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놓고 보기'의 매력을 아시는지...
비디오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나는 쌓아놓고 보기를 좋아한다.
하나가 끝나면 밥 지을 때가 됐든지 말든지 자동으로 그 다음으로 손이 가는.... 끊기 어려운 그 혹독한 유혹.
한번 '쌓아놓고 보기' 마법에 걸리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활동만 남기고 모두 잠수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즐겁고도 괴로운 '쌓아놓고 보기'!
요즘 나는 이 마법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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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빵꾸나는 바람에 영풍문고에 들렸다가 그만 발이 묶이고 말았다.
이 서점엔 한 5년만이다. 진열도 크게 바뀌어 탐험심을 자극하는 데다 평일이라 사람도 없어 오래간만에 서점에서 '죽치는'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권, 두권.....
원래 내 책쇼핑 습관은 좀 완고한 편이다.
주머니가 얇았던 시절의 버릇이리라.... 가난한 동네에선 기호를 충족하는 찻집보다 뭔가 건더기를 제공하는 음식점이 환영을 받듯이, 가난했던 나는 '시간죽이기용' 책을 사본 적이 거의 없었다. 최소한 '눈'뿐 아니라 '머리'까지 동원되어야 하는 책(형편이 좋으면 '가슴으로' 읽는 책'의 사치를 누리기도 하지만)을 사야 본전을 건지겠다는 무의식적인 계산이었겠지. (그렇다고 '장정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살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편식도 심해서 주로 인문사회과학 코너에서 사냥감을 물색해왔다. 취미나 실용 코너에서는 시간을 많이 보내긴 해도 구체적인 필요가 없는 한 들고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베스트셀러 매대에서도 그런 편이었다. 아무리 인구에 회자되는 책이라도 내게 낯설면 일단 목차만 훑어보고 내려놓는.... 돌아가서 어느 정도 사전지식을 갖춘 다음 저 책이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내공을 가진 책인지 알고 사리라는 시건방진 자존심 때문에? (그러니 늦지... ㅜ.ㅜ)
한때 출판사에 몸담고 있었던 경력 때문에 '생산자'의 입장에서 (가끔은 쥐약을 먹기라도 한 듯 동업자--저자--의 입장에서) 책을 사기도 하지만 그런 책들이 나의 눈길을 받으려면 (컨텐츠에서) 적잖이 매력적이어야 했다. 요약하자면 나의 책쇼핑 기준은 빈주머니에 어울리게 무척 까다로웠다는 얘기다.
그러나 확실히 많이 변했다. 세월도 변하고 나도 변했다(주머니사정도, 지력도, 취향도....)
더구나 비교적 익숙한 인문사회과학 쪽 매대에선 너무 오랫동안 독서를 멀리한 탓인지, 아니면 시류가 변해서 그런지 식욕이 당기는 책이 눈에 잘 띄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서서 읽는' 책 쪽으로 가본다.
보아하니 요즘 책시장은 일정부분 인터넷 매체들에 의존하고 있는 느낌이다. 발랄하고 가벼운 읽을거리가 넘치니 예전에 '생각의 힘'을 얻으려고 찾던 책들은 웬지 고리타분한 느낌...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기운 빠진 책'들이 되어버렸다. ㅜ.ㅜ
파워풀해보이는 책들은... 믿을 수 없이 떨어져버린 내 열독능력으로서는 밑줄 그어가며 덤벼도 끝까지 읽어내지 못할 듯하다. 시대의 화두가 되어버린 듯한 새로운 개념들도 영 낯설고....
일단 워밍업 삼아 '읽어지는 책' 부터 집어들기 시작한다. '시간죽이기용' 책도, '낯선' 책도 장바구니에 담는다. 굶었던 끝에 폭식이라고나 할까.... 열 권이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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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는 카레가 없다(이옥순, 책세상)
★ ★ ★ ★ ☆.... 강추.
관점 좋고 설득력 있고 쉽고 재미있는... 아주 잘 쓴 인도 입문서.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김경, 생각의 나무...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의 인터뷰)
플라이급님의 서평을 보고 샀는데.... 재미있긴 했지만 역시 잡지 연재물 묶은 것은 대여점에서 빌려봐도 된다는 생각이....
재주있는 신인류 구경은 잘했지만 약간의 '보보스 냄새'(?)가 내 비위를 건드렸다.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이원복 만화... 서양철학사)
울 아들이 먼저 가로채서 킥킥거리며 읽고 있다. 우리 모자 모두 이원복 교수의 왕팬.
쇼쇼쇼(이성욱, 나무와 숲)
40세 이상 관람가... ㅋㅋ 한번 읽는 데 2시간이 채 안 걸렸지만 후회는 없다.
두고두고 보고싶을 것 같아서...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 19 / 20 (김영사) (오죽 초조했으면....ㅎㅎ)
푸코와 데리다 편인데 200쪽이 안 되는 문고판.
예상대로 다이제스트판은... 꽝이다. 일러스트는 훌륭했다.
외국에서도 이런 기획을 한다는 사실이 좀 신기했고..
악마의 사도--도킨스가 들려주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이야기(리처드 도킨스, 바다출판사)
현재 읽고 있다. 사색을 요하는 흥미로운 저작. 읽는 대로 독후감 올릴 생각이다.
중국여성, 신화에서 혁명까지(서해문집)
아직...
호모 노마드(자크 아탈리, 웅진)
아직...
오늘로 사흘째.... 이번주말까지는 즐~ 상태가 계속될 듯하다.
(이게 어떤 어감이든 상관없다. 지금 내 상태에 딱이다. ㅎㅎ)
여러분도...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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