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오사카 견문록 7 - '역사산책의 길'을 돌아 부산항으로...

張萬玉 2005. 12. 1. 19:23

늦게까지 셀프마사지와 더운찜질에 공을 들였더니 아침 컨디션이 생각보다 괜찮다. 어젯밤 같아서는 오사카박물관 딱 한껀만 해야겠다 싶었는데, 몸이 따라주니 체크아웃 하기 전에 원래 계획대로 쟌쟌마치에 잠깐 들러봐야겠다.

 

짐 싸고 눈꼽만 떼고 집을 나서는데 동네 초등학교 꼬맹이들이 등교를 한다.   

 

 

일본애들 옷 입는 거 참 이상하다. 윗도리는 파카와 외투로 완전무장을 하는데 이상하게 아랫도리는 무척 허전하다. 꼬마들도 이 추운 겨울에 스타킹도 안 신은채 반바지와 스커트 차림이다. 

 

내가 가려는 쟌쟌마치는 징용 때 끌려온 한인들을 비롯, 오사카항에서 일하던 부두노동자들이 집단거주했던 지역으로 아직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네라 했다. 과연 두 정거장 떨어진 동물원 앞(도부츠 마에)역에서 내리니 동네 사람 대부분이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 노인들이다.   

 

교회인 모양인데 색깔 때문에 그런지 좀 살벌해 보인다. 죄 지으면 벌 받는 곳 같은 이미지...

그래도 쓰여진 내용을 대강 짐작해보니 기독교 기본 교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 않은데...  

 

 

요건 가판대 옆에 붙은 광고. 저 도사님은 여자일까 남자일까. 어째 邪敎 교주 같은 분위기...

일어가 되시는 분들은 그 위에 붙은 광고문도 좀 읽어보시길.. ㅋㅋ

 

 

곧 시장선거가 있는 모양이다. 오사카는 전통적으로 야당지역이라던데...

 

 

뒤로 보이는 通天閣이 이 한많은 거리의 상징이란다. 지금은 동물원과 함께 페스티벌 게이트, 세계의 욕탕 등 대규모 위락시설이 들어서 꽤 흥청거리는 거리로 변했다고 한다.

 

 

스시집 간판에 붙은 저 아저씨는 몇 년동안 이 시장골목을 지켜왔을까? 

 

 

'역사산책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 거리의 역사를 알려주는 홍보물들. 

 

부근의 노점에서 아들넘 줄 '니뽄 feel' 의 은색 파일럿 잠바 하나 사고(2500엔... ^^) 아침거리를 느껴볼 겸 숙소까지 슬슬 걸어가보기로 한다. 문앞에 걸린 탈바가지 아니면 그냥 지나칠 뻔한 한국음식점 앞을 지나고 배에서 룸메이트들과 나눠먹을 과일 몇 알 사고... 조금 더 걸어가니 바로 덴덴타운이 나타난다. 우리 숙소에 덴덴타운 드나드는 보따리 상인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온 시간은 열 시 반. 세 밤을 고맙게 재워준 오사카 하우스 주인내외에게 인사를 하고 배낭을 다시 짊어지니... 올 때는 어떻게 지고 왔는지 모르지만 지고 갈 일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어쨌건 가야지 우짜겠노.

 

니뽄바시 혼마치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谷뭐시기 역 (이사 통에 오사카 전철도가 어디로 숨었는지 몰라 역 이름을 명시할 수가 없군)에 내려 락커에 짐을 맡기고(소형 300엔, 대형 500엔) 가뿐하게 오사카시 역사박물관으로 간다. NHK 방송국과 같은 건물을 쓰고 있다.

10층부터 8층까지는 오사카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고 7층에는 고고학에 관한 특별전시가, 6층에는 가부키에 관한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 가부키 전시라니... 그건 또 뭔가 해서 비싼 표를 끊었는데... ㅎㅎ (말하자면 가부키의 대본 전시회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겐 물패!)   

 

 

박물관 안에서는 사진촬영 금지라 촬영이 허용된 마네킹 사진뿐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의 궁녀 마네킹. (우리랑 비슷하죠?)

 

 

1920년대의 오사카 시장을 재현했다. 아기 업은 모습이 특이하다.  

 

 

여기는 7층. 아이들에게 고고학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해주는 재미있는 게시물. 이렇게 자상한 설명이라면 내일의 꿈나무들을 키우는 데 꽤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박물관 창을 통해 본 오사카성 원경. 모든 성곽이 그렇듯 거대하고 아름다운 해자에 둘러싸여 있다.

 

주마간산으로 오사카시 박물관을 둘러본 뒤 아직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기에, 가까이 보이긴 해도 꽤 먼 오사카성으로 이동.  

 

 

오사카 성 들어가는 길.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운동을 하는 직장인들이 꽤 눈에 띈다. 

 

 

오사카성의 꽃 천수각...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땡겨 찍었다.

 

아쉽지만 돌아가야 할 시간. 간단히 점심을 먹고 떠나려 했는데 눈을 씻고 봐도 그 흔한 우동집 하나 없는 허허벌판. 할수없이 고픈 배를 움켜쥐고 중앙선에 올라 코스모스퀘어 역에 도착, 무거운 가방 때문에 일본에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택시를 타고(딱 기본요금 거리다. 660엔) 페리호 터미널로 가니 아직 대합실이 한산하다. 3층 전망대에 가면 먹을 것좀 있겠지, 마지막이니 맛있는 것 실컷 한번 먹어보자 했는데... 웬걸, 상하이에서 지겹게 보았던 日精 컵라면 뿐이다.

