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제주허씨 한달살이

제주허씨 일기 1 - 入島

張萬玉 2014. 11. 4. 13:36

 

10월의 마지막 날  / 제주 가는 길

 

마음이 자꾸 바닥으로 빠져들면서 홀로되기의 유혹에 시달릴 때였다.

제주에 지인이 아는 빈 집을 싸게 빌릴 수 있다길래 무작정 한 달치 방세를 보냈다.

하지만 그 집이 비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이러저러하다 보니 굳이 홀로되기를 구하여 그 먼 땅까지 찾을 필요는 없게 됐으나

가기로 한 날짜가 되었길래 짐을 꾸렸다.

제주 대중교통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숙소가 외진 산 속에 있으니 차가 있어야겠는데

이박삼일도 아니고 한 달 가까이 있으려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땅끝까지 차를 몰고 가서 배에 싣고 가는 수밖에.

뱃길이 가장 가까운 장흥에서 성산항 가는 코스는 선박 보수기간이라 12월 중순까지 배편이  없다고 하니 목포항에서 출발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마침 비바람이 몰아치는 서해안고속도로를 좌악 달려가다가 부안에서 잠시 내려

남인도 여행길에서 만났던 벗의 농촌저택에서 따끈한 한끼 + 따끈한 우정 한 잔 얻어자시고.. ....

 

 

 

 

어디 길잠을 자느냐, 하룻밤 자고 새벽에 떠나라는 간곡한 만류를 뒤로 하고 비와 어둠에 흠씬 젖은 목포에 도착, 

항구 근처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구한 뒤 이른 아침 제주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차를 배에 실어본 게 처음은 아닌데 이번엔 기분이 남다르다. 단촐한 홀몸이 아니라 뭐랄까, 식솔들을 이끌고 이민 가는 기분?

게다가 월호 사건의 영향 때문인지 기분이 잠깐 비장하고도 신선하였다. ㅋㅋ 

 

숙소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아니 과분했다.

돈내코 산속 외딴 집 + 널찍하고 잘 가꾸어진 정원 + 귤밭......

예전에 주인이 살다가 지금은 외지에서 놀러오는 친척 친구들을 재워주는 집이라 살림살이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별장'이었다.

어쩌다 이런 집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암만 생각해도 내가 여행운은 있는 것 같다.

 

 

 

 

 

그리하야 내 앞에 눈부신 25일이 펼쳐졌는데...... 이 좋은 동네에 와서조차 심드렁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암만해도 일기를 써야 할 것 같아서

제주허씨(제주에 놀러와 렌트카 빌려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이르는 유흥준 교수의 표현) 일기를 쓰려고 한다.

원래 계획은 제주에서 최대한 심심하게 지내며 아프리카 일기나 끝낼 셈이었는데 그보다는 현장 생방송이 더 기운을 줄 것 같으니...

암만해도 내 활력의 원천은 변덕이 아닐까 한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