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花樣年華

7080-4 : 대학생활의 감초... 미팅 이바구

張萬玉 2006. 3. 23. 16:28

요즘은 고딩 때 다 끝내버려 대학 땐 미팅이 아예 없다지?

영어회화 배우러 다닐 때, 남자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미팅'을 한다고 하니 미국 선생님이 '근데 웬 회의?"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하더군. ^^

blind date라니...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시추에이션인가.

우리 때는 내놓은 소지품 골라잡기를 하거나 번호표 뽑기를 해서 짝을 정했지만

이름에 걸맞게 더 흥미진진하게 하려면 넓은 홀에서.. 눈 가리고 나잡아봐라~ 해가지고 짝을 찾는 것도 재밌겠다. ㅎㅎ 

 

사실 4년 통틀어 미팅 열 번도 안 했고 미팅 때문에 드라마 쓴 일도 없기 때문에 미팅 스토리는 내 대학생활에서 그냥 지나가도 좋은 대목이지만... 한약에 감초가 빠질 수 없듯 대학생활,그것도 '한낭만'하는 7080 스토리에서..... 이걸 빼놓으면 남의 추억 속에서 자기 청춘 한번 찾아보려고 별렀던 분들이 섭섭해하실까봐... 한 꼭지만 간단히.... ^^

 

# 동생들, 머리 좀 기르고 오지? 

 

미팅이 별건가. 남녀칠세 부동석의 엄한 가정교육 아래서 여학교와 집만 왔다갔다 하면서 남학생하고 얘기 한번 못해봤다면 모를까 어릴 적부터 교회 다니면서 또래 남학생들에 익숙한 나로서는 새삼 설렐 일은 아니지. 허나 대학가의 '미팅' 이라는 '미풍양속'에 대해 들어온 바 적지 않기에 기대하는 바 또 적지 않았겄다.

 

드디어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첫 미팅신청이 들어왔다(아, 나는 교육심리학과 출신. 호구조사 하고 싶으신 분 해도 좋습니다. ^^ ) 과에서 주선하는 미팅이라 우리 과 30명 대부분이 몰려나갔다. 같이 멋부리고 같이 버스타고.... 그러니 상승작용을 일으켜 기대가 얼마나 컸을꼬.

 

아, 근데... 이게 뭐야!!

앉아 있는 애들이 하나같이 까까머리다. 지난주에 문무대 들어갔다 온 것이다(당시 대학에 갓 입학한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두 주일 정도 입소 군사훈련을 실시했었다. 고등학교 때 군사훈련의 일종인 교련과목이 있었던 것과 함께 지금 아이들에겐 '믿거나 말거나'가 되어버린 역사...)

내 상상 속의 파트너는 당연히 키도 크고 머리도 긴(당시 유행하던 스타일..^^) 멋진 청년이었는데, 이건 볼따구니에 여드름 자국 선명하고 여학생 앞이 부끄러워 눈도 잘 못 맞추는... 까까머리 고등학교 동생들이 데이트하자고 앉아 있는 것이다.

 

번호뽑기로 정해진 내 파트너 역시 비슷했다. 얼마나 얼마나얼마나얼마나 실망이 컸는지....

예의상 호구조사 하고 취미조사 하고...또 무슨 얘기 했더라?

파트너가 마음에 들면 자리를 옮기던지 애프터 신청을 주고받겠지만... 참을성 없는 난 한 시간을 못 채우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내 파트너도 굳이 잡지 않더군. 실망스러웠던 첫미팅.

 

# 아저씨... 대략 난감...

 

실망을 안겨준 첫미팅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팅에 대한 내 기대는 꺾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같은과 친구가 주선한 공대 2학년생들과의 미팅.

앗, 그런데.... 이번에는 아저씨들이다. 복학생들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군복무가 3년이었으니 우리보다 네 살 정도 많았겠는데 왜 그렇게 동네아저씨 같던지.

아니, 네 명이 고향친구라는 그 팀이 특별히 노티나게 노는 팀이었던 듯.

다른 세 명은 공대생이었지만 내 파트너는 독문과였고 그래도 그중 젤 나은 것 같긴 했지만  여전히 동네아저씨였다. 동네 아저씨를 이해하기엔 아직 한참 어린 나이...

