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舊)

그시절의 편지4 - 황산 아줌마

張萬玉 2005. 6. 20. 14:20
며칠 전부터 이사갈 집 청소를 조금씩 하다 보니 유리와 붙박이 가구, 문틀 등에 횟가루와 칠 잔여물이 너무 많아서 청소할 사람을 하나 구했지.

안휘성 황산현 출신으로 아이 떼어놓고 돈 벌러온 36세 아줌마인데 기운이 펄펄 넘쳐.

두세 사람이 할 일을 자기 혼자 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사람 부르지 말고 그 돈을 자기 달라면서 죙일 땀흘리며 억척같이 하더라구.

 

근데 이 아줌마, 좀 힘들고 까다로운 쪽을 청소할 때는 자꾸 날 불러서 확인을 시켜. 자기가 얼마나 일을 잘 하는가를 계속 확인시키더니 결론은 자기를 계속 쓰라는 거였지. 삼층에 사는 할머니가 들여다보니까 마치 자기가 이 집 주인인 양 굴면서 수작을 붙이더니 금세 다음 주 그 집 유리 닦는 일을 맡더라니까.

 

밤늦게까지 파김치가 되도록 일하고 돌아간 이 아줌마를 글쎄 오늘 새벽 시장판에서 다시 만났지 뭐야. 만두를 잔뜩 쪄가지고 나와 땀 뻘뻘 흘리면서 팔고 있던 중에 우리를 발견하더니 반색을 하며 만두 한판을 팔아넘기더군.

 

근데 점심때 쌀 사러 나갔다가 웬 질긴 인연인지 또 만났지. 자전거에 찬거리 가득 싣고(남의 집 저녁장) 오다가 날 보더니 내 짐을 실으래. 집까지 실어다주면서 또 수작을 붙이는데 황산에 놀러가면 자기 친정이 바로 근처에 있으니 공짜로 그곳에 묵어도 좋다, 다음주에 우리 이사가면 황산특산 차를 선물하겠다 등등.

하도 안쓰러워서 한국 여자들은 가사일을 직접 한다고 했더니 시무룩해지더라구.

박완서씨 단편 '흑과부'에 나오는 타입이야. 싱싱하고 씩씩하고 뻔뻔하고.....

일 잘하고 눈치가 빠르니 데려다 일을 시키면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외지생활 5년에 능구렁이가 다 된 이 여자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좀 무서워지더라니깐.

정말 중국여자들 씩씩해. 특히 외지에서 돈벌러온 여자들.


황산아줌마 사진이 없으니 대신 야채 파는 아줌마 사진으로... ^^

 

상해 사람들은 중국 표준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상해방언을 쓰기 때문에

보통화로 하자고 주문하지 않으면 중국어 배운 것이 아무 쓸 데가 없단다.

보통화를 써도 발음이 아주 특이해서 듣기가 아주 힘들어. 못 알아들으면 한두 번 다시 해주다가 막 신경질이지.

외국인에 대해 배려해줄 줄 아는 교양을 가진 동네가 아니면 구박이 보통 심한 게 아냐.

웃기는 건 잘 못 알아들으면 외국인이라고 생각 안 하고 어디 복건성이나 신강 같은데서 온 줄 알아. 상해인들은 상해시에 호구를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에 외지 사람들을 굉장히 깔보거든(요즘 내가 그렇게 산다네).

 

하지만 돈 가진 사람에 대한 존경(?)은 대단해서 돈 가진 사람이 어떻게 돈을 쓰든 아무도 욕하지 않아. 높은 산을 올라갈 때는 가마를 타고 간다니....... 중국사람들 손톱 기르는 거 있지? 처음에 나는 그게 호박씨 까먹으려고 기르는 줄 알았더니 원래 그게 일 안 하고 사는 고귀한 신분임을 시위하는 수단이었다나.

착하고 교양도 있는 우리 직원도 어제 일하는 아줌마 대하는 태도를 보니 거만 그 자체야. 글씨 모르는 외지인이라고. 육체노동한다고 그렇게 내놓고 천시하다니... 사회주의는 도대체 뭘 했나 몰라.

 

수다가 너무 길었나보다. 내일 모레면 이사간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드나들다보니 확실히 실내장식도 촌스럽고 설비도 부실하다.

이만 쓸께. 잘 있어라.

 

1997.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