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워라. 숙소에서 800미터쯤 떨어진 뒷동산에 있는 원형극장 유적지로 아침산책을 나왔는데 우리 캠핑장의 와이파이가 여기서도 터지네?
카시에서의 마지막 날. 낮엔 마지막이다 싶어 물에서 실컷 놀고 오후에 카시 마을구경에 나섰다.
터키인들도 여름이면 즐겨 찾는 관광지라 작지만 흥청거리는 분위기.
해질녘에 카시 들어올 때 만났던 M과 그의 친구들을 만나 거하게 한잔 하고 들어왔다.
이스탄불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다니면서도 터키가 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그리 크게 느끼지 못했다(술탄아흐멧과 위스크다라의 분위기가 다른 것이 관광지역과 현지인 지역의 차이 혹은 지역경제의 차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카시에 와서 보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은, 사회적으로뿐 아니라 한 개인으로부터도 적나라하게 발현되고 있는 두 대륙 간의 차이, 즉 전통적 가치관과 현대적 가치관이라는 모습으로 표출되는 양 대륙 간의 가치관, 그 가치관을 함께 내재화한 (그들도 인정하는 그들의)가치관의 양면성, 그리고 그 배경에 운명적으로 버티고 있는 유럽과 아시아라는 지정학적 요인을 다시 보게 만든다.
라마단이지만 카시의 뒷골목 술집에는 외지에서 모여든 '터키' 젊은이들로 차고 넘친다. 이스탄불 외의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트라브존이나 심지어 관광객이 넘치는 카파도키아에서도 현지인들은 경건했다. 이스탄불 빼고 거의..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색채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완고했다. 그러나 카시는 달랐다. 자유롭고 싶은 젊은이들의 해방구 같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했고 현재는 국제적인 프리랜서로 떠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는 M은 안탈랴와 카시에 집을 두 채나 갖고 있는 거액소득자이지만 자기는 터키 주류사회에는 절대 발 붙이지 못할 마이너리티라고 했다. 그 이유는 스냅백을 쓰고 다니는 힙합매니아이기 때문이라고 뼈 있는 농담.
정치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지만 정작 공동체 사회에 포함되고 싶어 하지 않는 젊은이들, 형식적인 계율을 진작 벗어던지고 개인의 자유를 얘기하지만 여전히 무슬림적 가치를 적극 옹호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유럽과 아시아 대륙 사이에 낀 정체성의 혼란을 실감한다.
메리는 파묵칼레로, 나는 올림푸스로...
새벽 6시에 일어나 커피 한 잔으로 잠을깨우며 안탈랴에서 만나 거의 일주일을 함께한 메리와 이별하는 중이다. 낯선이와 마주 앉았을 때의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던진 Hello였는데 예상 외로 여기까지 왔다. 처음 맛본 메리는 밋밋했고 (흔히 만나는 전형적인 호주여자. 경쾌하고 상냥한) 한입 두입 먹다보니 고소함이 남달라 (남다른 경험, 남다른 기질) 탐닉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육질을 질겅질겅 씹어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 씹어서 소화를 시킬 것인지 그만 뱉어내고 커피로 입가심을 할 것인지. ㅎㅎㅎ
그녀가 빠져나가니 그 공간에 사색이 찾아든다. 오랜만에 달콤한 시간이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면 사색의 호수는 깊어지다 말고 그저 텁텁한 이끼를 키운다는 것을.
사람이 올 때는 그 사람의 일생과 같이 오는 것이며 생활을 같이 한다는 것은 한두 시간 앉아서 한담을 나누는 것 이상의 비언어적 sign들을 접수하고 나 역시 그런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는 매우 강도높은 소통이다. 그녀가 온몸으로 던진 생각의 실마리들은 그녀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내 사색의 호수가에서 맴돌고, 그녀가 수시로 보내던 살뜰한 애정표현은 혼자가 된 여행길의 길목에서 가끔 튀어나와 나를 미소짓게 해줄 것 같다. 사랑스런 메리, 프라우드 메리.^^
이른 아침 올림푸스 가는 길.
멀지는 않은데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는 곳이라 전용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환승정거장의 풍광이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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