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밭을 헤치고 세수하러 갈 엄두가 안 나 눈꼽을 떼고 앉아 있으려니, 벌써 여기저기 밥짓는 화덕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부지런한 카자크 아낙네들은 양젖을 짠다.
아침을 먹고 잠시나마 정을 나눴던 동네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뒤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갓 돌이 지난 옆집 아기 다무, 라시트 아저씨의 아들 아이든과 선동열만큼 멋진 폼으로 앞다투어 호수에 돌을 던지던 그 친구녀석들, 햇볕에 타서 망가진 피부를 고민하던 열 살짜리 아가씨 등등 천진한 얼굴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아이들이야말로 먹고살기 위해 남을 속이고 서로 싸우는 일 없이 살 수 있어야 할 텐데...
천지에서 돌아와 모두 샤워실부터 찾는 걸 보니 자연으로 돌아가려면 아직 멀었나. 원없이 씻고 점심 먹고 뙤약볕 피해 잠시 낮잠까지 즐긴 뒤 여행 마지막 코스인 의무쇼핑(?)에 나섰다.
우리가 간 곳은 얼다오챠오(二道橋) 근처의 민족시장인데 이곳을 분기점으로 남쪽 지역에 주로 위구르족들이, 북쪽 지역에는 한족들이 주로 산다.
우루무치시 인구 중 한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공식적으로 40%라는데 실제로는 60%가 넘으며, 최근 서부개발의 붐을 타고 더 많은 한족들이 우루무치로 이주하고 있어 교육이나 취업기회에서 열등한 지위에 있는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들로서는 정부의 개발정책이 오히려 소외감만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란다.
어쨌든간 우리가 돌아다닌 거리는 위구르족 동네... 투르크계 미남 미녀들 천지라, 나는 사려는 물건보다 물건 파는 사람들의 미모를 훔쳐보기 바빴다. 이곳의 주 쇼핑품목은 카페트, 스카프, 수공예품, 그리고 건포도, 무화과, 아몬드 등의 견과류. 대부분 상인들과는 보통화가 통하고 바가지도 심하지 않아 쉽사리 쇼핑을 마쳤다.
이제 우루무치에서의 마지막 밤이자 우리 여행의 마지막 밤. 그동안 신세가 많았던 서 선생님 내외를 모시고 진짜배기 위구르식 만찬을 맛보기로 하고 우리는 허핑챠오(和平橋) 부근의 타이바이송(太白松)으로 갔다.
양 갈비탕, 양고기 야채볶음, 양 내장볶음, 그리고 양, 양... 사실 식탁 위에 음식은 그대로 남았지만 푸짐한 양고기에 파묻히니 괜히 흐뭇한 기분이다.
"파랑새는 없다"의 나이트클럽 MC 못지 않는 미끌미끌한 멘트로 좌중을 사로잡는 미남 MC, 그리고 민속악기 연주, 이어지는 화려한 민속춤... 무희들의 한 바탕 춤이 끝나자 이번에는 가수가 위구르족 가요를 부르며 손님들을 플로어로 유도한다.
무대는 금방 손님들로 꽉 차고 아무도 쭈볏거리는 사람들이 없다. 터키 춤 같기도 하고 러시아 춤 같기도 한 열정적인 춤동작들이 이방인들을 매료한다. 계속 뒤로 미끄러지며 춤을 추는 오동통한 50대 아줌마, 목과 손목을 날렵하게 돌리며 끝도 없이 뱅뱅 도는 귀여운 아이들, 스스럼없이 청하고 응하는 청춘남녀들...
외국인 손님을 의식해서인지 가수는 "I Love you more than I can say"로 곡을 바꾸며 우리에게 손짓을 하지만 "하는 문화"보다 "보는 문화"에 더 길들여져 있는 우리로서는 나이를 잊고 펄펄 뛰기가 그리 쉽지 않다. 푼수떼기인 나라도 광란의 무도를 벌였어야 하는 건데...
전세계적으로 인간관계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춤을 가장 거북스럽게 여기는 게 혹시 우리나라 사람들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어쩌면 우리 세대의 정서일지도..... 상해 가면 사교댄스나 배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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