 주술사의 눈빛으로 겁을 주는(ㅋㅋ) 할아버지들.
피리를 불며 코브라를 놀리는 사람들
특이한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며 사진 찍으라고 협박하는 사람들(사진 속 복장은 뭐였을까? 여기저기서 봤는데 묻는다는 게 깜빡했다. 혹시 아시는 부운?)
먼 이방에서 날아온 내 눈에는 모든 것이 포토제닉하게 느껴지는데.... 문제는 무서워서 카메라를 못 들이대겠다는 거다.
아예 사진 모델을 작정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카메라를 들이대면 귀신같이 알고 종주먹을 흔들어댄다.
심지어 지나가는 버스를 찍는데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막 나서서 당장 지우라는 듯 난리를 쳐서 너 찍은 거 아닌데 왜 그러냐고 살짝 항의해보려다가
털북숭이 대단한 덩치에 공연히 기가 죽어 얌전히 지워준 일도 있었다는...... (이 이름난 관광지에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사진 속 아이가 사납게 외친다. "노 뽀또, 노 뽀또!!"
마라케시 구 시가지 어디에서나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이 읽혔다.
그렇게 초반에 기가 죽어버린 탓에, 마라케시 사진에는 사람 사진이 별로 없다. 거의 뒷모습 등 소심한 샷. ㅜ.ㅜ
아래 사진 두 장은 함께 사막투어를 했던 프랑스 총각이 찍은 제마 엘프나 광장.
광각이 넓은 렌즈를 쓰기도 했겠지만 저 넓은 시야를 얻기 위해 일부러 전망 좋은 옥상을 찾아다녔을 듯.
기록사진도 필요하지만 최고의 정성을 들인 사진을 단 한 장이라도 남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요기부터는 다시 내 사진이다.
제마 엘프나 광장의 랜드마크, 쿠두비야 모스크.
신선한 새벽에도 아름답고 태양이 불타는 대낮에도 아름답고
특히 석양을 등진 저녁무렵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바라볼 때마다 빠져들게 하는 정말 멋진 건축물이다.
언감생심, 꼭대기에 올라가 마라케시 광장을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갈 때마다 문이 잠겨 있었다.
모스크 뒷쪽에 작은 공원이 있어서, 광장의 소음이 지겨워지면 시원한 그늘과 장미 향기가 좋은 이곳에서 쉬곤 했다.
우리 숙소 들어가는 골목.
마라케시의 상징색은 붉은 황토색인 모양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이런 붉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비슷비슷해서 들어가는 입구를 잘 확인해두지 않으면 길 잃기 십상.
구시가지를 감싼 성곽 밖으로 나가니 사뭇 다른 분위기. 고급 주택가와 관공서가 즐비하고 서구식 활기가 넘친다.
이 동네로 나간 건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기념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름은 기념관이지만 그가 말년을 보내며 정성껏 가꾸었던 아름다운 정원으로 더 유명세를 타는 곳.
사막투어 다녀온 뒤 자투리 시간이 나길래 큰 기대 없이 쓰레빠 끌고 가본 곳인데 의외로 괜찮았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열대 꽃들, 특이한 다육식물들, 그리고 원색 선명한 토분들이 인상적이었다.
사딘 왕조의 묘역과 엘 바히아 궁전 등등을 보러 가는 길.
사딘 묘 입구.
엘 바히아 왕궁
빛과 그림자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던 정갈한 느낌의 궁전.
15세기의 솜씨라 그런가, 장식의 디테일이 상당히 화려하고도 세련됐다.
우리나라 민예품이나 단청의 느낌과 비슷한 게 신기하기도 하고...... 멋진 문짝과 창살에 꽂혀 한나절..
이 땅의 주인이었으나 변방으로 밀려난 베르베르인들의 문화를 이젠 시장에서 문화상품으로 만나게 된다.
이제 왕궁을 나와 시나고그로 간다. 모로코에서 유태인들의 흔적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공회당'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까, 기대하며 문턱을 넘었지만......
얘네, 뭐래니?
가이드도 없고 까막눈이다 보니 작품 감상이 되어버렸다. ㅠ.ㅠ
마라케시를 떠나기 전날 은양과 영화를 보러갔다. 말은 못 알아듣지만 그림이라도 보려고... ㅋㅋ
예전 우리네 동네 영화관처럼 두 편을 연속 상영해주는데, 두 개가 다 비슷했다.
가난에 시달리는 가족이 나오고 그 불쌍한 가족들을 괴롭히는 조폭들이 나오고
그 녀석들이 술집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며 예쁜 아가씨를 괴롭히기도 하고 결국 나중엔 폭력으로 얼룩지며 비극으로 끝난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시장과 상인들밖에 못 보고 갈 뻔한 우리들로서는 모로코 사회 속으로 조금이나마 들어가볼 수 있었다는 걸로 매우 만족했다.
우리의 만족도를 두 배로 높여준 건 바로 영화관 그 자체.
영화가 끝나니 불이 켜지..... 는 게 아니고
천장이 완전히 열렸다. 요렇게!
유럽대륙으로 돌아가는 날짜와 지점이 달라 이틀 후에 떠나는 은양과 석별 만찬.
포르투갈에서 만나 3주 가까이 동고동락하던 친구와 헤어지려니 대단히 섭섭타. 설마 은양도 그랬으려나? (혹시 그 반대였으려나? ^^)
이슬람 건축양식을 도입해서 빛과 그림자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인상적인 공항 청사
P.S. : 공항 가는 버스가 있다 없다를 놓고 여러 사람들의 자문을 구해보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서
일단 아주 일찍 나가 버스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없긴 왜 없니. 쿠투비야 모스크 쪽 큰길에 공항 가는 버스(19번)가 있었다.
버스비는 만일에 대비해서 남겨뒀던 택시값의 1/20 밖에 안 되는 3디르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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