나는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주선한 친구는 파트너가 마음에 드는지 자꾸 나를 끌어들여 두 커플이 같이 애프터를 했다. 탁구 치고 저녁 먹고...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두어 주 지난 토요일에 두 아저씨가 기숙사로 찾아왔다. 공대가 바로 옆에 있으니 주선한 애는 자기 파트너랑 주중에도 자주 데이트를 한 모양인데 내 파트너가 기약없이 헤어진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단다. 멀리까지 온 정성을 마지 못하고 같이 춘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에휴, 나이어린 계집애를 사로잡으려면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돈까스를 사줘도 모자랄 판인데... 이 아저씨들은 어느 강가에 있는 매운탕 집으로 우릴 데려갔다. 매운탕까지는 참아줬지만 소주가 좀 올라오자 흥에 겨워 젓가락 두드리며 '장밋빛 스카프'를 부르는 내 파트너... 그만 없던 정까지 딱 떨어져서 이 아저씨랑 더 만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

 

# 풍차 바람으로 날 날려버린 섹시가이

 

그후 '혹시나' 하고 나갔다 '역시나' 하고 돌아온 몇 번의 미팅을 통해, 미팅이란 게 별로 기대할 게 없구나... 하던 즈음, 몇주 후로 다가온 축제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나간 미팅에서 '멋있어 뵈는' 파트너를 만났다.

 

킹카 쪽은 아닌데(사실 난 킹카 안 좋아했다. 머리가 비었거나 나에게 집중하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묘한 매력이 있었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비쩍 말랐는데 퇴폐적이랄까 성숙하달까... 말하자면 이주노 같은 스타일이었다.

 

얘기하는 것도 (일단 목소리가 섹시했다 ^^) 달랐다. 처음에 호구조사 안 했다.

그리고 댑따 한다는 소리가 자기는 재수할 때 단물쓴물 다 맛본 더러운 놈이라고 했다. 허걱!!

재수를 해서 간신히 대학 들어왔는데 막상 와보니 재미가 없어서 계속 다닐지 모르겠다....드럼을 치는데 비오면 학교 안가고 연습실에서 산다....내뱉는 말마다 신선(!)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렇게 특이한 녀석이 어째 범생이 같은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애프터 신청을 받았다. 그날 밤 잠못자고 그애 생각만 했다.

 

약속한 일요일... 내가 약속시간을 30분이나 늦었다. 성가연습을 했나, 성경공부를 했나... 아무튼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교회 이야기가 나오게 되자 그만... 난 그 애에게 전도를 하고 말았다!!

그래도 내 얘기에 열중하(는 듯 보)였기 때문에.... 난 다음에 날아들 그 애의 카운터 펀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날도 남산길을 걸었고 좋아하는 음악 얘기로 즐거웠다.

저녁을 먹자고 그 애가 날 데려간 곳은 '풍차'라는 경양식집...

거기서 난 축제 초대장을 내밀었다. 다음주말이 축제이니 와서 내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그때 그애의 표정에서 난 아무것도 읽지 못했지... 그런데...

 

축제를 사흘 앞둔 날 난 반송되어온 초대장 속에 들어 있는 그애의 쪽지...

"축제에 못 가드려서 죄송합니다. 난 나쁜 놈이에요...'

허걱!!

자존심에 울지는 않았지만 망치로 뒷통수를 호되게 맞은 듯 충격이 상당했다.

왜, 왜, 왜!!!!

내게서 자초지종 말초지종까지 다 듣고난 방 언니 하는 말... "너 어디서 만났다고 했지?"

풍차다방이라고 하니까 거기는 바람맞힐 생각이 있거나 헤어지자는 얘길 할 때 만나는 다방이라고 한다. 다분히 고의적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

 

아무튼 이 사건으로 나는 대학 들어와 처음 맞는 축제에 파트너도 없이 외롭게 지냈단 야그...

 

 

# 그리고 뒷 얘기

 

이 못된 녀석을 정말 우연히 만났다. 3년 뒤 4.19... 학교 후배들과 4.19 묘지에 참배하러 갔다가....

눈을 의심하여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나도 안 변했다. 퇴폐적인 그 모습...

그녀석도 내가 낯이 익은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더군. 그것으로 끝이었다.

(알았을까, 몰랐을까? 근데 그 퇴폐적인 녀석도 학생운동을 했단 말인가?)

 

그 후에도 친구들 권유에 끌려 미팅은 좀 더 했지만(종강, 개강 때마다 빼놓지 않던 고팅까지 포함하여...) 미팅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이걸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