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프리카

에티오피아 1 - 아디스아바바 1

張萬玉 2014. 10. 14. 13:11

도착해서 비자 받고 나온 시각이 밤 10시 30분.

번화가에 호텔을 예약해두신 두 신사분은 픽업서비스를 받으시고, 홍쌤과 나는 택시를 타고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Homage로 갔다.

평소엔 Hostel.com에서 숙소를 찾는데, 이번엔 동행도 있고 열악한 조건(벼룩이 많다는...)도 고려해 Agoda에서 찾았다.

85달러짜리, 내 수준에선 최고급 숙소다. ^^

헌데 주변이 너무 어둡다. 외관도 뒷골목의 모텔 비슷하고...

들어가보니 역시 배낭여행자에겐 과분한 호텔이었다. 

방 2개 침대 3개에 거실, 간단한 부엌을 갖춘 suite room.... 아늑하고 깔끔하고 와이파이도 되고, 무엇보다 친절한 스태프.

와이파이 되느냐고 프런트에 전화했더니 밤 12시에, 그것도 밥 먹다 말고 코드를 적어서 직접 갖다주기까지.


 


창 밖으로 보이는 동네 풍경. 밤을 밝히는 가로등도 없다.

같은 아디스 아바바 시내라고 해도 Bole 지역 외에는 거의 이런 풍경이다.



여기는 Bole 구역의 별 네 개짜리 호텔 앞.


간밤에 헤어졌던 일행을 Taitu 호텔에서 만났다.

곤다르 - 랄리벨라 - 악슘 - 아디스아바바 - 메켈레 - 아디스아바바로 도는 셔틀비행기표를 우선 끊어두려고...

에티오피아 항공사를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사람이 사람이....읔!

그 와중에도 네 사람의 각기 다른 '일정표'를 내놓고 시작하는데......

신쌤은 악슘에서 일주일 먼저 아디스 아바바로 귀환,

교장쌤은 메켈레에서 닷새 먼저 아디스 아바바로 귀환,

홍쌤과 나는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와 진카 가는 비행기를 바로 탈 수 있는지 탐색이 필요하고....

이렇게 복잡하다. 처음부터 함께 하기로 한 여행이 아니라 여행중에 결정한 일정이기 때문에...

그런데 항공사 몇번 창구의 직원 모모씨, 정말 일도 잘하고 어찌나 친절한지!

이렇게 제각각인 네 사람의 행선지와 출발일을 효율적으로 수합하더니 깔끔하게 진행시켜주었다.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메켈레까지 가볼까 하시는 교장쌤을 진득하게 기다려주기도 하고,

한 좌석이 모자라는 곤다르에서 랄리벨라 구간은 웨이팅 리스트에 얹어주고...

게다가 한국에서 들어올 때 에티오피아 항공을 탔다고 에티오피아 국내선 전 구간 50% 디스카운트해준다. 에티오피아 항공사 짱!





거리는 지저분하고 북적였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바위를 쪼갠 날을 기념하느라고 흰 스카프와 흰 드레스로 치장한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지팡이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chant를 한다.

어린이들도 스틱을 들고 몰려다니며 돈 달라고 조르고....(구걸이 아니라 전통이란다. 새학기 공책값을 버는...)

기세에 눌려 감히 카메라를 꺼내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살그머니 찍은 몇 장.


블러그에서 맛집으로 소개하는 피자집 isola를 찾다가 실패하고 눈에 띄는 아무 식당에 들어갔는데 80비르(100비르, 약 4달러?)에 이 푸짐한 한 판이 나온다.

현관에 신선한 풀을 잔뜩 깔아놓은 게 특이했는데, 물어보니 대답이 제각각이다. 전통적인 손님맞이라고도 하고 축일 기념이라 깔았다고도 하고.

어쨌든 거리에 풀을 한보따리씩 지고 나와 파는 사람들을 보니 그 옛날 어느 오아시스 도시로 들어온 기분이다.


일주일 후 메켈레에서 돌아오면 묵을 호텔을 예약해두려고소문짜한 Taitu 호텔에 가보니

와이파이도 안 되고 아침식사도 안 되고 눅눅해 보이고(벼룩 걱정)......

외국인 배낭여행자가 많이 들어서 그런가 시설이나 이곳 물가에 비해 너무 비싼 것 같아(1박 24달러) 일단 보류.


근처에 있는 Giant Geroge 성당을 돌아봤다.(입장료 50비르)


성당 문에 입 맞추고 기도하는 사람들. 문 앞에 꿇어앉아 흐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절대 내부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하더니 가이드를 고용하면(100비르) 찍게 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를 따라가서 뭔가 막 찍었는데, 어째 사진이 하나도 없네.. ㅠㅠ

자기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 참전용사였고 동생도 한국 간다고 연수중이라며 한국 사람 좋아한다고....(그런데 이 얘기는 이후에도 종종 들었다.) 

