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雨中산책

張萬玉 2005. 8. 28. 22:02

오랜만에 식구들이 집이라고 찾아왔어도 마침 중요한 거래처와 새로운 거래를 트느라고 불철주야, 저녁 한번 제대로 같이 못 먹어준 남편.... 공장심사가 끝나고 나자 좀 정신이 드는지 그 좋아하는 불멸의 이순신도 포기하고 어디 가까운 데 바람이라도 쐬러 가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그렇다면 항주엘 가야지.

 

손님 핑게, 거기 사는 친구 만날 핑게, 볼일 없어도 심사가 울적한 핑게 등등으로 열 번도 넘게 다녀왔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항주....그리고 西湖.     

 

익숙한 곳이라고 저녁까지 먹고 출발하는 여유를 부렸는데, 내가 안 가봐준 최근 몇 년간 항주 역시 중국 여느 도시들처럼 안면을 바꾸는 바람에(특히 西湖大道와 新西湖라는 대규모 개발로 인해) 서호변까지 와가지고 예전에 두 번이나 묵었던 호텔 찾느라고 1시간 가까이 헤맸다.

 

체크인을 하고 나니 이미 화려한 야경까지 모두 잠들어버린 시각.

밤나들이는 생략하고, 호텔 앞마당인 양 펼쳐져 있는 호수에서 찰싹찰싹 잔물결이 짙은 어둠을 핥아대는 소리를 안주 삼아 서호맥주나 한 잔 빨고....    

 

 

 

 

 



↑동트는 기미에 커튼을 여니 빗발이 제법 굵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雨中散策이 되겠군.

카메라 렌즈에도 빗방울이 사정없이 들이친다.

산책은 서호 남쪽의 柳鶯賓館에서 시작된다. 동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암만해도 종일 걸리더라도 서호를 한바퀴 돌고 말 모양이다. (서호변 일주 총거리 15킬로미터ㅎㅎ) 

 


 

↑ 검푸른 호숫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호수?

하지만 나름대로 朦朧美(몽롱미)를 자랑한다. ㅎㅎ

서호변 중간중간 놓인 저 벤치들은 꿈꾸는 자들을 위한 것...

 

 

 

 


 

↑오호... 저 여인은...

레너드 코헨의 famous blue raincoat 도 김목경의 노오란 레인코트도 아니고 오히려 전씨여인의 빨간바지이건만, 홀로 저리 서 있으니 비오는 풍경을 완성해주는 멋진 포인트가 된다.  ㅎㅎ 

 

 

 

 


 

↑적당한 곳에 뚫린 창은 그대로 액자가 된다.

"아침운동 왔다가 수다떨고 가지요~♬"  (억수 같은 비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한다!"

지붕이 넓은 정자 한편은 그래도 부산하다. 

 

 

산책길 따라 10분쯤 가다 보니 우리가 묵은 호텔의 짝퉁으로 의심되는 호텔이 나타난다.

柳楊賓館...

일단 첫글자가 비슷하고 결정적으로는 발음이 비슷하며(류잉/류양), 같은 골목에 도보 10분 간격으로 위치하고 있으니...  이럴 경우 나중에 생긴 호텔은 짝퉁의 혐의를 받기 마련이다. ㅎㅎ  

1층 식당에 들러 식전산책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오니 서호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광장(아이고, 이름이 생각 안 나네)이 나타난다. 대중적인 서호관광이 시작되는 곳이라 좀 시끄럽다. 

 

 

오호! 내가 본 화장실 중 최고다. ↓

녹음 속에 묻힌 럭셔리 지붕개방형....

 


 


세 남자가 억센 비도 마다않고 장기에 열중하고 있다. ↓



이 시점에서 남편이 흥을 깬다. 오후 세 시까지는 상해로 돌아가야 한단다.

어차피 걸어서 서호 한바퀴는 야무진 꿈이었고, 그저그런 구간은 택시로 이동할 셈이었지만 그 시점이 이리도 빨리올 줄은 몰랐다.

