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예전에 '가정부' 혹은 '파출부'라고 불리던 직업을 (요즘은 '가사도우미'라고 부르나 보더라) 중국에서는 保母(주로 아이 뒤치닥꺼리를 해주기 때문에), 鐘点工(시간제 파출부) 혹은 阿姨(아줌마)라고 부른다.
'가사'가 주부의 미덕이자 권리인 한국에서, 전업주부가 '가사도우미'를 쓴다고 하면 일단 따가운 눈초리를 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직장일이 너무 바빠 가사일을 감당하기 힘든 경우나 일이 집중적으로 많을 경우, 아니면 주부가 아플 경우 외에 가정부를 두고 사는 경우란 TV에 나오는 상류층 유한부인들의 얘기일 테니...
그러나 중국에 와 있는 한국 가정 대부분은 가정부를 두고 산다.
우선, 이주 초기에는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이라 현지인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보모가 필수적이 된다. 중국말 안 되는 사장님이 조선족을 고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선족 아주머니는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비싸니 한족을 써도 크게 상관없다. 대내적인 일은 손짓발짓으로 다 통하니까.... 커텐을 주문한다든가 지퍼를 고친다든가 공과금을 낸다든가 ... 대외적인 일에서는 어쨌든 중국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게 도우미를 쓰다 보면 가사의 잔일은 점점 줄어들게 되고 결국 요리의 최종마무리 외에는 거의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러니 중국말이 어느정도 되고 현지 생활에 익숙해져도 '도우미'의 단맛을 보고 나면 굳이 내보낼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인건비라 해봐야 한국돈 10만 원이면 되는데 까짓 옷 한 벌 덜 사고 외식 한번 덜 하는 게 훨씬 낫다는 계산이 바로 나오니.... 더구나 종일 뒤따라다녀야 하는 어린 아이들에 발이 묶이는 엄마들로서는 도우미의 도움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중국사람들도 도우미를 많이 쓴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맡기는 일은 학교에서 아이를 데려와 저녁을 해먹이는 일.... 그리고 빨래와 청소, 장보기 등을 해주는 오후 반나절 파출부가 가장 일반적이다.
그러나 주부가 일하지 않아도 웬만큼 사는 집에는 당연히 도우미를 둔다. 돈 있는 사람이 직접 집안일을 한다고 하면 엄청난 짠순이, 아니면 품위없는 사람 취급 받기 십상이다. (돈 있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돈 없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거쳤다는 중국이 오히려 더 심한 것 같다.)
게다가 이 나라에는 '파출부' 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외지에서 온 아줌마들은 물론, 점점 심해지는 구직란으로 인해 상해사람들조차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 TV에서 '외국인 가정에 취업할 파출부 훈련과정'... 그리고 전문대졸 출신 남학생이 파출부로 취업해 일하는 얘기를 취재하여 내보내기도 하더라. ㅎㅎ ) 그러니 대도시 상해에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외지사람들을 위해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좀 써줘야 하는 것이 또한 이 사회의 미덕인 것이다.
확실히 가정부를 쓴다는 건 한국인의 정서상 켕기는 구석이 있다.
평등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한 한국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가정부'란 이쁘게 봐주기 힘든 유한계급의 문화... 게다가 뿌리깊은 '현모양처' 이념까지 가세하여 (중국어에서 이 단어는 폄하하는 어감이 강하다. ^^) '유한마담'을 강력하게 견제하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한국에서는 중산층에 낄까말까 하는 수준으로 살던 사람들도 중국에 오면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자동으로 중상류 계층으로 업그레이드되기 마련이다. 여기에다 앞서 말한 이유로 가정부까지 고용하면 너도나도 완벽한 욍비가 되는 것이지... ㅎㅎ
그러니, '후진국에 나가 있는 주재원 부인들은 완전히 귀족처럼 산다더라' 하는... 부러움 반, 경원 반의 미묘한 멘트를 날리는 친구들에게 가정부 얘기는 참 꺼내기 꺼려지는 화제가 아닐 수 없다. 내 생활에서 결코 무시될 수 없는 화제인데도 불구하고....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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