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광동출장 갔던 남편이 돌아오는 날. 손님과 함께 돌아온다니 어서 무기력 모드를 수습해야 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외부적인 요구에 의해 몸이 움직이게 됐나. 참 게을러 터졌다.
인간관계가 점점 줄어들기만 하는 현재의 시추에이션에서 이렇게 수동적으로 살아가다간....
망한다, 만옥아.. 다사분망하던 예전엔 어느 정도 그래도 됐을지 모르지만... 이제 그건 약발이 듣지 않는다구. 어쩌면 완전히 무풍지대에서 살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이제 생활모드를 확실히 전환해야 해. 내가 좇는 것들은 어쩌면 허망한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딴데 정신팔고 더 이상 대충대충 건너뛰는 건달같은 생활... 어떤 구실로 합리화될 수 있겠니. 결국 게으름으로 나를 망가뜨리게 될지도 몰라.
무던한 남편 만나 많이도 생략했던... 그러면서 점점 잊어가고 있던 현모양처의 역할에 당분간 몰두해보기로 한다. 그거라도 붙잡지 않으면 무너져버릴 것 같다.
눈에 띄게 활기가 죽어가는 몸, 멍청해가는 사고력, 후줄근하게 퇴색해가는 외양 하며...
솔직이 말해봐.. 인정하긴 싫지만 남몰래 자꾸 기죽고 상처받는 게 이런 것들 아니니...은연중에 회피하고 너만의 게으름 속으로 침잠하고 싶은 거 아니니...
이제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해.
내 또래 아줌마들이 어떻게 활력을 찾는지... 마음 비우고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마음이 안 따라주면 겉으로라도 개선을 시작해야 한단 말야. 암, 그렇게라도 시작해야지.
그래서 우선 터분한 머리부터 자르기로 했다.
내친김에 매니큐어 코팅까지 했다. 웰빙파마라는 것까지 하려다 참았다.
세상은 내게 멋쟁이가 되라 한다.
그래, 이제 나도 멋쟁이가 될 꺼다.
내가 생각하는 멋쟁이는 멋낸 티 안 나는 멋쟁이...
돈 쳐바른 티 안 나는 부티... 컨셉은 세련미... 으하하하!!
두고 봐라. 컨실러도 사고 체형보정 속옷도 살 꺼다. 머리도 꼭 경희궁의 아침에서 할 꺼다.
하면 된다. 맘 먹으면 세련된 여성, 현모양처... 나라고 왜 못해?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살림 열심히 할 꺼다.
청소도 매일 하고 쇼핑도 열심히 하고... 안목있다고 칭찬받는 싸모님이 될 꺼다.
남편 밥상도 아침 한끼라고 무시하지 않고 알차게 챙겨줄 꺼다.
나를 위해서도 다이어트 식단에 입각하여 열심히 챙기고 녹차 열심히 우려서 2리터씩 마실 꺼다.
운동?
이게 핵심이지.유산소운동과 수영, 요가... 시간표 짜서 규칙적으로 할 꺼다.
관절 걱정되면 전문가를 찾아 도움 받으면 된다. 기죽지 마라. 발랄한 중년아..(흑, 종년아... 처럼 보인다. 제발 시니컬 좀 갖다버리자.)
방금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밤 열 시에 도착한다고 술안주 꺼리라도 준비해달란다.
미리 연락 좀 하지... 손님술상을 이 밤에 갑자기 우짜라고....
냉장고 뒤져보니 썩 떠오르는 건 없지만 그래, 성의껏 준비해주지... 골뱅이 국수 비비겠다.
이제 당신한테도 정성을 다할 꺼야. 아내의 세심한 배려라는 게 뭔지 알려줄꺼야.
두고 봐. 아, 진짜라니까?
그래서 오늘부터 일기 쓰기 시작하잖아.
내일부턴 점검표 만들어서 체크 들어갈 꺼라구.
일단 가보자고... 현모양처 놀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안 하는 것보단 훨씬 나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