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최열정씨는 두 번째 만났을 때 내게 프로포즈를 했었다.
당시 서른 두 살이었고 병환중이신 어머니가 어여 장가들라고 목매고 기다리시니 급하기도 했겠지만, 그렇다고 갓 현장에 들어온 어린 후배에게 무턱대고 그런 건 아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간에 다리를 놓아준 언니가 내게는 '현장활동을 도와줄 선배를 소개시켜준다'고 '사기'를 쳤고 최열정씨에게는 결혼상대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 결혼할 마음을 먹고 나온 여자인 줄 알았던 최열정씨, 결혼상대 1순위였던 노동운동하는 여자라니(게다가 이건 또 무슨 인연인지 같은 공장엘 다닌다고 한다!) 두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결혼 얘길 꺼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나와 그 언니는 그리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이었는데, 최열정씨 역시 그 언니와는 그리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이 되려다 보니 그 언니는 나를 보고 곧장 그 선배를 떠올렸던 것이다.
나로서는 뜬금없는 결혼 얘기에 얼마나 황당했는지.
일단 노동운동 하자고 만났는데 결혼 얘길 꺼내다니 어이가 없었고...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마당에...
실연의 상처도 완전히 가시지 않아 결혼은커녕 연애조차도 떠올려기 싫은 상태인 데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얼굴 한번 보고 결혼을 하잔다. 그것도 전혀 내 상대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일단 일곱살이나 차이가 났으니 어린 나로서는 '아저씨'로만 보였던 거지)
허나 까마득한 대선배인 데다 얼마나 진지하게 얘길 하는지 한마디로 잡아뗄 수가 없어 완곡하게 거절을 했다. "나는 갓 현장에 와서 지금 운동에 대한 생각밖에 없다. 결혼을 할지 안 할지도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고.... 결혼을 할지 안 할지는 5년 후에나 고려해보겠다..."
그랬더니 묵묵히 듣고 있던 이 선배님 하시는 말쌈, "그렇다면 5년을 기다리겠다. 그때 결혼을 할 것이면 나도 결혼대상으로 고려해주겠느냐...."
결혼 이야기는 그렇게 끝내버렸지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음을 아는 나로서는 그 선배를 만나는 것이 퍽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안 만날 수가 있나. 같은 현장 일을 하는데.....게다가 '윗선'이 날아간 뒤 의논할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서 믿음직한 지도자이자 상담자 역할을 해주는 그의 손을 놓칠 수는 없었다.
허나 만남이 계속되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질수록 마음 부담은 자꾸 커져갔다. 어디 나이나 적은가... 이렇게 가다가 상처만 주지 싶어서 매주 만나던 것을 두 주에 한 번씩만 보자고 해놓고, 만날 때도 사무적인 태도를 견지하려고 짐짓 쌀쌀맞게 굴기도 하고 심지어 못되게 굴기까지 했다.
'누구 소개시켜드릴까요?' 하기도 하고...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선배는 대학생이었겠네요. 진짜 할아버지네...' 이따위 소리로 염장을 지르기도 하고, 심지어 연애하던 얘기까지 미주알 고주알 일러바쳤으니... 아마도 최열정씨 속으로는 꽤나 낙담이 컸을 터였다.
그래도 나에 대한 최열정씨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눈에 띄지 않게 정성을 다하면서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빛이 역력했다.(결혼하고 보니 외아들로 자란 이 사람, 타인에 대해 그리 주의깊고 섬세한 사람이 못되는데... 작전 하느라고 퍽 노력했던 듯. ^^ )
한번은 만났던 날이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공장 사람들의 눈에 띌까봐 만날 때는 늘 구로동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만났는데 그날 우리는 영등포 쪽에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눈이 펑펑 쏟아진다.
