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花樣年華

7080-16 : 슬픔이 슬픔을 만날 때

張萬玉 2006. 4. 24. 15:08

해가 바뀌고 봄이 왔다.

온갖 수모와 구박을 견디며 간신히 미싱사 꼴을 갖추게 된 만옥이.... 옷더미 속에서 가끔 고개를 쳐들고 현장 안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자 이제 슬슬 '동지'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는데...

아침에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배드민턴을 치는 친구들이 있기에 그 팀에 끼어들었다. 

며칠은 쌩쌩 잘 쳤다만...

 

어느날 아침 아뿔싸, 발목을 겹질리고 말았다.

좀 아프긴 했지만 한참을 주무르고 파스 한장 붙이고 나니 견딜만 하여 그냥 일을 했다.

그런데 종일 미싱을 밟아대고 나니 발목이 점점 부어오른다. 그런데도 그날이 마침 라인 조장이 회사 그만둔다고 송별식을 하는 날이니...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소냐. 시큰시큰하는데도 꾹 참고 2킬로 정도 떨어진 중국집까지 걸어가서... 거기다 고고춤까지 열심히 췄단 말이다. 헌데 기숙사 귀관시간이 다 되어 얼른 돌아가야 하는데...

 

에구구... 다리를 떼어놓을 수가 없다. 나를 부축해주던 애들까지 늦을까봐 내 걱정 말고 먼저들 가라고 해놓고 열 걸음에 한번씩 쉬어가며 다리를 질질 끌고 오는데 얼마나 자지러지게 아프던지... 눈물 콧물 다 짜내며 간신히 돌아와서 밤새 끙끙 앓고.... 이튿날 보니 발목이 코끼리다리보다 더 굵게 부어올라 있다. 할 수 없이 휴가를 내고 병원엘 가야 하는데....

도저히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일당까지 까먹고 같이 가줄 정도로 친한 애를 만들어놓지 못했으니.... 도리없이 다리를 질질 끌며 혼자 회사를 나왔다. 

 

근처에도 병원이 있으련만 왜 그 먼 아현동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103번 버스가 눈에 띄어서 그랬나? 아무튼 내가 어린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다니던 정든 교회와 한 울타리를 쓰는 그 병원으로 가서 X-ray를 찍었더니 복숭아뼈에 금이 갔다고 기브스를 하라고 한다.

 

보호자도 없이 왔는데 기브스를 하고 나면 이 뻐쩡다리를 누가 어디로 운반해주나?

일단 내 짐을 가져다 둔 71학번 선배의 동생 집으로 가야겠다 싶어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보일러 기사이기 때문에 기관실에 있는 전화를 받을 수 있지만 혹시 보안상의 문제가 생길까봐 한번도 걸어보지 않은 전화였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이가 누구냐고 묻기에 동생이라고 했더니, "어, 동생이 왜 모르세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데......" 한다. 아니, 뭐라구?? 

막다른 벽에 부딪친 막막함에 눈물이 왈칵 솟는다.

현장에 간 이래 처음으로 울었다.

 

어쨌든 차례가 되어 기브스를 하고 나니 다리에 통나무를 매달아놓은 듯 천근만근이다. 

병원에서 준 쌍지팡이를 짚어보니 얼마나 힘이 드는지..... 졸지에 혼자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제 어떡하지? 이런 상태론 절대 집으로 갈 수 없고...

 

병원 로비에 넋놓고 앉아 있다가 문득 이삿짐을 두러 갔을 때 그 집에 걸린 벽시계에 새겨져 있던 글씨가 생각났다. "**산업".... 동생의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 집들이 때 준 선물이라고 했지.

114를 돌려 회사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얼핏 들은 성에 직함은 짐작으로 붙여 선배 여동생의 남편과 통화하는 데 성공했다. 광주사태를 알리는 유인물을 제작한 혐의로 수배중일 때 친구(71학번 선배) 집에 숨어 살다가 여동생과 결혼을 했다는 그분은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후원자였기 때문에... 연락을 받자마자 날 데리러 와주셨다.

텅 빈 집에서 이틀을 기다리니 삼우제를 치르고 난 71학번 선배가 왔는데.... 얼굴이 반쪽이었다.

 

선배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이주일 전이었다. 나는 그날 노조가 없는 줄 알았던 S산업에 유령노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의논할 얘기가 많았는데, 선배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집안에 급한 사정이 생겨서 가봐야 한다고 바로 돌아나갔었다. 알고보니 그때가.....

 

 

(차마 쓸 수 없는 가슴아픈 사연이라.... 이하 중략)  

 

              

애써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끝내 눈가에 어리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는 선배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그렇게 힘든 사람에게..... 어쩌자고 나까지 덩달아 아픔을 주었을까.

 

무슨 아픔을 주었냐고?

글이 길어지니 다음 포스트로 넘기자.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아마 짐작을 하셨겠지만.... 이 선배가 바로 내 방에 세들어 있는 최열정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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