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대단한 명성황후

張萬玉 2005. 12. 25. 21:12

오늘은 드디어 남편이 명성황후 치마폭에서 놓여나는 날이다.

아마 5년 전쯤? KBS에서 내보냈던 연속극인 모양인데 여기서는 DVD로 제작되어(분명히 해적판일 것이다) 팔리고 있다. 5개월 전 한국에 들어가면서 홀로 남겨진 남편이 안됐길래 시장 가는 엄마가 혼자 집보는 아이에게 사탕 물려주고 가는 심정으로 '허준'(이것도 10년도 훨씬 전에 방영되었던 연속극인 듯..)과 '명성황후' 세트를 사다 두고 갔었다.

작년 겨울에 '대장금' 세트를 빌려 보기 시작했다가 거기 빠져서 몹시 고생했던..(한번 보기 시작하면 하룻밤에 2장, 즉 여섯편씩 보지 않고는 못배겼지) 기억 때문에, "정 적적할 때 한 장씩만 보시라"는 당부를 단단히 해두었건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조절되는 일인가.

 

스카이라이프가 고장난 뒤 퇴근 후 생활에 낙이 없자 손대기 시작해서 '허준'은 일찌감치 끝났고, '명성황후'는 11월 중순부터 보기 시작했다는데... 내가 중국에 들어온 시점에서 총 42장 중 30고지를 넘고 있었다. 한 장에 3회분씩 들었으니 한 달여만에 100회를 봐치운 셈이다. 매일 한 장씩 꾸준히 봤다면 모를까 출장이나 손님접대가 있는 날도 있으니 어떤 날은 혹시 날밤을 새우지 않았을까?

 

마눌과 아들이 돌아온 처음 며칠은 자제하는 듯 보이더니 곧 본색을 드러내어 밤마다 명성황후랑 노느라고 정신이 없다. 나도 중간에 끼어들긴 했지만 연속극이라는 게 영화와 달라 어떤 회는 박진감이 있지만 대부분은 질질 끌기 일쑤라 나는 그저 건성건성 들락날락 힐끔힐끔.... 그런데....

 

정말 불쌍해서 볼 수가 없다. 국사 시간에 다 배운 내용이지만 구체적으로 재구성을 해놓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일국의 궁궐이 외국군대에 며칠에 한번 꼴로 침범을 당하지만 왕실에는 그걸 막을 군대조차 꾸릴 돈도 없다. 얼마나 힘이 없으면 이나라 저나라 짱을 보며 외줄타기를 하는 능력이 정치적 지도력으로 부상을 할까.

 

그 와중에서 민족자주를 고집(배양이 아니라)하는 것은 더 큰 화를 불러오는 미욱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조건에서라면 친러파니 친일파니 하며 돌 던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미 대들보가 다 썩어 무너지기 직전인데 수리할 연장 빌리러 간 사람을 탓하랴, 시멘트를 덧바르는 사람을 미욱하다 탓하랴, 무너지기 전에 희생이나 줄여보자고 가솔들을 피신시키는 사람의 비겁함을 탓하랴... 역사의 교훈을 그런 각도에서 얻으려고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우왕좌왕하는 무리들을 하나로 모으고 역할분담 시킬 수 있는 정치력을 구하기 위해서 밝히고 분석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역사논쟁은 복잡하니 옆으로 밀어두고...

하나 무지 궁금한 게 있다. (아시는 분 좀 알려주시기 바람)

왜 민비가 중간에 바뀌었냐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미연은 어디 가고.... 최명길이 이미연보다 나이가 더 들어뵈어 바꾸었는가? 

 

 

명성황후

 

우쨌든 최명길도 연기 잘 하더라. 유동근과 최명길의 연기 보는 맛이 드라마의 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동근은 (내가) 젊었을 때는 눈에 뵈지도 않더니 요즘 본 그 냥반, 눈빛 하나만으로도 내 가슴을 꽉 채운다. (휴, 내가 늙긴 늙었나보다.. ^^)      

 

일본인들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개그콘서트 수준이다. 무슨 사극을 저렇게 막 만드는고... 중국인들도 즐겨보던데... 민망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중국어 번역도 너무 엉망이다. 글씨 틀린 것도 많고 어감을 이해하지 못한 오역 투성이....

예를 들어 조수미가 부르는 주제가 가사를 보면, 후렴 부분 "나 슬퍼 살아야해"... 다음 소절은 "나 슬퍼 살아야 해"다. 그런데 번역은 두 번 다 "나 슬퍼도 살아야 해"로 나온다. 두 번째 소절에서는 '슬프기 때문에 더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 강조되어야 그 의미를 살리는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런데 번역을 두 번 다 但是(그러나)를 써버렸으니...명성황후가 그렇게 소극적인 여자였던가? 실제는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연속극에서 그려낸 당찬 민비는 그러면 못쓴다. 두 번째 소절에서는 마땅히 所以(그래서)를 써야 한다.       

 

민비가 영민하고 오기 있는 여성이었던 것은 분명한 듯하나 정치적 식견은 외교적 잔머리보다 모자라지 않았나 싶다. 그러고 보니 건성이었던 나도 알게 모르게 명성황후의 치마폭에 말려들었나보다. 실제의 민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몹시 궁금해지니 말이다. ㅎㅎ.          

 

남편은 뭐 하나 시작하면 올인해서 끝장 보는 스타일이다. 발동 걸리면 정말 못말린다.

어제도 밤 세 시까지 명성황후랑 놀더니 오늘 골프 나가 엄청 헤매더군. 자기도 고달펐던지 돌아오는 길에 한다는 말쌈... "오늘이면 드디어 명성황후 치마폭에서 벗어나겠군."

 

오자마자 마지막 남은 한 장 돌릴 준비를 하며 희희낙락하는 남편을 째려보며 투덜투덜...

에휴, 죽은 민비가 산 만옥이보다 더 좋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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