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케익 본 김에 생일잔치 1

張萬玉 2006. 5. 3. 14:39

'떡 본김에 제사'라고 쓰려다가... ㅎㅎ

'가끔 한자를 섞어쓰길래 논네인 줄 알았다'는 어느 님의 말씀이 생각나 약간 젊은 버전으로 제목을 달아봤다. 안 그래도 요즘 옛날얘길 풀어놓다 보니 7080이 뭐냐 8090으로 가야겠다고 투정하는 분이 나올 정도로 곰팡내가 나는데 어떻게 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할 수 없이 오늘도 곰팡내 풀풀 풍겨야 할 것 같다. ^^

신혼초에 남편이 그랬다. "난 마누라도 생겼지만 애인도 있어.."

그 양반이 이 양반이다. http://blog.daum.net/moontonghap

 

남편이 학창시절부터 워낙 좋아하는 친구였고 야학활동을 거쳐 현장에 오기까지 행보를 같이했던 동지였으며(카테고리 '걸어온 길'에 보면 내가 쓰고 있는 7080과 흡사한 얘기가 나온다), 마침 결혼한 시점이 우리보다 몇 달 앞선 결혼생활의 선배로서 '결혼생활과 노동운동을 모두 잘 해나가는' 모범을 아낌없이 보여준 귀한 이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분이 다니던 공장이 창원으로 이전하면서부터.... 아니, 85년 이후 서로가 각각 다른 전쟁을 치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주 왕래할 수 없었던 세월이 어언 20여 년...게다가 우리가 중국으로 건너오는 바람에, 그 세월 동안의 만남은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지만 그들의(아니 우리들의) 우정은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세월의 비바람을 거치면서 이제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기는 해도.... 

 

지금은 민주노동당 대표를 맡고 있는 이 양반이 경남도지사에 출마하여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남편이 나라도 가서(남편은 남들 다 쉬는 휴일에도 일에서 떠나지를 못한다) 축하(어쩌면 위로!)의 마음을 전해줬으면 하길래.... 그 일도 그 일이지만 너무 오래 '칩거'생활을 하던 끝이라 흔쾌히 길을 나섰다. 떡을... 아니, 케잌을 보니 생일잔치 벌일 생각이 났던 것이다. 내게는 남편이 모르는 '블러그' 세상이 있다. ㅎㅎ

'창원'이라는 지명에 꽂혔던 것이다. 마산에는 막걸리 사준다는 매천님이 계시고 KTX 환승역인 대구에는 또 나의 오랜 블러그 지기가 있다. 얼굴도 모르나 따뜻한 교감을 주고받던 이들을 이런 기회 아니면 또 언제 만나보리.

 

떠나기 전에 매천님 블러그에 전화번호를 남겼더니 당장 연락이 왔다. 일행이 있어서 목적지도 정확이 모르고 길을 나선 내게 행사가 있는 곳의 위치까지 조사하여 알려주시면서 그리로 오시겠다고 한다. '마산에서 창원이 가까운 길도 아니고 그분께 내어드릴 시간도 많지 않은데, 일하시는 분을 공연히...'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를 어쩌리.

 

수더분하면서도 부지런해 보이는 매천님... 역시 블러그에서 받았던 인상 그대로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남들 챙겨주는 넉넉함이 몸에 배인 분 같다. 행사가 시작되면 같이 보낼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때이른 저녁상을 앞에 놓고 (약속하신 막걸리는 쌍방 합의 아래 생략하고) 정담을 나누다 보니 이 낯선 색깔의 정당 행사장에 막무가내로 불러낸 실례(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를 특별히 사과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ㅎㅎㅎ (매천님도 발이 꽤 넓으시데요?)

 

가난한 정당의 사무실은 좁고 응원객은 넘쳐나고.... 마침 갑자기 봄이 되어버린 날씨 때문에 땀을 바가지로 흘렸다. 앞으로 가야 할 고생길이 안봐도 비디오.... 출정식의 열기 한가운데 서 있는 내 마음은 시리기만 하다. 

민주노동당이 자금과 조직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안 될 거 알면서도' '열린우리당 표 깎아먹는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왜 줄기차게 후보를 내고 있는지.... 알만한 분은 다 아시겠지만 참고삼아 Daum 백과사전에서 '민주노동당'을 검색하여 이해를 돕기 위한 부분만 발췌해본다.   

 

 

 

2000년 1월 30일 출범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농민·빈민·중소상공인과 여성·청년·학생, 진보적 지식인의 정당'을 자임하는 이념 정당으로서 출범 첫해인 2000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과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대 등으로 민생고가 가중되고 기성 보수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실시된 제16대 총선에서 21명의 후보를 내었다. 그러나 전원이 낙선함으로써 의회 진출에 실패한 것은 물론, '민주·진보 진영의 정치적 대표체'로 자리잡는 데도 실패했다.

 
2002년 지방자치제 선거와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 이자제한법 부활 등 서민의 생활에 밀착한 정책 대안을 개발하며 당세를 확대한 결과 2002년 6월의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전국 16개 시도에 218명의 후보(광역단체장 후보 6명 포함)를 내세워 대구광역시·경상북도·충청남도 등을 제외한 11개 시도에서 5%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 비례대표 광역의원 의석을 확보했으며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따라 전국적으로 8.1%의 지지를 얻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따돌리고 정당 지지율 제3위를 차지하면서 일약 전국정당으로 부상했다. 특히 울산시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와 선두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권영길 대표를 후보로 내세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텔레비전 정책 맞대결을 벌이며 부유세(富有稅) 신설, 주한미군 철수 등의 공약으로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회창·노무현 후보의 선두 경쟁에 떠밀려 유효표의 3.9%를 얻는 데 만족해야 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은 제17대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원내에 진출시키며 진보정치의 꿈을 이루었다. 지지하는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각각 1표씩 행사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치뤄진 이 총선에서 권영길(창원을)·조승수(울산북구)가 지역구에서 당선되고, 정당득표율 13%를 얻어 8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했다. 게다가 9석을 얻은 새천년민주당을 제치고 원내 제3당으로 약진함으로써 진보정당의 꿈을 키울 발판을 마련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오세훈씨가 신동아 5월호에 내보낸 인터뷰에서 '시장 출마는 개인적으로 볼 때 대단한 희생'이라고 했더라만...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선다는 것은 그런 희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형극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내가 민주노동당의 전폭적인 지지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새가 양쪽 날개로 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 사회의 균형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 존경과 우호의 念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평탄한 길을 골라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마음을 지켜나가기 위해 반백이 되도록 초지일관 자갈밭을 마다 않는 벗님의 높은 뜻만은 어찌 전폭 지지하지 않을 수가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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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공.. 원래 쓰려고 했던 건 세수하러 갔다가 물놀이한 얘기였는데....쓰다보니 선거운동을 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민주노동당 경남도지사 후보 선거운동을 하는 거냐고 싫어하셔도 할 수 없슴다. 이왕 쓴 거 지우고 싶진 않네요.

(논 얘긴 내일 다시 쓸께요.   그리고 뭐... 선거운동 할 수도 있지...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