이런 날 일찌감치 자취방에 틀어박히긴 좀 서운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최열정씨도 같은 마음인지 '날도 날인데 우리도 기분 좀 내자'고 한다. 못이기는 척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여의도 쪽으로 걸어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송이가 마치 쏟아져내리는 별처럼 황홀하다. 인적이 드문 광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목청껏 노래 부르고 고함도 지르면서 기분이 up되어 있는 상황... 갑자기 최열정씨가 나를 번쩍 안아들더니 어지러워 쓰러질 때까지 팽글팽글.....
원래 그러면 안 되는 사이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확 풀어져가지구설랑.. 팔짱까지 끼고 돌아오는데 우리 동네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속으로 화가 난다. '아,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 변덕스런 계집애... 뭔가 트집을 잡아 최열정씨를 쩔쩔매게 하다가 표독스럽게 등을 돌리고 뛰었지. 골목길을 뛰어내려오다가 벌 받았는지 나동그라지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 뛰었다. 좋아라 팔짱끼고 다닐 때는 언제고 인정하기 싫었던 그 장면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려는 듯이....
(에구, 쪽팔려라...-- 70년대식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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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져 있는 최열정씨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가 알았든지 몰랐든지) 못되게 굴던 내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전혀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힘든 내색 없이 꾿꾿하게 버텨온 사람을.... 내가 뭐 잘난 게 있다고 그리 못되게 굴었을까..
그를 향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갑자기 열리는 느낌이었다. 이제 나라도 저 사람에게 힘을 보태줘야 한다는 게시(?)를 받았던 걸까. 아니, 어쩌면 불확실한 나의 미래에 어떤 의짓대가 필요하다는 무의식적인 결심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선배, 우리 결혼해요."
적절치 않은 상황, 적절치 않은 장소에서 돌발적으로 흘러나온 이 한마디는 최열정씨는 물론 그 말을 한 나 자신까지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 말은 최열정씨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말인지도 몰랐다. 오히려 내 가슴에 얹혀 있던 좌절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자꾸 불운이 따르는 현장생활에 이제 지쳤다고.... 혼자 힘으로는 더 버틸 자신이 없다고.... 나를 좀 붙들어 달라고.... 같이 가다 보면 선배도 혼자 가는 것보다 덜 힘들 거라고...
반신반의하던 최열정씨의 표정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움을 지나 환희로 바뀌었다.
* * * *
대화에 열중하다 보니 배가 몹시 고팠다. 어느새 밤 열 시가 넘었는데 둘 다 저녁 전이었다.
마침 여동생 내외는 시댁 기일이 돌아와 삼우제 마치고 바로 그리로 갔기 때문에 집안에는 우리 둘 뿐. 최열정씨는 저녁을 해주겠다고 가게로 뛰어가 시금치와 어묵을 사왔고(그것까지 기억하다니! ㅎㅎ) 나는 뻐쩡다리를 하고 앉은 채로 된장은 얼마를 풀어라, 어묵은 뭘로 조려라 해가며 간단하게 저녁상을 차렸다. 구두로나마 결혼약속이 오고간 뒤라 밥상에는 화기애애가 흘러넘쳤다.
(여기서 잠깐 삼천포... 외아들로 자라 부엌과는 한~참 먼 최열정씨.... 지금까지 나를 위해 밥상을 차린 적이 딱 두 번 있는데 한번은 이때고, 또 한번은 신혼시절.... 같이 야구를 보다가 응원하던 해태가 극적인 승리를 거두자 기쁜 나머지 "자, 김봉연이다, 받아랏!" 하더니 갑자기 옆에 있던 사과를 내게 던졌는데....사과는 넓지도 않은 공간을 가르고 날아와 임신 5개월이었던 내 배를 맞췄다. 사실 내 손을 맞고 떨어져 타격이 크진 않았지만 장난끼가 발동한 나는 배를 움켜쥐고 옆으로 쓰러졌다. 사색이 된 최열정씨.... 절대안정!을 외치며 그날 저녁준비를 했었지.. ㅎㅎ)
그날 우리는 앞으로 함께 걸어갈 날들에 대한 얘기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꽃망울이 터져나오는 3월의 막바지.... 따뜻한 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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