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문제로 방황하던 그 시절의 화두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정다운) 그곳에서 하룻밤 머물 수 있다면 꽃구경보다 더 좋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진정한 복음'과 '진정한 신앙'에 관한 '말씀'을 듣는 것도 의미있었지만 그보다도 '인간 예수'를 따라 살고 있는 한 인간(내 또래로 보이는)의 삶과 이 외진 농촌마을에서의 목회 내용에 관해 더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발길을 돌린다. 다음 행선지는 백련사.
신라 문성왕 때 지어진 고찰로(조선조에 두 차례 중수),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였던 다산초당과 가까이 있어 다산 선생과 백련사의 주지 스님이 서로 마실을 다니며 우정을 나누었던 절로도 유명하여 다산초당을 찾는 이들이라면 꼭 들르는 곳이라 했다.
원래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하지만 사람이 많지 않을 때는 일주문까지 올라갈 수 있다. 꽤 급한 경사라 좋아라고 가파른 언덕길을 부웅~ 치올라가니.... 그 높은 곳도 모자라 더 높이 축대를 쌓아올린 곳에 백련사가 올라앉아 있다. 대웅전 외에 부속건물이 네 개 정도 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절이지만 그 아담하고 소박한 느낌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
아니, 무슨 사진을 이렇게 찍었다냐? (헌데 이 사진밖에 남아 있질 않다. ㅜ.ㅜ)
도대체 뭘 찍으려고 했던 건진 잘 모르겠다만... 왼쪽 구석에 보이는 지붕이 일주문 격인 만경로,
왼쪽에 크게 찍힌 것이 명부전, 축대 위에 있는 것이 응진각... (대웅전은 응진각 옆에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부도(사리를 모신 탑)
백련사와 다산초당은 조봇한 산길로 이어져 있는데(다산초당을 보고 백련사로 넘어와도 된다) 약간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힘들지 않다. 가는 데 20분 정도 걸렸을까?
이미 동백꽃 철이 한참 지나 '각혈 같은' 마지막 꽃송이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지만, 아름드리 울창한 숲을 보니 한창때의 장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백련사에서 다산 초당 넘어가는 길. (이렇게 손 보아 놓은 곳은 일부 구간임)
대나무와 소나무가 빡빡하게 들어서 대낮에도 어둡고 축축한.... 정말 멋진 길이다.
이곳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 유배생활 중 10년을 보냈던 거처.
원래는 초가집이었는데 노후하여 붕괴된 것을 1957년에 복원하면서 기와로 바꾸었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무슨무슨 게이트에 걸려들었다 해도 삼년이면 버젓이 정계로 복귀하드만.... 그 무슨 죽을죄를 지었다고 18년 씩이나....
보통 사람 같으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길고 긴 세월에 짓눌려 술로 세월을 보내기 십상일 텐데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민생을 구하는 데 귀하게 쓰일 저작들을 (그것도 500권 씩이나) 집필하는 데 알뜰히 사용하셨다니....정말 사모하지 않을 수 없는 분 아닌가.
창조적인 사람은 역시 무료함을 달래는 법도 남다른 데가 있다. 앞마당에 연못을 파고 가운데 조그만 산을 쌓은 뒤 대나무 대롱과 작은 물레방아를 달아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연못으로 흐르도록 한 뒤 蓮池石假山이라는 이름을 지으셨더군. ^^
글씨를 새긴 바위나 차를 끓였던 반석, 아마도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바다가 보이는 정자 천일암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유배지의 깊은 시름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사진 중앙에 있는 게 가짜산이란다. ^^ 오른쪽 위에 보이는 것이 물 대는 장치.
아무리~ 아무리아무리아무리 잘 잡아보려 해도 쉽지 않은 천일암의 느낌.
차를 백련사에 두고 왔기 때문에 다시 고갯길을 넘어와서... 오던 길(77번 국도)을 따라 해남을 향해 달린다. 어느새 서산에 걸렸던 해가 꼴까닥 넘어가니 가로등도 없는 컴컴한 지방도로를 헤드라이트로 비춰가며... 30분쯤 달렸나? 완도와 해남으로 갈리는 길이 나온다. 거기서 해남 쪽으로 우회전.... 500미터 정도 더 가니 오른쪽에 화려한 네온간판이 나타난다. '아미산모텔'이다.
폐교를 리모델링했다는 이 숙소.... 강추!!
3층 붉은벽돌 건물에 기와를 올리고 학교 운동장이었던 앞마당을 모두 잔디로 덮어 외관이 꼭 중국 삼성급 호텔 같다. 밤에는 개구리 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새벽에는 아침이슬 밟으며 산책하는 맛이 그만이다. 객실도 새로 꾸며서 깨애끗하고 방값도 싸니 금상첨화(예약전화 061-433-2136)
청산도 도착까지 쓰려고 했는데.... 글 속에서나 글 밖에서나 밤이 찾아왔으니 일단 요기까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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