정 그렇다면... 멋대가리 없는 택시를 타느니 젓는 배를 타고 서호를 가로지르기로 한다.

비가 오니 서호에서 조각배에 흔들리는 것도... 그림 된다.

 

 

 

우리 배를 젓는 사공 아저씨, 유난히 입담이 좋은 양반이다. 손님이 듣거나 말거나 마치 뱃삯에 서호 가이드 품삯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여기는지 열심히 노를 젓는 한편 해설에도 열심이다.

늘 듣는 얘기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그래도 제법 흥미있는 얘기 몇 가지 건졌다.

 

1. 서호에서 배젓는 아저씨들 중 90%가 소흥 출신이다.

 

2. 서호에 있는 젓는 배의 노젓는 자리가 배의 뒷쪽을 보고 있는 이유는

    미녀를 거느리고 뱃놀이를 즐겼던 모모 황제 때문이란다.  

    배젓는 사공이 앉는 자리와 황제가 앉는 자리는 서로 등을 지고 있다. 

    황제가 앉던 자리와 마주보는 자리가 또 있긴 하지만 지금도 청춘남녀들에겐 황제석이 가장

    인기란다. (왠지 아시겠죠?ㅋㅋ)

 

3. 최대의 인공호인 서호는 옥황산에서 내려온 물을 여과한 뒤 전당강으로 흘려보내면서 깨끗한

    수질과 늘 일정한 수위를 유지한다(최근에 여과시설이 완공되었다고 한다)

 

4. 최근 新西湖풍경구를 개발하여 전통적으로 알려진 서호10경에 대응하여 신서호 10景을 명명하

   였는데.... 옥천/용정차밭/황룡비취.... 애고, 잊었다. ㅎㅎ

 

5. 항주의 3대 아이러니

斷橋不斷 : 2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아치형 다리에 눈이 쌓이면 볼록 올라온 부분이 햇볕을 많

               이 받아 눈이 먼저 녹기 때문에 산에서 보면 녹은 부분이 끊어져 없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끊어진 다리는 실제로 끊어진 게 아니다"

長橋不長 : 실제로는 삼백미터도 안 되는 짧은 이 다리는 중국 고대 소설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

               이 헤어지기 싫어 종일 서로 바래다주다가 그만 '긴 다리'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긴 다리는 실제로 길지 않다"

孤山不孤 : 악비묘 뒤쪽에 고산이라는 작은 동산이 있다. 원래는 임포라는 시인이 학과 매화를 벗

               삼아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하여 외로운 산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지만 지금은 인근

               이 서호변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가 되었으니 고산은 이제 더이상 외롭지 않게 되었다.

 

 

관광업종 종사자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흥이 나서 청산유수로 읊어대는...  교양높은 뱃사공 아저씨를 보니 (대부분 그러하다) 적잖이 부러운 마음이 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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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남송 시대 화단의 선비들에 의해 간택되었다는 서호10경은

 

斷橋殘雪

白提의 동쪽 끝에 있는 다리(장장 2킬로미터다). 겨울에 완만한 아치형 다리에 쌓였던 눈이 햇볕에 녹아 내리면 멀리서 보았을때 다리 가운데가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


平湖秋月
白堤 서쪽 끝에 있는 평호추월은 가을에 달구경 하는 곳이다. 

 

曲院風荷
곡원풍하는 황제에게 바칠 술을 빚던 곳으로 연꽃이 활짝 피는 4~5월이면 술 빚는 냄새와 연꽃 향기가 함께 바람에 흩날렸다고 한다. 이곳을 찬양하는 시도 많이 남아 있다는데.... 어쩐지 나도 이 지점이 제일 좋더라. ㅎㅎ 

蘇堤春曉
송나라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시인인 소동파(직접 요리하여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는 동파육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가 쌓았다는 제방으로 길이는 2.8㎞이며, 각기 다른 6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이른 봄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이 아름답다 하여 이런 이름이...

