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5일
# 베를린으로 가는 길
프라하에서 9시에 출발, 두 시쯤 도착했다.
유레일 예약할 필요 없다고 해서 안 했는데 웬걸, 텅텅 빈 객실에서 룰루랄라 한 건 딱 독일 국경까지였다.
드레스덴이었던가?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오더니 급기야 내가 앉은 자리까지 내달라고 한다(흡! 예약석이었다.)
복도로 나와 다른 자리를 찾아보지만 예약석 아닌 곳이 없고, 복도에 붙은 자리까지 꽉 차서 어디로 돌아다닐 꿈도 못 꾸겠다.
열차가 시간마다 있다고 했는데 어째 이리도 붐비나 했더니, 오늘이 마침 지난주 목요일부터 시작된 예수 승천일 휴가 마지막 날이라 휴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베를린 시민들의 귀가행렬이었던 거다. 우여곡절 끝에 복도 자리 한귀퉁이에 간신히 엉덩이 붙이고 두 시간 가량 곁방살이.
그래도 창밖을 스쳐가는 초록 짙은 초원 위에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 풍경만은 일품이었다.
# 베를린 역
엄청나게 큰 베를린 중앙역사 규모에 깜짝!
열차들뿐만 아니라 시내 외곽을 도는 U-bahn과 시내를 주로 도는 S-bahn까지 함께 사용하는 역이다. 플랫폼이 총 5층이나 된다.
게다가 지하철 노선도라고 하나 집어들어보니 어찌나 노선이 많은지 환승역 찾기도 쉽지가 않다. 이 노선도에 적응하는 데 이틀 이상 걸렸다.
일단 적응하고 나면 베를린이 정말 편리하고 친근한 도시로 느껴졌을 텐데, 나는 적응하자마자 베를린을 떠났다. ㅜ.ㅜ
유레일 패스 있으면 U반은 공짜라길래 일단 U반을 타고 알렉산더 역에서 S반으로 환승, 한 정거장 떨어진 로자룩셈부르크역에서 내렸다.
이 과정에서 S반 표를 안 산 건 정말... 고의가 아니었다. U반을 타기 전에 샀어야 했는데 'U반 공짜'라는 사실만 생각하고 덜컥 U반에 올랐다가
내린 자리에서 바로 S반으로 환승되는 바람에... 짐 지고 들락날락하기 번거로워서... ^^ (게다가 한 정거장인데 뭐...싶은 요행심리...)
시민의 자율정신을 믿어주는 유럽 지하철들은 입출구 출입에 제한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알게 혹은 모르게' 무임승차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나 역시 나폴리, 비엔나, 부다페스트, 프라하, 베를린에서 나도 모르게 한두 번씩의 무임승차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뒷날 얘길 들어보니 무임승차 하다 걸리면 무지하게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네. ㅠ.ㅠ)
# 숙소, 그리고 숙소 동네
숙소는 역시 Wombat이다. 시설도 가격도 분위기도 비슷하다.
헌데 이번 움밧은 청소년 단체가 부쩍 많아 떼로 몰려다니는 청소년들 속에서 완전히 외톨이로 지냈다.
수퍼에 갈 기분도 안 나서 가방에 있는 것 탈탈 털어 차린 쓸쓸한 밥상.
체크 인 할 때 시트 받아다가 잘 자리 만들고, 냉장고는 규칙에 따라 사용하고......
옥상에 차려진 널찍한 야외 바에 올라가면 베를린 타워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호스텔은 사람과 마주치는 게 불편한 사람에겐 아주 편안한 숙소다.
내일모레면 꽃들이 만발하는 5월인데, 계절이 거꾸로 가는지 추위가 뼛속까지 스민다.
스웨터는 물론 가방 깊이 넣어뒀던 바람막이까지 꺼냈다. 손이 곱아 카메라 셔터도 못 누를 지경.
동네 한바퀴 하러 나왔다가 동네 소매점이 주최하는 Street Party에 잠시 휩쓸렸다.
구 동독지역이라 후줄근하긴 해도 이 동네 주민들은 재개발을 원치 않는단다. 이 파티는 재개발 반대 시위의 일종이었다.
디제이가 나서서 쿵쾅쿵쾅 대형 스피커를 울리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음식 바자 준비가 한창인데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아직도 멀었다기에 샌드위치 하나 사서 물고는 발길을 돌린다. 바쁘게 발도장이나 찍고 다니는 신분이니 뭐......
멀지 않은 동네에 로니가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전화번호만 만지작거리다가 말았다.
과테말라에서의 거리와 베를린에서의 거리는 여행과 생활 간의 거리만큼이나 차이가 날 꺼라는 걸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철이 들면 만사가 좀 번거롭다. ㅎㅎ
2010년 5월 15일
# 베를린 시내
U-bahn 알렉산더 역에서 출발, 베를린 타워와 대성당을 거쳐 박물관 섬을 둘러보고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갔다가 역시 걸어 돌아왔다.
다리 떨어지는 줄 알았다.
5월 17일
베를린 장벽 - 나치 박물관 - 체크포인트 찰리 - 쇼핑가 -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돌아오는 길에 숙소 반대편으로 가는 S반에 올라타고 공연히 외곽까지 나갔다가 돌아왔다.
스스로의 잘못을 낱낱이,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는 나치박물관.
그 대단한 용기를 바탕으로 오늘날 건강한 독일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눈물나게 부러웠다.
베를린의 동쪽과 서쪽을 지키던 찰리와 이반(? ㅋㅋ)
이스트 캘러리
돌아오는 길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정글이 되어버린 건 인간이 너무 많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변두리 건물 한구석을 메운 그래피티에 불과하지만 오래도록 생각나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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