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는 대강 펌....)
미국 거대 방송사의 CEO인 니콜 키드먼은 기획하는 프로그램마다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승승장구 하던 '성공한 여성'.... 그러나 너무도 자극적인 방송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게 된 그녀는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고.. 상실감에 빠진 그녀를 위해 남편은 살기좋은 마을 스텝포드로 이사하기로 한다.
스텝포드에 도착한 니콜 키드먼의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로봇 강아지부터 말하는 냉장고까지 갖춘 화려한 저택, 평온하고 안락한 마을 분위기, 그리고 너무도 친절한 마을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스튜어디스를 능가하는 한결같은 미소, 바비 인형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옷차림.... 먼지 한 톨 없는 집안 청소에 심지어 남편의 캐디 역할까지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현모양처(!)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그녀들 틈에서 니콜 키드만은 어리둥절하기만 한데....
만화를 즐기듯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지만 씹어보면 좀 딱딱한 건더기가 씹힌다.
영화를 보면서 나처럼 영화의 화면들을 현실의 일면에 오버랩시키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그 건더기가 씹다 씹다 종내 뱉어내야 하는 질긴 섬유질 건더기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주류문화와 비주류문화의 갈등
현모양처 VS 커리어우먼(혹은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지지 않은 여성)
연분홍 원피스 VS 검은 정장, 혹은 낡은 스웨터와 청바지
홈메이드 컵케익이 줄 서있는 주방 VS 발 들여놓을 틈 없이 어지러진 치열한 작업실
공화당 의원 후보 VS 게이(직업이 뭐였더라?)
(히피 스타일의 작가와 게이는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경력이 있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갈등구조의 기본 틀은 '남성 대 여성'의 권력쟁탈로 보이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보면(설정이 조금 약해서 눈에 잘 안 띈다) '보수성을 바탕으로 한 천편일률' VS 진보적(?) 성향을 바탕으로 한 다양성'의 대결을 느낄 수 있다. '여성'이자 격동의 7080 시대를 겪은 '삐딱이'의 정체성(그러나 이제는 기성세대의 대열에 확실히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조금은 혼란스러운 신분)을 가지고 2000년대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내가 순간순간 느끼는 갈등구조와 많이 닮아 있다.
갈등구조를 조성하는 것은 '전통적 관념' 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주로 희화화하고 있는 것은 '성역할의 복원노력' (이미 남성들의 영향력을 벗어난 여성들을 길들이고자 하는 남자들의 안간힘)이지만, 이 나이에 내가 더 실감나게 느끼는 것은 그보다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금전만능주의'와, 그와 어깨동무 사이인 매스컴이 유포하는 천편일률적인 삶의 이념이랄까 양식이랄까(사회학 전공을 안 해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암튼 그런 것들에 대한 저항감이다.
# 우리 시대의 천편일률
현모양처 이념이 어느 정도 탈색되어 이제는 낄낄 웃으며 '스텝포드 와이프'를 즐길 정도는 된 우리네 아줌마들.... 그러나 (비록 영화 끝에서 한방에 날려버리긴 하지만) '스텝포드 주민'의 완벽한 삶이 현실에서 구현된다면(로봇이 된 아내들의 극단적인 설정만 뺀다면) 아마 쉽게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될지도 모른다. 소신껏 힘들게 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어차피 왼손잡이는 살아내기 힘든 세상.
문은님은 아줌마들 모이면 하는 얘기가 '교육', 부동산', '성형' 얘기라고 한탄을 했지.
안 그럴 재주가 있을까? 학벌과 외모와 금전이 평생의 '행복'을 결정짓는다고 믿는 사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자 그 얼마나 되랴. 적어도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자식들의 삶이 그렇게 풀릴 수 있도록 돕지 않으면 부모 노릇 잘 못하고 있다는 자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우리 못난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약심장'이다.
천편일률의 함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나도 가끔은 레디 메이드 인생의 미망에서 왕창 이탈해보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영화에서는 다른 맥락에서 나오는 대사지만 살짝 빌려서) 배짱좋게 이렇게 한번 외쳐보고 싶은 것이다.
"I can do it better !! " (내 방식으로... 더 잘 할꺼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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