 

망연자실(ㅋㅋ)하고 있는데 배에서 만난 아저씨가 손짓을 한다. 일본에서 15년을 살았고 지금은 부산에 정착했는데 일본유학중인 딸을 보러 자주 드나든다던 아저씨다. 오사카의 연인 역할을 맡기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지만(ㅎㅎ) 그래도 어두운 갑판에서 나누었던 일말의 우정에 입각하여 배낭을 맡아주시는 고마운 아저씨... 얼른 길 건너 건물로 뛰어가 우동정식 한그릇 맛있게 먹고 돌아오니 그새 승선 대기하라는 방송이 있었는지 그 무거운 배낭을 1층으로 옮겨주시고 앞자리에 줄까지 세워놓으셨다. 세상에나....(아저씨, 급히 개찰하는 통에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말았네요. 도움이 꼭 필요한 시점에서.... 정말 감사했어요)

 

다시 하룻밤의 항해 시작이다. 다시 만난 룸메이트 두 자매팀, 한보따리 사온 선물들을 풀어놓고 자랑, 자랑.... 같은 숙소에 머물면서도 얼굴 한번 보기도 어려웠었는데 다시 만나니 마치 친자매나 되는 듯 반갑고 정답다. 고양이세수만 하고 다녔던 삼박사일의 고단함을 싸우나로 씻어내고 일찌감치 침대로 다이빙하여 이튿날 일곱시까지 깊고 긴 숙면.

 

홍합이 잔뜩 들어간 시원한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고 갑판 까페에서 커피 마시며 주인아주머니와 담소. 부산에 사는 이 아주머니는 일주일에 나흘을 배에서 주무신단다. 국경 넘기를 밥먹듯 하는 색다른 직업이지만 이것도 일상이 되면 지루하겠지.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는 배들은 희망을 싣고.... 

 

아홉시가 넘으니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갑판으로 올라온다. 갈 때 보고 다시 보니 괜히 친한 척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늘 역시 하늘, 구름, 햇살, 바람... 모두 완벽하게 아름다운 아침.

 

어느새 부산항 가까이까지 왔는데 역조류와 선박의 폭주로 인해 하선이 한 시간 정도 늦어진단다. 비행기나 KTX 예매를 한 승객들은 프런트에 와서 신고해주면 예약한 시간에 늦지 않도록 조치해주겠다는 방송이 나오길래 신고하러 갔더니 예약한 시간을 바꿀 정도로 늦진 않겠다고 대신 하선할 때 맨 앞에 세워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하선준비하라는 방송을 듣고 짐을 꾸린 다음 그 약속에 따라 줄 앞으로 나갔는데 참으로 민망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예매한 표를 가진 승객들을 맨 앞에 세워주는 데 대해 한국말이 어눌한 할아버지 한 분이 거칠게 항의하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의 항의 속에 '차별'이란 단어가 수도 없이 튀어나온다. 승무원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용없고 뒤에서 보다 못한 사람들이 끌끌 혀를 차고 설득을 해도 소용이 없다. 얼마 만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아주 오랜만에 고국에 다니러 오시는 모양인데, '너무하신다'는 생각보다 혹시 일본에서 '차별'을 너무 많이 경험해서 저렇게 오해하시는 것 아닌가 하는 딱한 생각이 들었다.(이 대목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하는 가사가 절절하게 떠오르더군)

 

우여곡절 끝에 하선을 하고 보니 12시 40분. 서울에서 동행했던 자매와 손가락 걸어가며 약속했던 자갈치시장 구경은커녕 1시 20분발 KTX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린 다시 뛰어야 하는 신세...

부산구경 못한 아쉬움은 이걸로나 달래자며 충무김밥 도시락 하나씩 사들고 KTX에 오른다.

 

호주머니에는 비상금으로 준비해간 3만엔이 그대로 남았다. 정말 '아들넘 쓰고 남은 동전만 다 쓰고 오겠다'고 한 말이 씨가 되었는지... ㅎㅎ (사실 남기려고 한 게 아니라 정말 '먹을 시간', '쓸 시간'조차 없었던 바쁜 일정이었다.) 자금이 아직 남아 있으니 언젠가 다시 한번 가게 되려나?

길 떠날 때의 기분과는 달리 여건이 되면 다시 한번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순위에서 밀릴것 같긴 하지만....) 잠시나마 '왜색'에 푹 빠졌던 모양이다. 꼼꼼함, 친절함, 검소함, 부지런함..... 몸으로 때우는 여행을 하다 보니 내가 선호하는 이런 미덕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뻔한 말이 자꾸 머리속을 맴돈다. '정치는 정치고 역사는 역사고....민간의 우정은 우정이고.... '

오사카 여행의 후유증이다. ^^

 

 

* 좀더 정성들여 쓰고 싶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마무리를 향해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지루한 시나리오 행각을 시작할 때부터 저의 오사카 여행에 동행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오사카 견문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