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카라는 애초에 계획이 없어서 숙소 정보 하나 안 챙겨놨는데, 갑자기 트라브존까지 국내선 타고 가기로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조금 긴장되긴 했다.
더군다나 작지 않은 도시인데 오늘밤 이 한몸 누일 곳을 잘 찾을 수 있을까. 급검색으로 숙소 많다는 거리 이름을 찾아들고 앙카라 오토갈에 내렸을 때 버스정류장을 찾아헤매는 나를 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청년이 있었으니...(오! 영어 하는 사람!)
이스탄불에 근무하면서 앙카라에 자주 출장을 온다는 무하메드. 자기도 울루스 간다면서 버스를 찾아주고 (버스회사에서 시내 중심가까지 공짜로 데려다주는 세르비스 버스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어느 호텔로 가느냐고 길을 알려준단다. 예약한 호텔은 없고 60리라 이하의 호텔을 찾는다고 하니 자기가 앙카라에 올 때마다 묵는 호텔이 있는데 가 보겠느냐고....
이런 사연으로 오늘 하룻밤을 의탁하게 된 것이 Zumrut(다이아몬드라는 뜻이란다) 호텔이다. 엉성한 가구 엉성한 칠에 그림 하나 안 붙어 있는, 별 한 개 혹은 두 개짜리 호텔이지만 공항버스 정거장 가깝고 와이파이 팡팡 터지고 이부자리 깨끗하고 50리라에 아침까지 준다는데 뭘 더 바라랴.
헌데 빈 방이 하나밖에 없다. 자기가 다른 호텔을 찾아볼 테니 나더러 묵으란다. 엊저녁에 일하느라고 잠도 못자고 배도 고파 죽겠다고 버스 안에서 하던 얘기를 들은 게 있는데.... 내가 다른 데 찾겠다고 하니 자기가 찾는 게 더 쉬울 꺼라고 고맙단 인사 할 틈도 안 주고 손을 흔들며 나가버린다.
난 왜 이리 인복이 많은 거지? 버스에서 나눈 몇 마디로 알고 보니 그는 시리아 알레포 출신으로 가족과 함께 5년 전에 터키에 정착한 비교적 안정적인 신분의 이민자다. 어째 계속 시리아인들을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는 일이 이어진다. 터키 사람들은 엄청 싫어하던데...
뱃가죽이 등에 붙게 생겼는데 먹고 싶은 게 없어서 서러웠던 적 있는 사람 손!
내게 여행꾼으로써의 결격사유가 있다면 그건 식성. 고기를 많이 가린다는 거다. 닭이나 양은 쳐다도 안 보지만 잘 구은 고기도 하루 한 끼 이상은 사절이다.
그런 짧은 입을 가지고 열흘째 빵과 고기로 연명하다 보니 드디어 이런 순간이 왔다. 점심에 풀떼기 한 접시만 먹고 천리먼길을 달려와 날이 저물었으니 뭐라도 먹어야겠는데 심란한 마음뿐이다. 걍 건너뛸까 하다가 호텔을 나섰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교민이 겨우 30명이라니 뜨끈한 김치찌게는 언감생심, 어디나 있는 중국음식점조차 구글을 돌려보니 5킬로 밖인데 걸으면 한 시간이고.....그거 먹자고 택시를 타랴?
결국 아이스크림 전문점 Mado의 쇼윈도우에서 스파게티 모형을 발견하고 들어갔는데...담백한 양송이 치즈 스파게티인 줄 알았더니 치킨이 소복이 덮여 있다. 앞으로는 '음매에애~~~~no!'에 '꼬꼬댁 no' 까지 ...추가해야겠다. ㅠㅠ
결국 닭고기 치워내고 몇 술 뜨다 비위가 뒤집혀 콜라로 입가심하고 돌아와 비상식량으로 싸갖고 다니는 로쿰으로 허기를 달랬네.
하룻밤 의탁하고 떠나는 날 아침.
조식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앙카라 시내 뒷골목은 좀 우중충했으나...
'여행일기 > 아시아(중국 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키 4-2 : 트라브존 / 우준괼 투어 (0) | 2017.10.06 |
---|---|
터키 4-1 : 트라브존 / 메이단 (0) | 2017.10.06 |
터키 2-3 : 샤프란볼루에서 만난 사람들 (0) | 2017.10.05 |
터키 2-2 : 샤프란볼루 인근 (0) | 2017.10.05 |
터키 2 -1 : 샤프란볼루, 마을 풍경 (0) | 2017.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