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건조주의보

張萬玉 2006. 2. 13. 08:50

오랜만에 주제와 격식을 무시한 주저리주저리....

가끔은 나만을 위한 블러그생활(!)도 필요하거든.

 

지난주에 생존에 필요한 물품만 남겨놓고 모옹땅 싸서 한국으로 보내버렸더니 집안이 텅텅 비었다. 게다가 아들넘 분가했지, 남편도 한국출장중이지....정말 완벽에 가까운 '텅텅'이었다.

처음엔 이 자유로움이 너무 좋았지.

아예 정신마저도 육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훨훨 날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더구나.

 

허나.... 자유는 자유로울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누릴 수 있는 건가봐.  

'텅텅'의 경지에서 나는 참을 수 없는 자유로움에 치를 떨었지. 

잔물결이 찰싹대는 소리가 들렸어. 삶의 밑바닥에 숨어 조용히 흐르고 있는 허무의 강물.....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이(물건이고 인간관계고 격식이고 간에....)

생략해갈 수 있는 것으로서 하나둘 그 정체를 드러낼 때 내 귀엔 그 망할놈의 속삭임이 들린단 말이지. 

삶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그 비밀은, 더이상 새삼스러운 것도 당황하거나 슬픔에 잠길 것도 아니라는 판결을 받은 지 이미 오래지. (아마도 사춘기 이후?) 어차피 불치병이라면 어떻게 그 병과 함께 살아가느냐를 익히는 게 어른스런 판단 아니겠어.  

 

그렇게 살다 보니 미욱한 집착은 많이 줄더군. 욕심도, 사람 미워하는 것도 많이 줄었지.  

그런데 말야... 문제는 점점 희망도 절망도 별다른 무게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야.

오히려 장난기 같은 것조차 발동을 한단 말이지. 기쁨도 슬픔도 갈등도 한껏 부풀려보기도 하고....

(친구야, 네가 내뱉은 이 독약같은 말, 내가 좀 빌려 쓰자)

최소한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열정을 만들어 낼 기력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충전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열정의 밑바닥이 언뜻언뜻 비치는 순간이 이즈음은 너무 자주 찾아온단 말이야.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타인에 대한 관심도, 물질에 대한 욕심도 덧없이 느껴지는 세상은 너무 팍팍하고 버거운데.... 내 맘은 바삭바삭 말라들어가기만 한단 말야.

산다는 일이 점점 두려워져. 우짜믄 좋냐. 

 

친구야,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마라.

그래도 다행인 건 '집중적으로 이런 마음이 드는 때'가 있다고들 하니

이 때가 지나가면 살기가 훨씬 편해질 거라는 얘기 아니겠니?

난 잘 버텨낼 꺼야. (지금도 겉으론 잘 버티고 있지. 옆집 꼬마랑 체스도 두고 말야. ㅎㅎ)

한국 가면 좀더 장기적인 대책으로 맞설 꺼야.  

 

이번주도 어김없이 '텅텅'이지만 지난주처럼 잠겨있지만은 않을래.

여기저기 붙여놓은 '쓸데없음' 딱지 떼어버리고 귀차니즘의 요때기도 벗어던지고....

촉촉한 봄비가 내려주지 않으면 인공강우라도 뿌릴 거니까  

 

응원해줘.... 오늘 봄볕이 아주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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