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점검차 현장에 가볼까 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분명히 이 시간이면 다들 달콤한 오수를 즐기고 있을 텐데...
하지만 다른 시간을 낼 수가 없어 그냥 들렀더니 역시...
팬티바람의
시커먼 녀석들이 먼지구덩이 속에 박스를 깔고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아직 개스레인지가 놓이지 않은 개스관에 연결된 삼발이 위에는
돼지고기볶음 해먹은 흔적이 남아 있고 날시멘트 벽에서 뽑아놓은 TV선에 연결된 5인치 흑백TV 혼자 떠들고...
베란다에는 빨아널은
속옷과 셔츠가 즐비하고 수납장 자리에는 개인물품들이 떡하니 자리를 잡아 장기합숙생활에 대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건물을 지으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노무자들의 숙소를 짓는 일이다.
노무대 대부분이 외지에서 모집해온 사람들라 숙소를 제공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벽돌을
쌓아올리고 콘크리트 판으로 막으면 끝.... 이틀도 채 안 걸린다.
공사가 끝나면 맨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벽돌을 챙기는 일이다.
인건비가 싸니 벽돌을 하나하나 캐내어 차곡차곡 챙겨가지고 다음 공사장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 공사장 주변에는 함바집이 있지만(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중국의 공사장에서는 인부들이 직접 장을 봐다가 지지고 볶는다. 밥 하나는 제대로 해먹는다.
현재
진행중인 공정은 천장 칠하기와 책장 짜기...
책상 앞에 앉아 꼼짝 안 하는 사람들도 더워 죽겠다고 야단인데
바람도 한 점 없는
찜통더위 속에서 고개를 젖히고 몇 시간씩 칠을 하고 망치질 톱질을 하고... 땀을 얼마나 흘렸을까.
우리
아들넘보다 어리게 보이는데 칠쟁이, 목공쟁이로 한몫씩 하는 걸 보면 꽤 일찌감치 일터로 나선 게 분명하다.
이 더위에 저렇게 진이 빠져라
일하고 먼지구덩이에서 먹고 자는 게 울 아들이라면...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경위야 다르긴 하지만 아들넘도 휴가 마치고
들어가자마자 완전군장에 30킬로 구보 했다고 안 하더냐...
그래..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게 마련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대처하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서 혼자 사무실을 지키던 상해의 첫해 여름...
그해 여름은 40도를 넘긴 날이 부지기수였던.... 특별히 더웠던
여름이었다.
그때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은 에어컨 없으면 죽는 줄 안다. 내 인내심이 여기 중국 어린애만도 못한
것 같다.
세탁소
꼬마를 봐라. 여섯 살 박이가 아빠 다림질하는 옆에 붙어 앉아 땀 뻘뻘 흘리면서도 하루종일 보채지도 않고 잘도 논다.
우리 회사 직원들
중 집에 에어컨 달고 사는 사람들이 20명이나 될까?
외지 출신 미혼 직원들은 냉장고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잘도 버틴다.
찬비 내리는 겨울에도 여기 사람들은 난방 없이 내복에 스웨터에 대여섯 겹씩 입고 잘 버티지 않나. 한국사람들은 난로에 전기장판에 라지에터까지 틀어놓고도 추워, 추워를 입에 달고 다닌다. 구들장에 익숙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도대체 썰렁하게들 살아를 봤어야지.
그래,
돈 없어 무더위랑 맨몸으로 붙어야 하니
악으로라도 버텨야지... 그래야 살아남지.
얘들아, 어쩌겠니.... 힘내라. 그리고
고마워.
헤헤... 그리고 우리집 좀 잘 지어줘.
'그 시절에(~2011) > 上海通信(舊)'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데 대소동 (0) | 2004.09.02 |
---|---|
눈뜬장님 행각 (0) | 2004.09.02 |
아들넘의 중국인 친구 4 (0) | 2004.08.12 |
수영장 이야기 (0) | 2004.08.04 |
아들넘의 중국인 친구 3 (0) | 200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