 

三潭印月
삼담인월은 시인 白居易가 항주 관료로 있을 당시 대규모 서호 정돈사업을 벌이고 호수 가운데 모래로 두 개의 섬을 만들었는데 그중 세 개의 호수를 갖고 있는 큰 섬이다(즉 호수 가운데 섬, 섬 가운데 호수’의 형세). 삼담인월 안에 있는 연못에는 세 개의 석등이 있는데, 추석에 배를 띄우고 불이 켜진 석등을 바라보면 달이 셋으로 나뉜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花港觀魚

서호의 남서쪽에 있는 정원으로 꽃과 나무가 울창하여 한창 꽃이 피는 5월에 가면 꽃멀미가 날 지경이다. 宋代 한 관리의 별장이었다는데 화려한 꽃나무들과 어우러진 5천여 마리의 붉은 붕어와 잉어의 모습 또한 장관이다. 

 

雙峰揷云

쌍봉삽운은 서호 서남쪽 봉우리인 남고봉과 서북쪽 봉우리인 북고봉(영은사 뒷쪽)을 이어주는 운무를 일컫는 말로 마치 구름에 봉우리가 꽂혀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데, 지금은 안개와 스모그로 아주 가끔 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南屛晩鍾

땅거미가 질 무렵, 서호 남쪽에 있는 南屛山 아래에서는 淨慈寺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매일 저녁 8시에 百八煩惱를 없앤다는 의미로 108번 종을 친다(난 한번도 들어볼 기회가 없었지만..).

 

雷峰夕照
뇌봉석조는 雷峰夕照는 서호 남쪽에 우뚝 솟아 있는 靈峰山의 雷峰塔 너머로 지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인데, 지금은 탑이 없어져 확인할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柳浪聞鶯

유랑문앵은 버드나무가 물결치고 꾀꼬리 소리가 들리는 정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의 풍광은 역시 이른 봄이다. (이곳에 10만 마리의 새를 기르는 항주 최대의 조류원 百鳥園이 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도 이 근방이라 이곳의 이름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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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젓는 리듬에 맞추어 흔들흔들...

흐린 하늘 넘어 '산넘어 산'이 꿈처럼 흘러간다.

항주에는 유난히 이런 이름이 많다(문헌에서 빌린 표현이라고는 하지만 주로 음식점 이름). 山外山,  樓外樓, 門外門....  


 

↑여기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曲院風荷.

그 이름 대로 연못마다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연뿌리를 생산하는 채소밭 같지 않은가? ㅎㅎ

 


 

↑남들처럼 나도 한번 땡겨봤다. 참 곱군.

 



↑하하... 웬 인공물소?




↑곡원풍하에서 바라본 蘇堤(소동파 다리). 봄날 아침이 최고라고 한다. 



 

↑곡원풍하 옆에 공원이 새로 조성되었다.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福井縣에서 투자했다고 한다.

깊고 그윽한 오솔길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오솔길 옆 작은 개울도 정답다.

 


 

↑물안개와 물그림자에 꽂혀서... 발길이 떨어지질 않으나...

 


 

↑어느새 비는 그쳤으나 풀잎에 맺힌 빗물은 여전히 호수에 동그라미를 그려낸다.

  우중산책도 여기서 끝내나 마음에 찍은 점 하나... 그 아슴프레한 파문은 또 며칠 가겠지.

 

P.S. : 여행후기 저 아랫쪽에 예전에 쓴 '첨밀밀 서호사랑'이란 글도 하나 있습니다.

 

P. S. 2 : 제가 그 글을 직접 찾아보니 되게 찾기 어렵네요.

            그래서 카테고리별 글들도 목록으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니까요.

            실크로드 2탄 바로 전에 올라와 있군요.(ㅎㅎ 누가 찾아본다구... 너무 친절한 만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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