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舊)

가정부 이야기 2

張萬玉 2005. 6. 26. 09:49

처음부터 가정부를 쓰지는 않았다.

중국어와 중국생활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회사방침은 일단 단신부임 하고 매출이 발생한 다음에 가족을 데려오라는 것이었지만 내가 우겨서 집까지 우리 힘으로 마련해가며 따라온 입장이라, 자리잡기 전까지는 체류비용을 한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발발 떨어야 했다.

가정부가 다 뭔가.... 공장 시작하기 전까지는 우리집 방 한칸을 사무실로 삼아, 출근하는 중국직원 두 사람 점심까지 해먹였으니 내가 바로 가정부였지..


공장을 시작하고 난 다음에 본사에서 한 사람이 더 파견되었다.

당시 외국인의 주숙은 정부에서 지정하는 지역에서만 할 수 있었는데 시 외곽인 회사 가까이에서 그런 곳을 찾기도 쉽지 않았고, 또 말도 못하는 사람 혼자 두기 그렇다고 그냥 우리 집에 데리고 있기로 했다. 뒤이어 또 한 사람....

나도 출근하는 입장이라 그때부터 우리집에도 가정부가 오기 시작했다.

 

내가 없어도 한국음식을 알아서 척척 해야 하니 조선족 아주머니를 고용했다.

'음식 잘 하는 아주머니'를 고르다 보니 큰 한국음식점에서 주방장을 하던 아주머니를 만나게 됐다. 공부 잘 하는 아들 딸 뒷바라지하는 낙으로 지문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고, 이제 자식들 모두 한국기업 하고도 잘나가는 포스코에 취직했으니  이제 좀 편히 사실 만도 한데, 노니까 병 날 것 같다고 다시 일을 찾아 나선 억척스런 아주머니...

음식솜씨도 나보다 훨씬 낫고 이런저런 주문 안 해도 알아서 집안일 척척 처리해주시고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중국식 점심이 입에 맞겠냐고 자발적으로 네 사람분 점심도시락까지 싸주시던 권씨 아주머니 덕분에 1년간 나는 집안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포스코가 장가항으로 이전을 하면서 아주머니도 아들 딸과 함께 이사를 가게 되어 다시 소개받은 최아주머니... 이 아주머니 역시 음식솜씨 좋고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좋은데... 

칠칠치 못한 내 눈으로 보아도 주방이 여간 구적구적한 게 아니다. 음식은 또 얼마나 많이 하는지 버리는 게 반.... (그때 만들어놓은 쌈장을 4년째 먹고 있다) 말을 해도 그때뿐이고 조금 지나면 다시 자기 스타일로 돌아간다. 

 

보모 생활 3년 이상 된 조선족 아주머니들 대부분은 웬만하면 한국집 가정부일은 안 하고 싶어한다. 한국 아줌마들이 잔소리가 많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문화차이일 수 있는데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여기에는 신분차이를 전제로 한 감정적 갈등이 개입되어 있다.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한국 '사모님'들을 재미없어하는 것만큼이나 한국 아줌마들 역시 '고집 세고 마음대로 하는' 조선족 아줌마들을 재미없어 한다. 중국말이 되면 차라리 완전히 문화가 다른 한족에게 처음부터 '한국식'을 가르치는 게 낫다고도 한다.

 

그런 사정을 잘 알기에 마음에 좀 안 들어도 '음식 하나는 알아서 맛있게 한다'는 거 하나로 3년 반을 맡겼다. 나도 그다지 살림을 깔끔하게 하는 스타일도 아닌데다 출근하기 바빠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할 처지도 못되다보니 그냥 눈 질끈 감고....

불행히도 이 아주머니와는 끝이 좋지 않았다. 내가 수험생 아들넘 뒷바라지한다고 한국에 1년 가 있는 동안 집에 무시로 애인을 끌어들이다가 딱 걸리고 말았다. (연애야 자유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nimby--not in my bed yard ^^ )

 

고향에 남편을 두고 대도시로 돈벌러온 아주머니들 가운데는 제3자(중국말로는 혼외정사 관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킴)를 키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왜 안 그러겠는가. 몇년에 한번 돌아가기도 힘든 집이니....게다가 남편이라는 위인이 하는 일 없이 외지에서 고생고생 번 돈 아들넘 학비라고 부쳐주면 술 퍼마시고 노름판에 들어붓는다면? 나라도 그런 위인을 위해 참고 고생하며 정절을 지키겠는가?

 

그 후로도 두 아주머니가 우리집을 거쳐갔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한국직원들 살림 내준 뒤에는 그 집으로 출근하도록 하고 낮에 짬날 때 우리 집에 와서 청소와 빨래만 하도록 했으니 '직원숙소를 거쳐갔다'고 해야 맞다. 하지만 그전과는 달리 일일이 내 지휘를 기다리는 아주머니들이라 사람 쓰는 일이 점점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어휴, 내가 하고 말지!) 

 

그러다가  단신부임했던 본사파견 직원들도 가족이 들어와 살림 차려 나가고, 마지막으로 한 사람만 남게 되니 (때마침 나도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우리집 살림은 내가 하면 되는데) 굳이 사람을 써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식구도 적고 일꺼리도 없는 집에서 날에 날마다 일꺼리 만들어 시키는 것도 참 난감한 일이고... 그동안은 출근을 했으니 망정이지 앞으로 집에 있으면 여자 둘이 있으면서 하나는 빈들거리고 하나는 엎드려 바닥 닦고... 그것도 내겐 익숙지 않은 풍경이고.....

그렇다고 서너시간이면 다 끝나버리는 숙소일만 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 적게 한다고 월급 적게 줄 수도 없고..... 숙소에만 시간제 파출부를 써봤더니 도대체 통제가 쉽지 않고 이동도 잦고....

 

이 시점에서 잠시 한족 시간제 파출부를 고용해봤다(無籍者 여화 이야기의 주인공).

마침 새집으로 이사를 한 시점이라 이거해라 저거해라 심부름을 주로 시키다 보니 문득 갸륵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한족을 고용해서, 귀찮다고 생략했던.... 여염집 부인들이 하는 '스타일이 있는' 한국식 살림 한번 제대로 살아볼까나? 일 제대로 가르친다는 핑게낌에?

 

(한 회 더 써서 마무리하렵니다. 혹시 지겨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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