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舊)

그시절의편지2 - 중국 친구의 초대

張萬玉 2005. 6. 20. 13:10

아버님 회사 팩스가 안 통하는구나. 계속 통화중이다가 걸리면 곧 끊어지네...

할 수 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우체국을 이용해보련다.

 

지난 토요일에는 중국 직원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10여 평 남짓한 공간을 오피스텔 식으로 콤팩트하게 꾸며놓고(자재는 형편없지만) 파나소닉제 VCD에 가라오케, 웅장한 스피커 시스템까지 갖춰놓았더라.

 

지금 한국 개봉관에서 상영중인 '폭주열차'(스티븐 시걸 나오는 것)과 '스페이스 잼', 두 편 때리고 '제5원소' 및 최신작들은 우리가 새 집으로 이사 간 뒤 VCD 사는 대로 빌려보기로 했지. 소장한 VCD가 100장도 넘더라. 여기는 주로 사서 친구들과 바꿔본대. 20원에 한 장, 빌리는 데는 4원)  암만 해도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하는 데는 VCD 감상이 최고일 것 같아.

 

식사는 약식 풀코스였는데 그 중국식 손님대접은 맘에 안 들더라. 왜냐면 식단 자체가 안주인(혹은 바깥주인)이 부엌을 떠나지 못하게끔 되어 있거든.

 

냉채 먹을 동안 열채 요리를 하는데 고기 내놓고 다음에 생선 내놓고 다음에 야채요리 내놓고 그거 먹는 동안 탕 데워야 하고(모두 뜨거울 때 먹어야 하는 거니까 볶은 즉시 내놓음) 그러고 나면 点心(이날은 특이하게도 김초밥을 내놓더라. 중국인들 김 안 먹는데...), 그리고 나서 국수나 만두 혹은 밥... 그리고 과일(이날은 하미과라는, 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맛있는 걸 맛봤지)....

부엌에 안 들어가는 다른 주인은 테이블에 붙어 앉아 잔 비우기 무섭게 따라주며 얘기 장단을 맞춰주지. 함께 먹고 즐기는 게 아니라 완전히 손님을 모시는 시스템이야.

 

일요일 아침마다 한국 드라마'愛情是什磨?'(애정이란 무엇인가)를 한다기에 도대체 무얼까 했는데... 뭐였을까?

김혜자와 윤여정, 김세윤과 이순재, 그리고 하희라와 최민수가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더라구. 중국 탤런트들만 촌스럽고 야단스럽게 연기하는 줄 알았더니 한국 사람들도 중국말로 떠들게 하니 거기서 거기더라구. 정말 웃기더라.

 

일요일 낮엔 박물관에 갔다가 외탄에 갔었지.

마침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젖은 외탄의 야경은 낮에 보는 것보다 더 처량하고 멋있더라.

휘황찬란한 남경로를 걸어 돌아오는 길에 백화점에 들러 30전 주고 물 빼고(세상에, 백화점 화장실이 돈을 다 받아요) 심심하게 지내는 정환이를 위해 主題公園이라는 중문판 컴퓨터 게임을 하나 사고(148원 줬음) 麥當勞(맥도널드)에 들러 快餐(fast food) 한 세트(18원)씩 먹고 집에 돌아왔지.


97년 여름에 찍은 사진입니다. 지금 보니 이곳은 그때도 번화했네요.


이삿짐이 안 와서 어제는 원피스 하나 사러 갔다가 이랜드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얼른 들어갔다가 티셔츠만 하나 사가지고 왔다. 남경로(압구정동) 같은 데 나가면 모를까 맨 70년대 시장제품 같은 것뿐이야.

하지만 내가 원피스 하나 잡아서 걸쳐보려고 하니까 점원이 달려와서 막 뺏어. '몸매도 안 되면서 꿈도 꾸지마' 그랬나? 하하하... 못 알아들으니 뭐 그냥 뺏기는 수밖에..

 

하긴 한국사람만 안 만나면 외모는 신경 쓸 일이 없다. 아무도 신경 안 쓰니까. 요즘 싸돌아다니느라고 햇빛에 타서 그런지 쇼윈도를 흘낏 보니 시커멓고 뚱뚱한 중년여인이 서 있지만... 沒關係 !

 

요즘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하수관이 새서 약간 심란하단다.

바람만 불어도 타일이 우수수 날리는 집이라 언제 어디가 고장날지 알 수 없다. 처음에 돈 아끼려고 실내장식을 20000원에 맞췄다고 좋아하더니... 싼 게 비지떡이었나봐.

우리 이사갈 집은 겉보기엔 삼삼한데 상하수도, 전기배선 등 속사정이 어떨지 모르겠다.

 

나 없는 동안에 한국에 별일 없는지, 겨우 일주일인데 굉장히 오래 전 같이 느껴지는구나.
중국체류일기 삼아 편지를 자주 쓰려는데...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팩스가 가가호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단 이 편지는 우편으로 보낸다. 아버지 사무실 팩스에 이상 없는지 점검해봤으면 한다. 일일이 소식 전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만나는 기회에 이 편지를 보여주면 좋겠다. 그리고 짬 날 때 팩스 답장 한 장 넣어주면 이쁘지...

(내 생일이 머지 않았으니 그날 생일선물로 한 장 부탁해용!)

 

우리는 8월 20일경이면 이사할 것 같다. 이사하면 전화번호도 바뀌지만 이 번호는 아는 사람이 계속 쓸 것이니 내가 새 전화번호를 보내기 전에는 이 번호로 하면 된다.

노가리는 고만 풀고 부엌바닥 물 샌 거 닦으러 가야겠다. 건강 생각해서 밤 좀 덜 새라.

 

1997.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