Priest 훈련생이라면서 Priest와 Monk의 차이를 설명해줬는데, 지금 머리속에 남은 것은 결혼해야 priest가 되고 Monk는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 ㅎㅎ 

몽크만 비숍이 될 수 있다는데, 비숍은 천주교의 수장 아닌가? 성경에 나오는 대제사장(Chief Priest)과는  어떻게 역할분담이 되는지?

Orthodox라는 종교를 모르니(그리스 정교나 러시아정교와도 다르다고 한다) 이해 안 되는 점이 너무 많다.

아무튼, '이곳은 신성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는 문구에 따라 신발을 벗고 들어가 남자칸, 여자칸으로 나뉜 예배당을 보았다.

장막으로 가린 원형 설교단 주변에는 대형 양피지 성경이 펼쳐져 있고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보았던 것 같은 聖火가 불타고 있다. 

프리스트가 한 손에는 몰약연기가 피어오르는 향로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요령이 달린 지팡이를 구르며 한 바퀴 돌면서 죄를 씻어주고 축복해주면

사람들은 지팡이 장단을 맞춰 발을 구르고 북을 치면서 챈트로 화답한다고 한다. 설명만 들어도 그림이 떠오른다.

특이한 것은 성전 안에 하이레 셀레시에 황제가 대관식한 자리도 꾸며놓았고 황제의 옷 등도 전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악슘에서 아디스아바바로 천도하면서 솔로몬왕조를 창시한 메넬리크 1세는 이탈리아와의 (1차)전쟁을 승리로 이끎으로써 아프리카에서 유럽열강에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유일한 나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었고, 메넬리크 2세 때는 에티오피아를 지금의 규모로 팽창시켰으며, 하이레 셀라시에 황제는 근대화 사업을 확대하여 부강한 에티오피아를 만들었다고 한다. 정치와 종교를 일치시킨 것도 셀라시에 황제. 그래서 우리는 성당박물관에서는 에티오피아 역사까지 공부하고 간다. (가이드가) 서두르는 바람에 충분히 보지는 못했지만 꽤 유익했던 관람.



아디스 아바바 시내의 박물관 등은 메켈레에서 돌아와 좀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기 때문에 오늘은 인근에 있는 Endoto산에 올라가 시내 전경이나 보자 하고 택시를 불러 탔는데.....폐차 직전의 도요다였다. 그래도 해발 3000미터 이상 되는 고산의 급비탈을 기를 쓰고 올라간다. 가끔은 힘이 없다면서 지그재그로....

기사님도 기운이 없어 보인다. 노숙해 보이는데18세 소년이란다.


정상 부근에 도착해 전망대 쪽으로 올라가는데 웬 벼락같은  채찍 소리!

웬 청년이 자기 키의 세 배도 넘음직한 채찍을 휘두르다가 한 번씩 땅을 치며 우리더러 해보란다. (10비르짜리 호객행위)

한번 해보겠다며 달려들었지만 그 긴 길이를 못 이기고 모두들 실패. 아무나 하는 건 아닌가보다. ㅎㅎㅎ


이번엔 아가씨가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온다. 커피 세리머니 하세요~



에티오피아에 있는 동안 하루에 서너 번씩은 끌려들어갔던 커피 세리머니.

이때만 해도 세리머니도 신기하고 커피맛도 너무 좋아 그 진한 에스프레소를 다섯 잔이고 열 잔이고 주는 대로 받아마셨다. ㅎㅎㅎ



돌아오는 길에 택시기사에게 부탁하여 주요도로를 섭렵하고 나니 어젯밤 낯설고 살짝 두렵기까지 했던 이 도시가 만만하게 느껴진다.

에티오피아와 만난 첫날의 소감... 나 어렸을 때 살던 천연동 달동네로 돌아간 기분.

청소년이었던 오빠들은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왔고 동네 아이들은 비탈길을 올라가는 리어카 뒤를 밀어주고 푼돈을 벌었다.

엄마들은 기저귀를 둘러 아기를 업고 시장에 나가 바닥에 떨어진 시래기나 상한 과일을 주워왔고 아버지들은 건축현장에서 등짐을 졌다.

함부로 낸 도랑길에서 구정물이 넘쳐흘렀고, 길거리 염소는 없었지만 미친개에 물리거나 축대에서 떨어져 팔을 다치면서도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놀았다. 

불과 50년 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